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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파독전시관. 최흥수 기자

막장에서 나온 그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지상의 빛과 함께 그의 눈과 귀로 독일어가 달려든다. 그에게 독일어는 석탄처럼 깜깜한 언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1970년대 어느 해의 6월. 한국인 광부는 긴 의자에 앉아 독일 광산 노조의 파업독려문을 펼쳐 든다. 광부는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읽는다. 거기, 한국어가 있다.

“한국 회원 여러분께... 우리들은 노동자로서 기업주에 대항하여 쟁투할 수 있습니다. 단결은 언제나 국경을 초월해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함께 투쟁하십시다... 독일인 동지가 여러분들을 도와줄 것입니다.”

남해 파독전시관. 최흥수 기자

그로부터 40여년 후. 남해 파독전시관에서 나는 광부의 파업독려문 앞에 붙들려 있다. 내가 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파업독려문이 파독 광부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서사에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서사 속에서 광부들은 조국 근대화를 위해 인생을 희생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서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독일 사회로부터의 핍박이다. 즉 이 이야기의 절정은 파독 광부들이 독일 사회로부터 추방되고 고립되는 장면, 모욕받고 차별받는 장면에서 만들어진다.

남해 파독전시관. 최흥수 기자

그러나 이 파업독려문은 한국인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이들, ‘독일인 동지’들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광부들은 극한의 노동 환경에 내몰렸을망정, 독일 사회 ‘밖’으로 내몰린 존재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유인물은 파독 광부가 독일 사회에서 온전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성원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증명한다.

왜냐고? ‘사람, 장소, 환대’를 쓴 인류학자 김현경의 이야기를 살짝 비틀자면, 사회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말을 섞는 순간’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이들을 소통의 대상으로 인정치 않으면, 이들은 사회에 ‘없는’ 존재가 된다. 이제 파업이라는 ‘사회 제도’가 언어로 작동된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이 파업독려문은 한국어도 독일의 사회 제도를 작동시키는 ‘언어’에 포함되었음을, 파독 광부들도 ‘함께 사회를 만들어 내는’ 소통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파업독려문을 읽고서 한국의 이주민들을 떠올렸음을 고백해야겠다. 한국인들은 이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괄호를 친다. 요컨대, 그들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다. 이는 이주민들이 재난 경보라는 공적인 의사소통에서 배제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어로 된 재난 문자가 당도해도 그 문자는 그들을 재난으로부터 구하지 못한다. 이 문자는 한국 사회가 이주민들을 소통의 대상으로 삼지 않음을, 그들에게는 성원권이 없음을 암묵적으로 선언한다. (한국 사회가 이주민들을 구성원으로 인정했다면 비용이 얼마이든 다국어 재난 문자 시스템을 구축했을 것이다.) 이때 한국어는 언어로 만들어진 분리 장벽이 된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안의 ‘외부’를 만들고, 250만 이주민들을 그곳으로 추방시킨다.

매일 이를 확인시켜 주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본 조선 학교의 학생들에 대한 마스크 지급 배제 소식에는 분노하지만, 이주민들이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없다는 것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이주민들이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연의 법칙처럼 자명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우리 안의 ‘외부’는 자기기만이요 허상이다. 이 사회의 진짜 모습이란 긴 의자에 이주민을 포함한 수많은 ‘우리’들이 뒤섞여 앉아 있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분리될 수도 없다.

남해의 봄날, 파독 광부가 긴 의자에 앉아 파업독려문을 읽는 꿈을 꾼다. ‘단결은 언제나 국경을 초월해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함께 투쟁하십시다.’ 그 광부의 옆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 앉아 있다. 물론 각자의 언어로 즐겁게 떠들면서.

그 긴 의자에는 장벽이 없다.

백승주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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