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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박구원 기자

21대 비정규 국회의원 노동자들께 씁니다. 먼저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맞는지 한참 망설였다는 걸 말씀드려요. 안 그래도 축하와 당부는 이미 배부르게 들었을 테니까요. 그래도 다시 한번 축하와 당부를 드릴게요. 축하와 칭찬은 아무리 들어도 모자라고, 당부는 뒤돌아서면 잊히기 때문입니다.

아, 개개인이 헌법 기관인 분들에게 ‘비정규’라는 말을 붙인 것이 불편하실 수 있겠네요. 죄송하지만 한 제자의 말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진로를 묻는 제 질문에 그 제자는 이렇게 답했지요. ‘저는 정규직은 바라지도 않아요. 아무 비정규직이라도 들어가서 잘리지 않고 일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대답 앞에서 저는 한없이 한심한 선생이었습니다. 무슨 소리냐구요? 여러분들도 비정규직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라는 소리입니다.

요즘 여러분들의 기분은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 슈트를 처음으로 완성시켰을 때와 비슷할 겁니다. 그 전능한 슈트의 힘으로 무엇이든 하고 싶겠지요. 그러나 이런 당부를 하고 싶어요. 무엇을 할지 정하기 전에 무엇을 하면 안 될지 먼저 생각하시라고요. 여러분이 하면 안 될 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함지르지 않기(마이크 있잖아요), 욕하지 않기, 사람 때리지 않기, 혈서 쓰지 않기(그냥 헌혈하세요), 주어가 없다고 그 사람이 아니라고 우기지 않기(국어 선생님 성함이?) 등등.

어때요? 어렵지 않지요? 그런데 어쩌다 이런 요구를 여러분에게 하게 되었을까요? 그건 아마 여러분들이 ‘근로’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근로)는 걸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근로라는 말은 고용주의 입장에서 근면하게 일한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니까요. 즉 근로라는 말 속의 진짜 주인은 일하는 이가 아니라 그를 관찰하는 고용주의 시선입니다. 그래서 카메라가 돌아갈 때 여러분들은 다음과 같은 어느 식당의 사훈을 떠올렸던 겁니다. ‘사장이 보고 있다.’ 사장이 보고 있을 때, 정말로 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요. 중요한 것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이런 행동에 대한 처방전은 간단합니다. 근로하지 않고 노동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 노동이라는 것, 우리 모두는 근로하지 않고 노동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됩니다. 근로는 노예가 하고 노동은 자유민이 하는 것이거든요. 누구에게나 일은 하기 싫은 것이지만, 그래도 ‘노동’이란 말 속에서 일의 주인은 바로 일하는 사람 자신입니다. 물론 현실은 부조리하지요. 가사와 육아 노동은 그림자 취급당하고, 청소년 노동자들은 실습이라는 이름의 부당한 노동을 하며, 작가들의 작품 활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근로’라는 이름은 이런 현실에 더해 수많은 이들의 노동을 지워냅니다. 그래서 ‘노동은 하지만 근로자는 아니다’라는 이상한 논리가 탄생하지요. 더불어 자본의 효율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근로’라는 악당은 사람들의 삶을 교묘하게 지워버리고 파괴하죠. 이 악당이 그린 풍경화 속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은 강남역 철탑 위에, 불타는 물류 창고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노동은 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기에 무겁고도 무서운 노동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은 국민이나 국가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이름을 위해 복무하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추상이 아닌 이 땅의 구체적인 삶들을 위해 복무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저 철탑 위의 노동자가 땅 위로 내려오도록 하길 바랍니다. 살기 위해 일하러 간 사람들이 죽어서 돌아오는 걸 막기를 바랍니다. 어렵다구요? 그 첫걸음은 어렵지 않습니다. 국회의원 노동자 여러분, 이것만 기억하고 행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제발,

근로하지 말고 노동하십시오.

백승주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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