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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3> 소녀와 소년-멋진 사람이 되는 법
우리 사회는 어린이들에게 고정적 성 역할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직업 선택엔 남녀구분보다 능력과 의지가 중요하다. 사계절 제공

어떤 멋진 어린이가 있다. 다정하고 배려심이 많으며 때로 겁이 많고 잘 울지만 동생을 잘 돌보는 착한 어린이다. 이 어린이는 언제나 깔끔하게 씻고 정리 정돈하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가 취미다. 이 다음에 자라면 어린이 집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 어린이의 친구 또한 멋지다. 매일매일 축구를 즐기는, 체격이 아주 튼튼한 어린이다. 수업시간에는 교실의 어떤 친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발표도 잘 한다. 때때로 책상이 지저분하거나 교실을 뛰어다닌다고 야단맞을 때도 있지만 털털한 성격이라 다음에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싸움을 하기도 하는데 약한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참, 장래 희망은 축구선수, 그리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이 두 어린이를 가상의 교실에서 찾아보자. 예쁘게 머리를 기른 여자 어린이, 그의 친구로는 축구 유니폼을 입은 씩씩한 남자 어린이를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에게 요구되는 성 역할을 떠올려서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 교실에서 이 아이들을 찾는다면, 축구 유니폼을 입은 씩씩한 여자 어린이와 살짝 긴 머리에 강낭콩 화분을 소중하게 든 단정한 남자아이가 당신을 반길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이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씩씩한 여자아이,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아이, 목소리가 큰 여자아이, 눈물이 많은 남자아이를 수도 없이 만나왔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들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더 크게 작동한다. 양보와 희생은 더 이상 여성만의 미덕이 아닌데도 말이다. 사계절 제공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 어린이들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저 어린이들은 아마 누구보다도 ‘너는 왜 여자답지 못하니’, ‘남자답지 못하게’라는 잔소리를 종종 들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미 어른이 된 우리도 그렇게 자라왔다.

그런 면에서 윤은주가 쓰고 이해정이 그린 ‘소녀와 소년-멋진 사람이 되는 법’(사계절)은, 모든 어린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며 남녀에 상관 없이 멋진 어른으로 자라는 방법을 알려주는 다정하고 멋진 안내서이다. ‘항상 왜? 라고 질문하는 솔미누나’는 “사람들 말대로 하면 정말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위의 성 역할 잔소리들에 담긴 편견을 하나 하나 깨 나가고 뒤집어서 돌려준다.

남자 아이들은 늘 강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강박이 강해질수록 남자아이들은 불행해진다. 사계절 제공

소녀에게는 “쉽게 양보하지 마” “칭찬에 매달리지 않는 소녀가 되자” “예쁘다는 말을 사양하자” “손을 들자”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자” 등의 조언을, 소년에게는 “다정한 소년이 되자” “잘 씻고 자주 갈아입자” “소년이여, 밥을 하자” “펑펑 울자”라는 조언을 들려준다. 물론 멋진 사람이 되려면 소년과 소녀 모두 이 조언들을 귀담아 들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언들은 평소 여자아이라서, 남자아이라서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소녀와 소년-멋진 사람이 되는 법’은 멋진 사람, 훌륭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멋진 사람이란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며, 시간이 있을 땐 책을 읽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항상 운동하고 독서하는 사람이다. 멋진 사람은 성별에 관계 없이 어떤 직업이든 가질 수 있고, 다양한 생각과 취향을 가질 수 있다.

또 멋진 사람은 가정의 다양한 일을 분담하고 참여하며, 자신과 타인의 신체의 특징과 다양성에 대해 올바른 관점과 이해를 가지고 신체적 특징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의 소녀와 소년은 전통적인 성 역할을 떠나 좀 더 너른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롤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녀와 소년, 멋진 사람이 되는 법
윤은주 지음ㆍ이해정 그림ㆍ서한솔 감수
사계절 발행ㆍ54쪽ㆍ1만3,500원

멋진 사람으로 자라나는 데에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없지만, 소녀와 소년은 어린이로 머물러 있지 않으며, 그들은 곧 여성과 남성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소녀와 소년-멋진 사람이 되는 법’은 그 부분을 잊지 않는다.

“뽀뽀하면 안 된대? 아니야, 둘 다 서로 너무나 뽀뽀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있어. ‘둘 다’ 원할 때만. 이게 가장 중요해. 하기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하는 건 절대 안돼. 그건 범죄야.”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연애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이야기 해 준 적이 있었던가. ‘소녀와 소년’의 마지막, ‘우리도 연애할 거예요’ 꼭지는 어린이들의 연애를 지우거나 흥미거리로 돌리지 않는다. 미주알고주알 어떤 것은 폭력이고, 어떤 것은 거절이고, 연애는 의무가 아니라고도 귀띔해 준다.

그리고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한국 사회의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연애에 대해 배우는 것은 이런 교육적 안내가 아닌 대중미디어를 통해서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어린이들은 K팝, 웹툰, 드라마, 유튜브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연애에 대해 눈을 뜨고 연애, 그리고 성인 남녀의 모습을 자신의 삶에 반영한다.

오늘날 우리는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불건전한 성문화와 디지털 성착취영상, 성범죄까지도 어린이ㆍ청소년 문화의 어두운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아이들을 멋진 시민으로 길러냄에 있어 우리의 교육, 그리고 우리 사회의 사회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라는 분석은 이 지면에 다 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중 일부, 상당히 많은 부분에 대한 답변, 우리가 작게라도 시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소녀와 소년, 멋진 사람이 되는 법’은 담아내고 있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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