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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알루론산 필러가 주름 잡아온 미용성형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가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다름 아닌 ‘실’이다. 이른바 ‘실 리프팅’이라 불리는 미용성형 기법에 대한 관심이 최근 수년 동안 크게 늘었다. 리프팅용 실은 일반적인 실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체내에 들어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녹아 없어지는 특성이 있다.

‘녹는 실’은 처음부터 미용성형 용도로 나온 건 아니다. 수술로 절개한 인체 부위를 꿰매는 봉합사로 먼저 개발됐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피부는 절개 부위를 실로 꿰맨 뒤 아물고 나면 쉽게 실밥을 떼낼 수 있다. 하지만 조직 내 점막이나 장기 같은 부위를 수술한 경우엔 회복 후 실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바로 녹는 실, 즉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다.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 중반부터 국산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굵기가 머리카락 정도밖에 안 되는 가느다란 실을 정확히 원하는 시간에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드는 봉합사 제조 기술은 의료 현장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생생과학]삼양바이오팜 대전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수술용 봉합사.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몸 속에서 분해돼 없어진다. 삼양바이오팜 제공
 ◇물·이산화탄소로 변해 조직 내로 흡수 

수술용 봉합사를 이루는 기본 성분은 고분자 물질로, 단위 물질(모노머)이 수만 개 이상 반복적으로 결합돼 있는 형태다. 같은 모양의 레고 블록을 여러 개 연결해놓은 것과 비슷하다. 이때 어떤 모노머가 결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고분자 물질이 만들어진다. 녹말이나 단백질, 고무 등은 천연 고분자 물질이고, 플라스틱은 대표적인 합성 고분자 물질이다.

고분자 물질은 모노머의 종류나 결합 방식 등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 그 중 하나가 생분해성이다. 생체 내에 들어가 특정 조건을 만나면 물이나 이산화탄소처럼 해롭지 않은 물질로 분해돼 조직 내로 흡수되는 것이다. 이런 생분해성을 지니면서, 생체 내에 들어갔을 때 불필요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거나 독성을 나타내지 않는 고분자 물질이 수술용 봉합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생분해성 고분자 물질을 인공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동물의 내장을 이용해 수술용 봉합사를 만들기도 했다. 내장을 구성하는 성분이 생분해성을 갖는 고분자 물질인 단백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 내장으로 만든 생분해성 봉합사는 염증이 생길 위험이 높아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생분해성 봉합사를 만드는 데 처음 사용된 인공 합성 생분해성 고분자 물질은 폴리글리콜라이드(PGA)다. 글리콜산 모노머가 수만 개 이상 결합된 형태다. 화학합성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지금은 PGA뿐 아니라 젖산-글리콜산 중합체(PGLA), 폴리디옥사논(PDO) 등 여러 가지 생분해성 고분자 물질이 봉합사 생산에 사용되고 있다.

[생생과학]삼양바이오팜이 생산해 수출하는 수술용 봉합사 원사. 삼양바이오팜 제공
 ◇10㎏짜리 무게도 견뎌내는 강도 

생분해성 봉합사 제조 기술의 핵심은 적절한 강도와 분해 속도에 있다. 상처 부위를 봉합사로 꿰매고 나면 아물 때까지 단단히 여며줄 수 있어야 한다. 생분해성 봉합사는 일정 기간 이후 체내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대개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조금씩 떨어지게 된다. 이때 강도 감소 속도가 상처가 치유되는 속도와 비슷해야 한다. 상처가 미처 아물기 전 봉합사의 강도가 떨어지면 회복이 늦어지거나 수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체내에는 각종 생리성분을 분해하는 수많은 효소가 존재한다. 봉합사는 이들 효소에 쉽게 반응하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물리적 특성을 유지하는 내구성이 필수다. 또 상처가 다 치유된 뒤 봉합사는 곧바로 완전히 분해돼야 한다. 회복 이후에도 수술 부위에 봉합사가 남아 있으면 조직 내에서 또 다른 반응이나 2차 감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봉합사의 적절한 강도나 분해 속도는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수술 부위가 어디인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기업들은 원료 고분자 물질, 실의 굵기와 형태 등을 조절해 강도와 분해 속도가 각기 다른 제품을 만든다. 시중에 나와 있는 생분해성 봉합사들은 체내에서 약 60일~210일이 지나면 완전히 분해되고 흡수된다. 단면의 지름은 0.04~0.6㎜ 사이다(사람 머리카락 굵기는 0.06~0.1㎜). 지름 0.4㎜의 두꺼운 봉합사는 10㎏의 무게를 들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봉합사는 또한 불필요한 상처를 내지 않도록 가능한 부드러워야 한다. 그러면서도 매듭을 지었을 때 쉽게 풀리면 안 되고, 의료진이 간편하게 취급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가닥짜리 실로 만든 봉합사(모노 필라멘트)는 표면이 매끈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상처를 꿰매고 나서 풀릴 염려가 있어 매듭을 여러 번 묶어야 한다. 이에 비해 여러 가닥의 실을 꼬아 만든 봉합사(멀티 필라멘트)는 표면이 다소 울퉁불퉁하지만 강도가 높은 장점이 있다. 이처럼 강도와 분해 속도, 형태 등이 다양한 봉합사 제품 중에서 의료진은 상처 정도와 수술 부위 등에 따라 적합한 걸 선택해 수술에 사용한다.

[생생과학]현미경으로 150배 확대한 모노 필라멘트(한 가닥으로 이뤄진 봉합사) 단면. 삼양바이오팜 제공
[생생과학]현미경으로 130배 확대한 멀티 필라멘트(여러 가닥의 실을 꼬아 만든 봉합사) 단면. 삼양바이오팜 제공
[생생과학]실 표면에는 미세한 가시가, 끝부분에는 삼각형 모양이 달려 있어 매듭을 짓지 않아도 되는 생분해성 봉합사. 삼양바이오팜 제공
 ◇제조 공정에 철저한 수분 제어 필수 

생분해성 봉합사는 1970년대 미국 기업 아메리칸 시안아미드가 처음 ‘덱손’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이후 1980년대까지 미국 에치콘, 일본 메디칼서플라이 등 여러 기업이 잇따라 제품을 내놓으면서 생분해성 봉합사 시장이 본격 성장했다. 지금은 에치콘과 미국 메드트로닉, 독일 비브라운이 봉합사 완제품 시장의 3대 기업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선 삼양그룹 계열사 삼양바이오팜이 생분해성 봉합사 국산화에 처음 성공했다. 삼양바이오팜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산학협력을 통해 1993년 글리콜라이드 합성 기술을 이용한 국내 첫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를 개발했고, 1996년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당시 1,600㎞ 규모였던 연간 생산량은 현재 100배 이상 늘었다. 삼양바이오팜 관계자는 “생산 초기부터 지금까지 판매된 봉합사 길이를 모두 합치면 총 160만㎞로, 지구와 달을 두 번 왕복하고도 남는다”고 설명했다.

삼양바이오팜은 미국과 일본, 유럽,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400여개국 200여개 업체로 봉합사 원사와 완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전체 매출 중 해외 비중이 90%에 달한다. 특히 7,000만달러 규모의 세계 봉합사 원사 시장에 연간 약 4,000만달러 물량을 수출하며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생분해성 봉합사는 수분에 매우 민감하다. 원료인 생분해성 고분자 물질이 물을 만나면 분해돼(가수분해) 강도가 떨어지며 품질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 시작부터 포장을 마칠 때까지 소량의 수분도 침투하지 못하도록 까다롭게 관리해야 한다. 전체 공정의 수분을 제어하면서 의료 현장에서 요구하는 품질을 맞추는 기술력은 중국이나 인도, 베트남 등 신흥 국가들이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

봉합사로 수술 부위를 꿰매고 나면 풀어지지 않도록 매듭을 짓는다. 그런데 최근 복강경이나 로봇을 이용한 수술이 활성화하면서 봉합사로 사람 손처럼 정교한 매듭을 짓기 어려운 경우가 늘었다. 이에 삼양바이오팜은 표면에 미세한 가시(미늘)가 돋아 있는 새로운 봉합사를 개발했다. 가시가 돋은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실을 넣어 조직을 동여매면 사이가 벌어지지 않고 잘 고정되는 것이다. 실 끝부분에는 작은 삼각형 모양을 달아 매듭을 묶지 않아도 풀릴 염려가 없게 만들었다.

요즘은 생분해성 봉합사가 노화 시술에도 쓰인다. 나이가 들어 점점 처지는 피부 아래 피하지방층에 봉합사를 삽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이 보강재 역할을 해 안면조직의 지방층을 들어올리거나(리프팅) 고정시켜준다. 흙담을 쌓을 때 중간중간에 볏짚을 넣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리프팅용 실 제조에 주로 쓰이는 생분해성 고분자 물질은 PDO로, 체내에서 약 6개월간 유지된 후 분해된다. 요즘 봉합사 제조 기업들은 효과가 오래 가는 리프팅용 실을 만들기 위해 더 늦게 분해되는 고분자 물질을 찾고 있다. 삼양바이오팜 관계자는 “얼굴 부위별로 최적의 효과를 내는 리프팅용 실 개발을 목적으로 미국, 프랑스, 스페인 의료진과 협업 중”이라며 “PDO 소재보다 유지 기간이 4배가량 긴 신제품을 개발해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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