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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과 초선, 21대 국회를 말하다] <상>
김웅 “비판 그치지 않고 대안 제시하는 야당 돼야죠”
김무성(왼쪽) 미래통합당 의원과 김웅 당선자가 27일 국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김웅이 온다고 안 매던 넥타이를 맸다, 하하하.”(김무성)

“실제로 뵈니 명불허전 무대(김 의원 별명 ‘무성 대장’줄임말)십니다.”(김웅)

6선 김무성(68) 미래통합당 의원과 예비 초선 김웅(49) 당선자가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 706호 김 의원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 21대 총선에 불출마해 23년간 머문 국회를 떠나게 된 김 의원과 4ㆍ15 총선 서울 송파갑에서 승리해 여의도 입성을 앞둔 김 당선자의 심경은 어떨까.

출생지(영남과 호남)부터 정치 입문 경로(각각 김영삼 전 대통령, 유승민 의원이 발탁), 삶의 궤적(기업인과 검사), 패션 스타일까지. 닮은 구석이라곤 180㎝가 넘는 ‘큰 키’ 밖에 없는 것 같은 두 사람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담에서 △일하는 국회 △103석으로 쪼그라든 보수진영 재건 △지역주의 극복 방안을 두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면 국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만남에서 김 의원은 김 당선자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선물하며 ‘배지의 무거움’을 강조했다. 한 달 일찍 배지를 단 김 당선자는 “포용하며 변화에 앞장선다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달 말이면 국회를 떠나는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6선)이 김웅 당선자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선물한 후 달아주고 있다. 배우한 기자
-서로의 첫인상은

김무성(이하 무)= 조직에 저항해 옳은 일을 해보고자 도전하고 나온 사람이라 저돌적인 인상을 예상했는데 나보다 키도 크고.(김 의원은 181㎝, 김 당선자는 187㎝) 원래 키 큰 사람이 유하다.(웃음)

김웅(이하 웅)= 늘 TV로만 뵙다가 직접 뵙는데 우리 정치에서 ‘거인들의 시대’가 있었다. 마지막 거인을 보는 느낌이다.

-김 당선자는 선거를 처음 치렀는데

웅= 수영하는 법을 책으로 아무리 읽어도 막상 물에 들어가면 다른 것처럼, 나름 선거 전에 이런저런 구상을 했는데 마주한 현실은 완전히 다르더라.

무= 나눠주는 명함을 유권자들이 몇 퍼센트나 받았나.

웅= 송파는 그나마 잘 받아주시는 편이었다. 출근 시간에는 30%, 나머지 시간대는 70%였다.

무= 부산에 처음 출마(15대 국회)했을 때 명함을 나눠주니까 찢어버리는 사람이 많았다. 쇼크를 받아서 ‘안 찢어지는 명함을 만들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짧은 선거 기간 동안 여러 유권자를 만나면서 ‘민주주의가 이런 것이다’라고 느끼게 된다.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다.

-두 사람의 정치 입문 계기는

무= 동해제강 공장장으로 일하던 중에 광주 민주화운동 참상을 알게 됐다. 군인들이 시민을 총으로 제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와 YS가 이끌던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멤버로 활동하면서 입문하게 됐다.

웅= 검경 수사권 조정 업무(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를 담당하며 청와대 인사들을 접하게 됐는데 실망을 넘어 분노를 하게 됐다.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정권 재창출 목적으로 느껴졌다.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사직했고 이후 검찰 인사 파동(정권 수사를 하던 검사들 좌천)을 지켜보는 와중에 새로운보수당에서 영입 제안이 왔다.

김무성(오른쪽) 미래통합당 의원과 김웅 당선자가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배우한 기자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웅=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시절 경험한 17대 국회 때는 당은 당대로 당론이 있었고, 의원들도 자기 소신과 목소리가 있었다. 그런데 20대 국회에서 다시 국회 업무를 하면서 놀랐던 것은 양 진영이 개미집단 싸움하듯 다투기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당은 청와대 출장소 같은 느낌이었다.

무= 20대 국회에서 우리 당은 밖에서 투쟁만 했다. 장외투쟁은 옳지 못하다. 공직선거법(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치법(공수처법)이 올라왔을 때 나는 공수처법은 내주고 선거법은 받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공수처법은 집권하고 나서 바꿀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장외투쟁만 하다가 결국 두 법을 다 내주게 됐다. 협상을 아예 못한 거다.

-18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은 김 의원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대화와 타협’의 국회를 이끌었는데

무= 여야 원내대표 입장에서 제일 쉬운 게 싸우는 일이다. 그때는 우리가 여당이었고 박 의원은 나보다 아홉 살 많았다. 그만큼 사회 경험도 많고 머리도 나보다 두 배 좋았다.(웃음) 여당은 야당한테 져줘야 한다. 여당이 숫자로 이기려고 하고 야당은 장외로 나가버리면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매일 아침 만나서 서로 요구 사항을 공유하고 타협한 결과다. 정치의 기본은 협상과 타협이다.

-공룡여당을 견제할 효과적인 방법이 있나

무= 무조건 협상이다. 수가 적을수록 협상을 통해서 많은 걸 얻어야 한다.

웅= 우리 처지를 그대로 인정하고 시작하려고 한다. 대안 제시도 부지런히 할 생각이다. 선거를 치르면서 답답했던 점이 ‘통합당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외치기는 하는데 ‘어떻게’냐고 물어보면 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든, 권력기관 개편이나 탈원전이 됐든 내년 초에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 그때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고치겠다”라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김무성(왼쪽) 미래통합당 의원과 김웅 당선자가 27일 국회 본청을 배경으로 악수하고 있다. 김 당선자 왼쪽 가슴에 달린 국회의원 배지는 김 의원이 이날 선물한 것이다. 배우한 기자
-통합당은 어떻게 쇄신해야 할까

무= 보수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었는데 민심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하고 진영 대결로만 가다가 졌다. 이념지형, 정치지형이 다 바뀐 것을 인정하고 중도층을 끌어 안아야 한다. 무엇보다 극우 유튜버와 결별해야 된다.

웅= 선거를 치르며 ‘차명진 세월호 유가족 비하 발언’을 놓고 지지자들과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우리 당의 문제는 큰 팩트를 부인하기 위해 작은 팩트를 가져와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5ㆍ18 민주화운동 자체를 인정한 후에 논란이 되는 일부 유공자 명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 작은 팩트를 걸고 넘어지는 식이다. 공감능력부터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김 당선자의 이력을 보면 윗선 눈치 안보고 직언하는 스타일이다. 당론이나 권력자의 의도와 다른 의견을 가질 경우 어떻게 할 생각인가

웅= 검찰 조직은 단단해서 그 안에서 치고 받아도 흔들리는 게 없었다. 그런데 정치권에 와 보니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당이나 특정인에게 큰 상처가 될 것 같더라. 포용하면서 가려고 한다. 다만 크게 잘못된 길을 간다면 세게 붙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분이 영남(김 의원), 호남(김 당선자) 출신인데 우리 정치의 고질병이 지역주의다

무= 지역주의 벽을 허물려고 이번에 광주에 출마하려 했는데 잘 안됐다.(한숨) 지역주의는 결국 정치인들이 뿌린 씨앗이다. 내가 모신 YS 비판도 할 수밖에 없다. YS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모두 훌륭한 분이셨는데 지역감정을 만든 건 비극이다. 그래서 YS한테도 DJ 돌아가시기 전에 ‘두 분 화해하시고 지역감정도 해소해야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결국 못하고 돌아가셨다.

웅= 전라도 사람인 제 입장에서 볼 때 지역감정은 소외에서 시작됐고 정치가 끼어들면서 커졌는데 이제는 지역주의가 괴물이 돼서 정치와 정치인을 부리는 단계가 돼 버렸다.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과 김웅 당선자가 27일 대화를 나누며 국회 잔디밭 위를 걷고 있다. 배우한 기자
-각자의 초심과 향후 계획은

무=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무엇보다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못하고 의정생활을 마무리하는 게 아쉽다. 원외에서 정권 교체를 위한 밑거름 역할이 필요하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친박 비박 구분 없이 21대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낙선한 의원들과 공동 사무실을 만들 생각이다.

웅= 현 정권이 잘못한 부분을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출마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그 목적은 못 이루고 당선만 된 상태다. ‘국민들이 이 정권을 왜 다시 신임해줬을까’를 고민하고 있고 야당 의원으로 견제와 대안 제시에 주력할 것이다. 특히 ‘진짜 권력기관 개편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려고 한다.

다음달 말이면 국회를 떠나는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6선)과 한 달 후 국회에 입성하는 김웅 당선자가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진행=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정리=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한설이 PD ssolly@hankookilbo.com

김용식 PD yskit@hankookilbo.com

전효정 인턴PD

▦김무성

1951년 부산 출생. 한양대 경영학과 졸업 후 동해제강 상무, 삼동산업 대표 등 기업 경영을 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자 창립 멤버로 참여, 이른바 상도동계 막내로 정계에 입문했다. 45세였던 1996년 15대 총선에서 부산 남을에 출마,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후 미래통합당 전신인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원내대표, 새누리당 대표를 역임했다. 15대부터 20대까지 내리 6선(19대는 재보선)을 한 그는 2018년 보수통합의 마중물이 되겠다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 배우한 기자

▦김웅

1970년 전남 여수 출생. 순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후 1997년 3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검사 생활을 담은 베스트셀러 ‘검사내전’ 저자이기도 하다. 2018년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으로 일하며 검경 수사권 조정 대응 업무를 맡았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수사권 조정안에 강하게 반대하다 좌천됐고, 지난 1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2월 유승민 의원이 이끈 새로운보수당 1호 인재로 영입돼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21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갑에 출마해 당선, 오는 5월 30일부터 초선 의원으로 임기를 시작한다.

김웅 미래통합당 당선자.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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