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더 잘생겼다, 그래서 ‘더 좋은 놈’ 정우성

입력
2020.04.17 04:30
수정
2020.04.17 10:5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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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영화로운 사람] <4>정우성

※ 영화도 사람의 일입니다. 참여한 감독, 배우, 제작자들의 성격이 반영됩니다. <영화로운 사람>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가 만나 본 국내외 유명 영화인들의 삶의 자세, 성격, 인간관계 등을 통해 우리가 잘 아는 영화의 면면을 되돌아봅니다.

정우성. 아티스트 컴퍼니 제공
정우성. 아티스트 컴퍼니 제공

그를 처음 본 건 군복무 중이던 1994년 추석 저녁 무렵이었다. 부대에선 명절을 맞아 최신 영화를 비디오로 보여준다고 했다. 당시 스타 중의 스타로 꼽히던 고소영이 주연한 ‘구미호’였다. 남자의 정기를 빨아들여야만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구미호와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영화였다. 영화의 만듦새는 투박했고, 수시로 옷을 훌훌 벗는 신인 남자배우의 연기마저 어색해 이야기에 쉬 몰입하지 못했다. 하품을 하면서도 남자의 얼굴에 종종 눈이 갔다. 도저히 배우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얼굴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우성을 처음 만난 건 2004년 늦가을이다. 10년 사이 그는 영화 ‘비트’(1997)와 ‘태양은 없다’(1998) 등에 출연하며 청춘 스타가 됐다. 인터뷰를 위한 만남이었는데, 보자마자 바보 같은 말을 던지고 말았다. “정말 잘 생기셨군요.” 류현진 선수의 투구를 보고 “정말 잘 던지시는군요”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이없는 외모 평가였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막을 수 없었다.

첫 인상은 그리 좋진 않았다. ‘비트’의 주인공 민처럼 반항기가 느껴졌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짧았고 냉소적이었다. 스타이기에 건방지다고 오인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어느 언론사 선배가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났다가 말싸움만 하고 헤어졌다는 말이 그의 첫 인상에 영향을 준 면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살아온 그의 평소 태도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인상은 많이 바뀌었다. 스크린으로 접하는 그는 항상 진화하고 있었다. 특히 ‘감시자’(2013)와 ‘아수라’(2016), ‘더킹’(2017), ‘인랑’(2018) 등을 거치며 그는 매번 진일보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한 영화인은 정우성을 “뼛속까지 스타 배우”라고 평가하며 그의 직업 의식과 관련한 일화 하나를 들려준 적이 있다. 정우성과 함께 한적한 카페에서 편하게 수다를 떠는데, 정우성이 갑자기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CF 모델 같은 포즈를 취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카페 밖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어서라고. “배우는 팬들의 판타지를 깨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활동 초기 선배와 매니저 등으로부터 들은 조언을 그는 20년 넘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우로서 그의 자세가 어떤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5년 5월 남수단의 아중톡 난민촌을 방문한 배우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제공
2015년 5월 남수단의 아중톡 난민촌을 방문한 배우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제공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난민에 대한 생각을 여러 인터뷰를 통해 드러낼 때는 한 인간의 성숙이 느껴졌다. 2017년 겨울 그를 예기치 않게 술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해외 난민 봉사 활동을 마친 직후 공항에서 곧바로 술자리를 찾았는데, 봉사활동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즐거운 표정으로 소주잔을 들어 건배를 외치곤 했다. 다른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온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유쾌함이 느껴졌다. 그는 2018년 한 독립영화 관련 행사를 후원하고선 생색을 내기는커녕 큰 금액을 못 드려 죄송하다는 문자메시지를 행사 관계자에게 보낸 적도 있다. 작은 기부 활동마저 보도자료를 내고 자기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몇몇 스타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 2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개봉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났을 때 그는 ‘여성배우’라는 용어를 고집하기도 했다. “여배우라는 표현을 여성들이 싫어하니 쓰는 것”이라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여성주의자로서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데뷔한지 벌써 26년. 그처럼 오랜 시간 정상을 지키며 활동하고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송강호 이병헌 정도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스타들이 빛의 속도로 떠올랐다가 빛의 속도로 몰락한다. 상품가치 없는 스타에 시장은 냉혹하다. 정치적인 발언이나 행동 한번만으로도 추락할 수 있는 게 한국 연예계 현실이다. 그런 연예계에서 정우성은 드문 존재다. 2018년 예멘 난민이 제주도로 대거 입국했을 때 이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정우성에게 비난을 쏟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지금도 그를 ‘난민의 왕’이라고 이죽거리며 악성 댓글(악플)을 쓰는 사람이 많다. 그의 영화는 개봉도 하기 전 평점 테러에 시달리곤 한다. 그래도 정우성은 “악플을 다는 사람들을 굳이 욕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이해시키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안타깝게도 시대가 바뀌어도 이해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우성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잘생겼다는 건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정우성이 잘생겼다’는 건 객관적 사실”이라는 농담을 했다. 그가 진지하게 그리 말해도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각과 마음이 더 잘 생긴 배우다. 할리우드에 조지 클루니가 있다면 충무로에 정우성이 있다. 그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서 맡은 배역 호칭처럼 좋은 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가 계속 할 말은 하는 스타로 활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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