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반달 가슴곰이 나타난 사연

입력
2020.04.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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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콜콜why] 동물자유연대, 사육곰 443마리 보금자리 찾는 영상 제작 

동물자유연대는 반달가슴곰 ‘곰곰이’가 생츄어리(보금자리)를 찾아 다니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는 내용의 영상을 제작했다. 사진은 반달가슴곰 탈을 쓴 활동가가 광화문 앞에 서 있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는 반달가슴곰 ‘곰곰이’가 생츄어리(보금자리)를 찾아 다니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는 내용의 영상을 제작했다. 사진은 반달가슴곰 탈을 쓴 활동가가 광화문 앞에 서 있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6일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반달가슴곰이 서울 광화문 한복판을 돌아다니는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실제 반달가슴곰은 아니고 활동가가 반달가슴곰 인형탈을 쓰고 서울 곳곳을 누빈 건데요. 정교하게 제작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실제 반달가슴곰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동물보호 활동가가 반달가슴곰 탈을 쓰고 갑자기 왜 서울 한복판을 헤매고 다녔을까요. 여기에는 웅담채취를 위해 수출용으로 사육됐다 지금은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한 사육곰 443마리의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육곰은 정부가 복원하고 있는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과 같은 반달가슴곰입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번 주(4월6일~12일)를 사육곰 주간으로 정하고, 영상 제작ㆍ사육곰 콘텐츠 공모전 등 캠페인을 벌이며 사육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 끌기에 나섰습니다. 6일부터 영상을 공개한 건 4월6일의 발음에서 착안했다고 하네요.

 ◇사육곰, 생츄어리로 갈 수 있을까 

사육곰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동물자유연대 활동가가 반달가슴곰 탈을 쓰고 서울 시내를 돌아나니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사육곰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동물자유연대 활동가가 반달가슴곰 탈을 쓰고 서울 시내를 돌아나니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먼저 동물자유연대가 공개한 영상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사육곰 ‘곰곰이’는 서울 광화문부터 시청, 북한산 국립공원까지 돌아다니지만 결국 보금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해당 영상은 반달가슴곰이 가상의 생츄어리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장면으로 마무리 됩니다. 김수진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원래는 ‘곰곰이’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시민들에게 사육곰 실태도 알리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행사로 기획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아쉽지만 온라인 영상으로 대체했다”고 말합니다.

이외에도 시민들을 대상으로 사육곰의 아픔과 생츄어리 필요성을 주제로 콘텐츠 공모전을 개최해 시와 그림 등의 수상작을 발표했습니다. 또 10일에는 동요 ‘예쁜 아기곰’의 작사ㆍ작곡가 조원경씨가 재능기부로 제작한 노래 ‘사육곰의 꿈’을 SNS에 공유하기도 했어요.

 ◇정부와 농가는 줄다리기 하는 동안 사육곰은 방치 

경기 용인의 한 사육곰 농장에서 불법 증식된 반달가슴곰이 식용 개를 키우는 ‘뜬 장’을 본떠 만든 철제 우리에 갇혀 있다. 녹색연합 제공
경기 용인의 한 사육곰 농장에서 불법 증식된 반달가슴곰이 식용 개를 키우는 ‘뜬 장’을 본떠 만든 철제 우리에 갇혀 있다. 녹색연합 제공

그렇다면 현재 사육곰은 443마리는 왜 문제가 되고 있을까요. 사육곰 문제는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부가 수출용 사육곰 사업을 장려하면서 많은 농가가 이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국제적 멸종 위기종인 곰 보호 여론이 높아지자 1985년 곰 수입이 금지됐고, 여기에 우리나라가 1993년 사이테스(CITESㆍ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면서 수출 길 마저 막혔습니다.

이후 농가들은 새끼를 낳아서 동물원 등에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는데, 정부가 사육곰 종식을 위해 2014년 남은 사육곰 967마리에 대해 중성화 수술을 시킨 겁니다. 정부는 곰이 열 살이 넘으면 약용 등 ‘가공품’ 용도로 도축할 수 있도록 했지만 웅담을 찾는 이들이 없어 농가들은 도축을 하지 않은 채 최소한의 사료만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농가들은 정부의 장려 정책 때문에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개체 당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부처인 환경부는 예산을 들여 상업 목적으로 길러진 농가의 사육곰을 매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동물단체들은 시민들이 사육곰을 매입 할 테니 정부가 생츄어리라도 만들어달라고 주장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고 합니다.

정부와 민간이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는 지금도 사육곰 443마리는 좁은 철창 속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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