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융통무애(融通無碍)] 안된다는 백가지 이유 보다 된다는 한가지 이유를

입력
2020.04.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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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서울 남대문시장 상점들의 휴업과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코로나19로 서울 남대문시장 상점들의 휴업과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알리바이를 부재증명이라고 한다. 범죄현장에 없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없는 것의 물증은 찾기 힘들다. 예를 들어 UFO나 유령, 네스 호의 괴물을 봤다는 증언들은 많지만, 그런 것이 없다는 물증은 딱히 없다. 피의자의 알리바이도 ‘없었음’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음’의 증명이다.

가설은 증거가 있어야 입증할 수 있다. 그 신빙성은 증거가 많을수록 높아진다. 예를 들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하려면 서울, 뉴욕, 도쿄, 런던의 샘플을 모아야 한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파리, 베를린, 모스크바, 베이징의 샘플도 모아야 한다.

그렇지만 한 마리의 흰 까마귀가 발견되는 순간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은 무너진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모든 고니(백조는 일본말이다)는 희다’고 믿어 왔었다. 조상 대대로 흰 고니 외에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697년 호주에서 검은 고니가 발견되었다. 그 순간 “모든 고니는 희다”는 오랜 상식이 무너졌다. 그래서 철학자 칼 포퍼는 모든 과학이론은 잠정적 가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증거에는 한계가 있다. 19세기 과학자들은 성능이 좋아진 망원경으로 천왕성까지 관찰했다. 그 궤도는 뉴턴 이론에서 조금씩 어긋났다. 그래서 천왕성 밖에 또 다른 행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1846년 마침내 해왕성이 발견되었고, 사람들은 뉴턴 이론에 박수를 보냈다.

몇 년 뒤 수성의 궤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견되었다. 그러자 해왕성을 발견했던 그 과학자가 태양과 수성 사이에도 미지의 행성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이름(Vulcan)까지 지었다. 그러나 그 예언은 빗나갔다. 행성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뉴턴 이론이 흔들렸다. 그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같은 증거를 두고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증거로는 가설의 운명을 정할 수 없다. 증거의 힘은 생각보다 약하다.

수학이나 철학은 과학과 다르다. 증거가 아닌 추론만으로 뻗어나간다. 그래서 모든 것이 확실하다. 철학자 월라드 콰인은 “철학자에게는 물음표가 필요 없다. 따옴표와 마침표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철학의 확실성에 관한 웅변이다.

철학자들이 추론하기에 ‘모든 까마귀는 검다’가 의미하는 것은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이다. 두 문장의 뜻은 확실히 똑같다. 따라서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하려면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를 입증하면 된다. 그 증거는 무진장하다. 우리 주변의 파란 하늘, 빨간 사과, 주홍 연필, 노란 개나리, 하얀 드레스가 다 그 증거다. 까마귀가 아닌 것들로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하는 이 기발한 방법에는 논리적 오류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어색하다. 이 까마귀의 역설은 우리가 쉽게 속는 함정을 보여준다. 그 함정은 ‘까마귀가 아닌 것’이나 ‘검지 않은 것’이라는, 엉터리 범주에 있다. 까마귀나 검은색은 동질적이다.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분명하다. 반면 ‘까마귀가 아닌 것’이나 ‘검지 않은 것’은, 아무 공통점도 없는 잡동사니들이다. 그 이질적인 묶음은 UFO나 유령과 마찬가지로 허구다. 그런 허구로는 가설을 입증할 수 없다.

까마귀의 역설은 증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친다. 중요한 것은, 증거와 가설 간의 관계다. 일하기 싫어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는 증거만 찾는다. 대개 공통점이 별로 없는, 잡동사니들이다. 이질적인 잡동사니 증거들을 갖고 ‘나는 할 수 없다’는 무기력 가설이 입증되었다고 믿는다.

코로나19 위기로 경제가 참 어렵다. 전례 없이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전례 없는 대책을 학수고대한다. 하지만 소심한 당국자는 지레 몸을 사린다. “우리는 해결 능력이 없다”면서 이런 저런 이유를 대기 바쁘다. 가장 흔한 이유는 전례다. 과거에 머물겠다는, 세련된 자백이다.

그 다음 흔한 이유가 규정이다. “법 제○조, 제○조 때문에 그 일은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 조문들 사이에는 별로 공통점이 없다. 그 일의 근거가 ‘아닌’ 잡동사니 증거로써 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한국판 까마귀의 역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못 하겠다던 당국자가 나중에는 떠밀려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계면쩍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이 방법은 상당히 효과가 크다”며 자화자찬하거나 자기최면을 건다. 없다던 근거조항을 찾아 보여주기도 한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고(故) 정주영 회장은 도전가였다. 그는, 안 된다는 백 가지 이유보다 된다는 한 가지 이유를 찾았다. 그의 강한 집념은 소극적인 사람들의 번지르르한 변명보다 훨씬 강건하다. “이봐, 해 봤어?”라고 그가 말했을 때 ‘해 봤다’는 뜻은 실제를 말한다. 그는 이런저런 부작위(不作爲)의 알리바이들이 허구임을 알았다. 허구는 실제를 이길 수 없다. 지금처럼 어려울 때 그의 긍정 마인드가 그립다.

“이봐, 해 봤어?”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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