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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열 구분 없이 왼쪽에서 다섯번째) 사우디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열 구분 없이 왼쪽에서 네번째) 왕세자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슈라위원회에 참석하는 모습. 포토아이

중동의 무슬림들은 “인샬라”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알라가 원한다면”이라는 뜻의 이 말 속에는 이슬람 신앙의 핵심 중 하나인 정명(定命)에 대한 믿음이 녹아 있다. 정명론은 세상만사가 모두 알라가 정해 놓은 뜻에 따라 움직인다는 믿음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는 무슬림들은 알라의 뜻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떤 이는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자 오만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알라의 심판이 시작된 것이라고 흥분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리야드>지의 3월 23일 자에 실린 ‘코로나19는 알라가 우리에게 화를 낸 것인가?’ 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코로나19를 알라의 채찍으로 생각하는 무슬림들이 있다면, 코로나19의 정치적 파급 효과는 생각보다 더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코로나19의 여파는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왕위 계승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1985년생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젊은 왕세자는 엄격한 율법을 강조하는 와하비즘을 따르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자동차 운전을 허용하고 영화관 개관을 주도했다. 작년 10월 수도 리야드의 킹파흐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 월드투어는 이런 그의 개혁 노선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국제유가가 크게 하락한 가운데 투자 유치, 각종 콘서트 및 스포츠 행사 개최, 관광산업 육성 등 왕세자가 도모한 모든 계획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를 빌미로 사회개혁을 반대해 온 일부 보수주의자는 ‘사우디 비전 2030’에 따른 자유화 조치를 둘러싸고 알라의 경고가 개시되었다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19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내부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파이잘 빈 반다르 리야드 주지사를 비롯한 수십 명의 왕족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왕족을 치료하기 위해 특별 지정된 병원에선 500석 이상의 병상을 추가로 확보하고 왕가 내부의 코로나19 확산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왕자 중 상당수가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등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된 유럽 국가를 자주 방문하였고, 이로 인해 왕가 내부로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만 국왕은 제다 인근의 섬에 마련된 궁으로 거처를 옮겼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홍해 쪽의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와중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왕위 계승에 관한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사건이 터졌다. 지난 3월7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왕가 내부의 정적들을 전격적으로 체포한 것이다. 당시 숙청된 인물은 무함마드 빈 나예프 전 왕세자와 현 살만 국왕의 남동생인 아흐마드 빈 압둘아지즈 왕자를 포함했다. 2017년 가을 국가방위부를 이끌었던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 킹덤홀딩스를 소유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 등을 수도 리야드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구금한 이후 왕가 고위 인사에 대한 숙청이 다시 진행된 것이다.

이번 왕실 내부 인사 숙청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내부에 잠재된 불안 요인을 보여준 것 같다.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국왕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는 후계 구도를 둘러싼 권력 암투를 막기 위해 자신의 아들 형제들 중에서 왕위를 승계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확립된 형제 왕위 계승의 전통은 1975년 파이잘 국왕이 암살되는 등 숱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하지만 2015년 압둘라 국왕이 서거하고 현재의 살만이 왕위에 오르면서 형제 왕위 계승의 전통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마침내 국왕에 등극한 살만은 이복 형제인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를 폐위시키고,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왕세자 그리고 자신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을 부왕세자로 각각 지목했다. 이로써 초대 국왕의 손자들이 왕위에 등극할 기회가 생겨났다. 그리고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은 드디어 무함마드 빈 나예프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고 현재의 왕세자 직분을 갖게 된다. 이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초대 국왕의 손자 세대에서 첫 번째로 왕위에 등극하는 인물이 되며 그만큼 권력 승계 과정에서 다양한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정적들을 제거하자 베일에 가려진 왕가를 둘러싼 무성한 추측이 쏟아져 나왔다. 쿠데타 음모론과 함께 미국 대선 이전 왕위 계승 작업을 앞당기려 한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다면, 젊은 왕세자의 입지가 더 약화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어느 시점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왕위에 등극할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최근 왕실 내부의 정적 제거와 코로나19 확산 등 변수는 향후 왕위 계승에 다양한 도전 요인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김강석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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