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지 않는 매력… ‘고양이 문화’ 국내에 더 스며들기를”

입력
2020.05.09 03:55

 EBS ‘고양이를 부탁해’ 터줏대감 김명철 수의사 

 털 알레르기도 두렵지 않은 캣통령 “고양이는 삶의 일부” 

 책ㆍ동영상 제작 등 왕성한 활동… ‘냥신’과 팟캐스트까지 

 두 ‘사모님’과 행복해… 고양이마을 조성에 한몫 하고파 

김명철 수의사가 본인 집에서 반려묘 사모님(오른쪽), 애기씨와 함께 찍은 사진. 정작 진짜 사모님(아내)은 사진을 찍느라 함께 하지 못했지만 김 수의사는 엄연히 '가족사진'이라고 했다. 김명철 수의사 제공
김명철 수의사가 본인 집에서 반려묘 사모님(오른쪽), 애기씨와 함께 찍은 사진. 정작 진짜 사모님(아내)은 사진을 찍느라 함께 하지 못했지만 김 수의사는 엄연히 '가족사진'이라고 했다. 김명철 수의사 제공

한 집에 두 ‘사모님’과 함께 산다고 했다. 초면인 이에게 무슨 소린가 싶던 찰나. 한 사모님은 평생 반려인, 다른 사모님은 반려묘 이름이란다. EBS 고양이 행동교정 프로그램 ‘고양이를 부탁해’의 터줏대감인 김명철(37) 수의사 이야기다. ‘미야옹철’(고양이 울음소리 의성어인 ‘미야옹’ + ‘김명철’) 애칭으로 더 유명한 그다.

 고양이로 완성된 일상 

“사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동물 그리고 사람 이야기(동그람이)' 인터뷰 주인공들은 으레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거나, 어떤 계기로 동물과 친해져 자연스레 관련 일을 찾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김 수의사는 그간의 주인공들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국내 반려문화, 특히 반려묘가 매우 생소하던 1990년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고양이는 이웃집이 키우던 닭이나 훔치던 ‘도둑고양이’가 익숙했다. 02학번으로 전남대 수의대에 진학하고 졸업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땐 몰랐다. 고양이가 자신의 인생을 깊이 후벼 파고 한 자리 차지할 줄은.

고양이 매력에 빠진 건 서울 한 동물병원에서 수의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다. 오로지 반려인만 바라보는 강아지들은 부담스러웠다. 이와 달리 고양이는 옆에 있는 친구 같았다. 서로 아끼는 건 알지만 선은 지키는 편함과 긴장의 중간 사이. 아무리 좋아도 여름에는 덥다고 피하는 식이다. “고양이는 선을 넘지 않아요.”

그를 집사(고양이 반려인) 세계로 이끈 건 ‘아톰’이다. 직장생활로 상경해 수의사인 룸메이트와 살던 2009년 가족으로 맞았다. 이전 주인이 포기해 룸메이트의 동물병원에서 크던 생후 7개월 가량된 친구였다. 그러나 함께 한 지 1년반 만에 하늘로 떠났다. 당시로선 치사율 100%인 전염성복막염이었다.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하며 여러 차례 수혈을 받고, 안락사를 고민하던 시기. 내 자식 병을 못 고치는 의사 마음에,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한달 정도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아직도 부르면 눈물이 먼저 흐르는 이름. 인터뷰 중 눈시울이 불거진 그가 말했다. “그땐 수의사인 게 싫었어요. 앞으로의 상황을 더 자세히 예측할 수 있으니까요.”


김명철 수의사의 첫 반려묘인 아톰이 2009년 전염성복막염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아톰은 이때 세상을 떠났다. 김명철 수의사 제공
김명철 수의사의 첫 반려묘인 아톰이 2009년 전염성복막염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아톰은 이때 세상을 떠났다. 김명철 수의사 제공

아톰의 죽음은 첫 반려생활의 미숙함과 잦은 야근으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본인의 잘못 같았다. 준비되지 않으면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 마음 먹었다. 그러고 10년이 흘렀다. 그사이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생활공간도 넓어졌다. 또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내도 만났다. 그렇게 지난해 초부터 조심스레 새로운 반려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반려동물을 잃은 허탈감을 준비되지 않은 또 다른 반려생활로 채우지 말라”고 당부한다. 적어도 펫로스(반려동물 상실증후군)에는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지 않는다’는 게 지론이다.

아내는 2013년 우연찮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를 TV로 접하고, 반려묘의 건강 상담을 받다 인연이 됐다. 돌보지는 않으면서 많은 동물을 키우는 데만 집착하는 애니멀호더가 원룸에 방치하던 21마리 고양이 중 하나였다가 지난해 3월 새로 가족이 된 ‘사모님’. 그리고 오랜 길거리 생활에 따른 폐렴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구조돼 또 다른 가족이 된 ‘애기씨’까지. 그는 삶 대부분을 고양이와 공유한다. “수의사가 된 후 3~4년 정도 지나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생겼어요. 심할 때는 약을 먹어야 하죠. 그래도 좋습니다. 고양이는 이제 제 삶의 한 부분이니까요.”

사모님(오른쪽)과 애기씨가 사냥놀이에 집중하는 모습. 두 반려묘는 지난해 김명철 수의사의 새가족이 됐다. 김명철 수의사 제공
사모님(오른쪽)과 애기씨가 사냥놀이에 집중하는 모습. 두 반려묘는 지난해 김명철 수의사의 새가족이 됐다. 김명철 수의사 제공


 고양이를 위한 일상 

국내 유일 반려묘 행동교정 프로그램인 ‘고양이를 부탁해.’ 그는 2018년 3월 시작해 현재 시즌5가 방영 중인 이 방송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이를 통해 ‘캣통령’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반려견 행동교정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로 유명세를 타며 ‘개통령’으로 불리는 강형욱 훈련사와 비슷한 경우다. 김 수의사는 이 프로그램에서 사연을 신청한 집사의 집을 직접 찾는다. 그리고 현장에서 집사와 반려묘의 행동을 진단한다. 예를 들어 시도 때도 없이 깨무는 반려묘가 고민이라는 집사를 만나보고, 고양이도 관찰한 후 해결책을 제시하는 식이다.

“정말 방송처럼 반려묘들의 문제행동이 감쪽같이 사라지나요?” 프로그램 관련 질문 중 가장 많이 접하는 내용이다. 그는 영역동물인 고양이의 생활환경을 개선해주면 반려묘의 문제행동이 좋아진다고 말한다. 여기에 집사 교육까지 진행하면 문제행동의 80~90% 정도는 교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단 꾸준함은 전제 조건. 한 번 교육으로 문제 행동이 잠시 좋아질 순 있어도, 교육이 일정 기간 이어지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저도 마법을 부리지는 못해요. 프로그램은 모든 과정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뿐이죠.”

지난달 방송된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김명철 수의사가 고양이의 문제행동을 교정하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 캡처
지난달 방송된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김명철 수의사가 고양이의 문제행동을 교정하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 캡처

그가 문제행동 해결책으로 유독 강조하는 사항은 두 가지로, '캣타워'와 '사냥놀이'다. 캣타워는 야생성이 남아 있는 영역동물 특성상 높은 곳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켜볼 수 있는 수직적 공간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사냥놀이는 고양이에게 개로 비유하면 산책일 만큼 스트레스 해소에 가장 효과적이다.

지난해 2월 펴낸 ‘미야옹철의 묘한 진료실’도 이런 내용들이 주로 담겼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기본부터 지키자’다. 진료를 하다 보면 오랜 기간 고양이를 키운 집사들도 의외로 기본을 모른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여기에는 밥그릇과 화장실 위치 선정 노하우 같은 가장 기초적인 내용들도 포함된다. 그는 비싼 장난감을 고민하기보다 잠자리가 불편한지, 화장실에 문제는 없는지 살피는 게 반려묘에게 훨씬 중요하다 강조한다. 최근에는 ‘고양이를 부탁해’에 더블 캐스팅으로 출연 중인 나응식 수의사와 함께 ‘냥신 & 미야옹철의 캣토피아’ 팟캐스트 방송도 시작했다. 지난 3월말부터 주1회 진행하는 이것 역시 약간의 수다를 버무려 관련 내용들을 더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김명철 수의사가 지난달 서울 연남동 동그람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 고양이 문화가 좀 더 스며들었으면 한다”고 했다. 동그람이 김광영
김명철 수의사가 지난달 서울 연남동 동그람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 고양이 문화가 좀 더 스며들었으면 한다”고 했다. 동그람이 김광영

“국내에 고양이 문화가 좀 더 스며들었으면 좋겠어요.”

고양이 특성은 무시된 채 몸집 작은 개 정도로 치부되던 인식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유 없이 학대 당하는 길고양이만 봐도 아직은 ‘도둑고양이’ 신세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과도기다. 그가 고양이 마을을 꿈꾸는 이유다. 코로나19와 대일갈등이 없던 지난해 초만 해도 국내 관광객들이 많이 찾던 대만 허우통 고양이마을과 일본 아이노시마 고양이섬. 특히 100여 마리 이상 고양이들이 마을 이곳 저곳에서 편히 놀며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허우통은 수시로 찾으며, 그곳 담당자들과도 교류한다. 국내에서 고양이를 사랑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문화를 만들기에 고양이 마을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다. 사실 국내 고양이마을 조성은 후보지 선정부터 지자체 및 주민들과의 협의, 적정 개체수 조절 등 실제 운영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그는 “시대적 흐름이니 언젠가는 국내에도 꼭 고양이마을이 조성될 걸로 본다”며 “고양이마을을 조성하는데 구심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santafe29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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