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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망자’ 9ㆍ11테러 5배 넘어
美 초강대국 이미지 中 비해 흐려져
글로벌리더십 행사 의지 시험대
미국 워싱턴 백악관. ©게티이미지뱅크

9ㆍ11 테러 희생자의 5배를 넘는다니, 초현실적이라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나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세계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기고문을 냈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국내적으로 권력 행사에 대한 통제가 없어지고, 국제적으로는 경쟁적인 봉쇄와 이동 금지로 세계화가 사라져 ‘성곽 도시’로 회귀할 수 있다고 한다.

인류가 감염병의 습격을 받는 것이 처음이 아니지만. 이번 사태는 미ㆍ중 갈등이 패권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전개되어 의미가 크게 증폭된다. 지난해 말까지 일대일로와 인도태평양, 무역전쟁,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을 둘러싼 논쟁 등 3개 방면에서 공수를 거듭하던 미ㆍ중 갈등이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나면서 체제의 효율성이라는 새로운 전선을 만드는 모양새다.

중국은 ‘우한(武漢) 봉쇄’ 두 달 만에 신규 확진자 제로를 선언한 데 이어, 지난주에는 봉쇄를 해제했다. 감염병 통제의 효율성에서 일단 우위에 섰다. 2000년 역사를 통해 역병과 홍수, 가뭄, 심지어 메뚜기떼 습격까지, 무수한 재난을 겪으면서 축적해 온 나름의 대처 요령이 있었다. 무자비한 봉쇄는 그 한 단면이었다. 국가자원의 총동원체제가 가동되었다. 신발, 휴대전화, 자동차를 만들던 공장이 하루아침에 마스크와 산소호흡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산업혁명 기술도 무차별적으로 사용했다. 개인의 건강 상태를 구분하는 애플리케이션, 안면인식기와 체온측정기를 활용하여 잠재적 감염자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국가 권력이 개인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는 것이지만, 아무도 사생활 보호를 거론하지 않았다.

미국의 모습은 여기에 대비된다. 초강대국의 이미지가 흐려진다. 세계도, 미국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이라는 정치적 이해에 매여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작은 정부 논리가 전략물자 비축의 부족을 초래했고, 신자유주의가 주도한 글로벌 공급 체제가 긴급한 물자 조달을 어렵게 했다. 주주 이익을 우선하는 기업들이 저임금을 찾아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한 결과였다. 감염병 대응과 사생활 보호의 균형도 토론의 과제가 된다.

미국이 자원 동원을 가속하고 치료약과 백신이 나오면, 코로나바이러스도 머지않아 독감의 하나처럼 사라져갈 것이다. 그러나 감염병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번 사태가 던지는 체제의 효율성 문제는 남는다. 국경도, 인종도, 보수ㆍ진보의 이념도 바이러스는 구분하지 않는다. 잘못되면 당장 사람이 숨을 못 쉬고 허파에 물이 찬다. 150년 전, 영국 박물학자 찰스 다윈은 ‘살려는 본능이 진화의 원천’이라고 했다. 주변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중국은 체제의 효율성을 보였지만, 바로 그 효율성이 초기 대응의 혼란을 초래한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피해갈 수 없어 보인다.

세계의 시선은 미국을 향하고,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갈 때 즈음, 미국을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질 것이다. 감염병 대응이 요구하는 효율성 앞에서,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자유를 조화시킬 대안이 있는가? 국경도, 이념도 구분하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와 국제 협력을 조화시킬 방안이 있는가? 즉, 자유와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지키고 글로벌리더십을 행사할 의지가 있는지를 물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1957년 소련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이상의 충격을 미국민들에게 남길 것이 틀림없다. 390년 전 영국의 청교도 목사 ‘존 윈스럽(John Winthrop)’은 신대륙으로 떠나는 아라벨라호의 갑판에서 ‘저 건너 새로운 언덕 위에 세상이 우러러보는 빛나는 도시’를 세우자고 설교했다. 미국의 자긍심과 세계에 대한 특별한 소명을 뜻하는 이 구절이 또 한번 빛을 발할 것인가.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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