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걸의 필동멘션] 20년 전 나타났던 멋쟁이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20.04.22 04:30
18면

 ※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에 실립니다. 

 <2> 자취를 감춘 옷 잘 입는 남자들 

지난달 시작한 tvN의 예능 프로그램 ‘마포 멋쟁이’에서는 남성 아이돌그룹 멤버인 송민호(왼쪽)와 피오가 출연해 다양한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tvN 제공
지난달 시작한 tvN의 예능 프로그램 ‘마포 멋쟁이’에서는 남성 아이돌그룹 멤버인 송민호(왼쪽)와 피오가 출연해 다양한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tvN 제공

2001년, ‘GQ’라는, 남자 패션 잡지를 창간한 뒤, 남자의 복식과 매너에 관한 나름대로의 규칙을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같은 질문이 내내 따라다녔다. 번쩍거리는 상품 이미지는 개선된 자신을 미리 비춘다고 생각하나? 정신 건강을 해치지 않고 페이지를 끝까지 넘길 수 있나? 마음의 빈 곳을 채워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티켓과 세속적 빈 곳을 채워줄 해밀턴 시계 광고 중 어느 것에 더 끌리나?

마침 전자 기기와 화장품을 망라한 남성용 산업에 불이 붙었다. 어쩌면 남자 패션에도 전환점이 올 것 같았다. 때맞춰 가로수길, 청담동, 홍대, 테헤란로, 곳곳에 정교하게 차려 입은 남자들이 출몰했다. 셔츠는 소매 밖으로 얼만큼 나와야 하는지, 어떤 넥타이 매듭을 고를지, 양말 색깔은 구두와 어떻게 맞출지, 견습 기간을 거친 남자들은 나날이 진화했다. 캐주얼과 정장의 혼합, 평일과 주말의 만남 같은 윤택한 생활의 언어가 매끄럽게 고동쳤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런 속도라면 30년 뒤에는 (거지도 옷을 잘 입는다는) 이탈리아를 따라잡고, 20년만 지나도 뼛속까지 패션인 일본 남자들과 견줄 수 있겠지.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내 눈을 의심한다. 거리에서도 카페에서도 어디에서도 그렇게나 잘 입던 남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운석이 떨어져 멸종한 공룡처럼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우주가 진동하는 에너지 선들로 만들어졌다는 상상 속 선 이론이 남자 복식에도 맹위를 떨쳐 어느 선을 넘자 엔트로피를 감당하지 못한 걸까. 결국 번영의 시대가 지나자 아무 옷이나 입어도 되는 무법의 시대가 펼쳐진 걸까.

이 와중에 마세라티 같은 슈퍼 카 소비가 늘었다는 통계가 저자 거리에 나뒹군다. 사실 남자의 브랜드는 밤중에도 알아볼 수 있는 여자의 그것과 달리 웬만해선 눈에 띄지 않는다. 사력을 다해 보테가 베네타 서류 가방을 산다고 해도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검약했던 지난 세월이 무슨 헛수고인가. 리넨 재킷의 오묘한 미감을 짚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거울 앞에서 혼자 벌이는 옷감의 퍼포먼스에 불과할 것이다.

역사상 부유하고 힘센 남자는 외로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미감에 민감한 남자는 외롭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의 안목을 지지해줄 사람은 한국 땅에 없으니까. 행거 치프며 커프스 버튼을 곁들였다 치면 당장 너무 힘을 줬다, ‘오버’했다 소리가 면전에 꽂힌다. 아름다운 것을 찾는 여행은 새 옷의 빳빳함을 없애려고 시종에게 미리 입혔던 영국 귀족의 탐미적 엽기 취미로나 취급된다. 만사를 정치적 경건함으로 바라보는 축에게는 겉치레의 꼴 사나운 풍자로만 비칠 뿐. 그러나 백만 개의 전구도 기죽을 휘황한 마세라티라면 지불 능력과 지위라는 사회적 합의 사항이 작렬할 것이다.

인생의 어떤 것에도 디테일은 중요하다. 이 문제는 직업적으로 슈트를 입는 남자들에게 더 심화된다. 가령 타이를 맬 때는 타이와 벨트 사이의 관계가 간단치 않다. 정말 피곤한 법칙이지만, 타이를 제대로 골라 정확히 매면 귀찮은 일이 훨씬 줄어든다. 예전 직장 동료는 항상 타이로 배를 덮었다. 타이 한 쪽 끝은 벨트를 지나 바지 지퍼 쯤에 자리잡고, 다른 면은 매듭 아래 10㎝ 정도 늘어뜨려져 있었다. 그는 길게 내려온 타이의 넓은 면으로 불룩 나온 배를 가리려 했으나 소용 없는 줄 이미 알고 있었다. 숱 없는 정수리를 옆머리로 덮어보려는 노신사의 서글픔과 닮았다는 것을.

타이 양 끝이 어디서 멈추는가에 상관없이 무조건 수평으로 맞추던 남자들도 흔했다. 이렇게 하면 양쪽 끝이 다 벨트 몇 센티미터 위에 놓이지만 우스꽝스럽기는 방금 전의 예와 막상막하이다. 타이의 넓은 면 밑으로 좁은 쪽이 나오게 매는 건 괜찮지 않냐고? 아니, 전혀. 가장 확고하고 빠른 규칙을 말한다면, 셔츠 중앙의 앞여밈은 벨트 버클과 항상 수직으로 만나야 한다. 더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은 타이 끝이 벨트 아래까지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 복식에서 가장 간단한 공식조차 이렇게 복잡한데 여자들은 얼마나 골치아플까. 그래 봤자 수식은 하나. 남자의 우주는 슈트, 셔츠, 타이의 삼위일체에 의해 통치된다. 셋으로 나뉜 형태의 하나에 동의하면 무한한 다수가 기다린다. 패턴의 하늘, 직물 짜임의 은하수, 칼라와 커프스와 라펠의 성간 여행, 진주 단추와 뱀피 벨트의 하모니, 호박에서 증류한 향수. 넥타이 핀이 사라져버리는 블랙홀….

지난해 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명품 브랜드 프라다 패션쇼에서 한 남성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밀라노=AFP 연합뉴스
지난해 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명품 브랜드 프라다 패션쇼에서 한 남성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밀라노=AFP 연합뉴스

지금 남자 패션은 개인의 성향에 맞춰진 듯 보이고, 남자들은 자기의 감성, 색채에 대한 감각, 남성성의 재배치를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는 듯 보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소위 양복이 들어온 지 그렇게 긴 세월이 지났지만, 매장에 걸린 남성복의 형태는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 세대의 체형이 진작에 서구적 비율로 변했는데 체지방에 유달리 공격적인 문화가 여전히 ‘예전 아저씨’의 형상을 권하다니. 최신의 것에 대한 숭상이 유난스러운 사회가 구식 계량법을 지금까지 고수하다니, 차라리 템플 기사단의 음모론 같다. 한국 남자에게 요구되는 패션이 이렇게까지 보수적인 이유는, 때로 보수적인 것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아방가르드한 전위 예술의 형태를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옷에 관해서라면 여자에게 다 맡긴다는, 통 큰 건지 자포자기인 건지 도무지 모를 남자들, 자기 몸 사이즈도 몰라서 아내가 알아서 맞는 옷 사준다고 자랑인지 엄살인지 내뱉는 남자들은 전보다 줄었지만,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다. 분명 복식에 해박한 존재가 갖는 중요성은 완전히 문외한인 남자에게도 의미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룩에 눈을 뜬 남자, 하이 웨이스트와 와이드 팬츠로 중무장한 테일러링의 강자, 나노의 오차없이 완벽하게 맞춘 런웨이의 신사 몇 사람만으론 이런 경향을 뒤엎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복 탐험가이자 패션 탐지기이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자기 객관화와 균형 감각의 문제일 텐데 여성들은 그 점에 관한 한 훨씬 우월한 종족들이다. 자기 피부와 체형에 어떤 색깔과 형태의 옷이 어울리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풍부하다. 게다가 인조 손톱 하나 가지고 한 시간을 이야기할 지식과 체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남자는 옷감에 대해 1분도 떠들 수 없다. 결국 21세기 초반 몇 년 간 남자들이 환골탈태한 듯 보였다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앞선 세대의 구식 자부심과 억압된 의복 전통과 전형적인 아저씨 행동양식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면서도 ‘새로운 남자’가 된 듯 연기했기 때문이다. 무리에서 튕겨져 나가는 것에 대한 신 네안데르탈인들의 공포, 자기만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 주는 생경함은 우주선이 해왕성 궤도 외곽 카이퍼 벨트를 벗어난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유치원 시절부터 성인 남자가 될 때까지 반복된 매일의 삶에서 남자들은 처음부터 충성을 맹세했다. 한 번도 수정되지 않은 공화국의 헌장은 이것이다. ‘절대로 튀지 말아라’. 패턴은 균일하다. 언제나 일정한 한 묶음의 유행이 밀려왔다 밀려간다. 클래식과 아메리칸 캐주얼의 틈새로 힙합과 프레피가 공존하는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으니 기존의 스타일 유산은 쌓일 새도 없이 사라진다. 동네 작은 빵집도 그 세월 그 역사 속에서 비밀한 실록을 쌓아갈 텐데. 결국 튀지 못하게 하는 태세와 튀지 않으려는 태도는 형제와 같아서 반발 없이 패션의 억압과 질서를 만들었다.

사실 우리에겐 남자 패션이 도입되는 단계별 수순, 이탈리안 스타일, 브리티시 트래디셔널, 아메리칸 프레피 룩, 면도날 같은 하이 패션, 마지막 빈티지에 이르는 과정을 밟을 여유가 없었다. 오직 ‘먹고 살기 바빴다’는 관용어만이 모든 것을 용납하는 절대적 설명이자 변명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우주의 어떤 남자 연구소도 안목 있으나 가난한 남자가 갈만한 옷 가게를 찾을 수 없다. 작고 특별하며 특정된 매장은 꿈 속에나 있으니까.

빈한한 남성복 역사 속에서 개혁가들은 항상 모방하기 힘든 그들만의 것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짓단을 접고, 조끼 맨 아래 단추를 끼우지 않게 된 이유였다. 즉, 바지 밑단을 몇 센티미터 접을 것인가는 유행이 아니라 신념의 문제였다 스타일의 핵심은 상상력. 누군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단추를 채운다면, 그 또한 고유한 패션이 될 것이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록밴드 ‘너바나’의 리더였던 커트 코베인은 넝마 같은 허름한 카디건과 티셔츠를 걸쳤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록밴드 ‘너바나’의 리더였던 커트 코베인은 넝마 같은 허름한 카디건과 티셔츠를 걸쳤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허름한 카디건과 티셔츠를 걸친 커트 코베인을 본 성장기 소년은 넝마조차 멋진 사람이 입으면 환상이 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입은 것뿐만 아니라 사는 모습까지 완벽해 보이는 30대 이후의 캐리 그랜트, 양말을 짝짝이로 신어도, 분홍색 바지를 입어도 존재 자체가 패션의 본성 같은 믹 재거를 우리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면 달랐을까?

참조 사항으로서의 멋진 한국 남자는 개화기의 신지식인들이나, 아름답게 구부러진 머리카락으로 시를 읽어주던 백석, 1960년대 중절모의 명동 신사들뿐이었을까? 이 관용 없는 사회에서 남자들은 누구를 보고 따라야 했을까? 군복을 검게 염색해서 입었던 아버지? 바지 밑단을 판탈롱처럼 넓게, ‘몸뻬 바지’처럼 좁게 수선해 입던 동네 반항아 형? 군대 ‘야상’을 제대 후에도 입으며 남은 남성성을 만지작거리던 선임? 따지고 보면 그들 역시 스타일 모형을 가지지 못했던 헐벗은 존재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스타일을 옷 입는 방식으로 생각하지만, 스타일은 차를 마시거나 펜으로 편지를 쓰는 것처럼 그 사람의 성품을 드러낸다. 패션은 어떤 일을 하고 무슨 옷을 입느냐를 따지지만, 스타일은 그 옷을 입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패션은 우월함을 감추지 않는 엘리트용 이즘과 같아서 자신을 사회 중심 질서에 소속되게 하지만 스타일은 그가 세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준다. 타인과의 동화(同化)가 아니라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방식.  결국 세상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인 것이다.     맨발에 로퍼를 신은, 나름대로 성장(盛裝)한 남자들은 서식지를 다 잃고 이제 갤러리아 백화점 안에서나 겨우 보인다. 반짝거리는 검정 로퍼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복숭아뼈 두드러지는 맨발은 수줍은 섹시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냉담한 시대를 사는 화려한 남자들에게 세상은 아직 남성용 동화가 넘실대는 원더랜드. 쾌락과 몽상 사이에는 방화벽이 없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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