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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아이콘이 된 두 당국자의 화법 분석>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과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 연합뉴스

우리는 매일 이 사람들과 만난다. 수수한 외모와 평범한 말투. 색다르거나 뛰어나지 않다. 색으로 치면 무채색이다. 그저 담담하다. 게다가 같은 복장에 틀에 박힌 흐름이 같은 시간에 반복된다. 지루할 법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들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름 앞에 ‘코로나 영웅’, ‘신뢰의 아이콘’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이들의 말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통상적이지만 의례적이진 않다. 우리는 하루 세끼 밥 먹듯 이들의 말을 듣는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그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왜 이들의 말에 신뢰하고 열광할까. 우선 이들을 둘러싼 환경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위기일 때 사람들은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다. 누군가에게서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지도자의 입을 쳐다본다. 평소 흘려 듣던 지도자의 말에 주목한다. 말의 수요가 생겼고, 열광의 필요조건을 갖춘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가 더 있다. 말을 잘하고 싶은 욕구가 바로 그것이다. 언제부턴가 말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말하기 관련 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이전에 없던 일이다. 말이 많으면 공산당이고, 말을 잘하면 사기꾼 같다고 했던 사람들이 말을 잘하고 싶어 하고, 말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구름이 끼었다고 반드시 비가 내리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환경이 독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덕을 보기도 한다. 결국 그 사람에게 달렸다. 이들의 말이 좋은 평가를 받는 출발점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데 있다. 내 몫만큼만 충실히 하겠다고 마음먹은 듯하다. 첫 단추를 잘 꿰고 시작했다. 말을 잘하고자 하는, 자신을 잘 보이려는 욕심이 없다. 욕심이 없으니 떨 이유도,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할 필요도 없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민방위 복장도 욕심 없음을 잘 드러내준다. 그래서 말이 자연스럽고 듣는 사람은 편안하다. 그 배경에 높은 자존감이 자리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말이 좋은 평가를 받건 그렇지 않건 일희일비하지 않다. 호평을 받았다고 우쭐하지도, 혹평에 의기소침하지도 않는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무시할 건 무시한다. 자신을 믿는다.

기본에 충실하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대신 기본은 충실히 지켜야 한다. 사과, 위로, 칭찬, 부탁, 거절, 축하 등 모든 말에는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할 요소가 있다. 위기를 관리하는 말에도 담겨야 할 여섯 가지 내용이 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의 말은 이 모두를 포함한다. 첫째, 사실과 현황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공개한다. 은폐와 축소, 왜곡은 불에 기름 붓듯 위기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든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환자 동선과 발병 병원을 공개하지 않아 혼란을 초래한 경험이 있다. 둘째, 사건이나 사태의 성격을 규정한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 본질과 쟁점은 무엇이며, 심각성 정도는 어떠한지 밝힌다. 셋째, 위기가 미칠 영향과 파장 등에 관해 설명한다. 피해나 부정적인 영향은 어느 수준과 범위이고,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지 상세히 밝힌다. 넷째, 정부가 현재 취하고 있는 조치와 진행 상황을 알린다. 아울러 잘못 대처한 점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한다. 다섯째, 앞으로 사태를 해결해나갈 방안과 각오를 밝힌다. 끝으로, 국민이 해야 할 일을 소상히 알리고 협조를 당부한다.

실력이 있으니까 간결하다

욕심 없다는 게 미덕이 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있는 데도 욕심 부리지 않을 때 욕심 없음은 비로소 겸손의 미덕이 된다. “사회적 연대의 힘입니다. 보건의료인들의 헌신과 적극 협조해 준 대구경북 시민들, 자발적으로 거리두기에 참여해 준 국민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대구에서 신규 확진자가 처음 발생하지 않은 4월 10일 정 본부장이 한 말이다. 실력 있는 사람의 겸양과 여유가 묻어난다.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말을 들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실력 있는 사람의 말은 쉽고 간결하고 명료하다. 그러나 이게 쉽지 않다. 쉽게 말하려면 내용이 길어지고, 간결하게 말하려면 모호하고 어려워진다. 이런 모순을 해결해야 좋은 말이 된다.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이해는 쉽다. 절제력, 공감력, 전문성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스스로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은 안다고 다 말하지 않는다. 필요한 말만 한다. 공감력이 있으면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안다. 알기 때문에 그들을 배려하는 말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런 공감력이 발휘되려면 전문성이 필요하다.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맥락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지식과 정보에 정통한 것은 물론, 이유와 원인, 배경까지 환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 모두를 충족하고 있다. 더욱이 정 본부장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반면교사의 교훈까지 체득했다. 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정은경(가운데)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지난달 22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환자 진료 및 치료에 힘쓰는 의료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침착하고 안정된 말투

실력만 있으면 ‘재수’ 없을 확률이 높다. 실력 있는 사람의 달변은 잘생긴 얼굴처럼 쉽게 질리고 달디 단 음식처럼 느끼하다. 말 못하는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말은 느끼하지도 질리지도 않는다. 이유가 뭘까. 답은 말투에 있다. 말에도 표정과 감정이 있다. 말에 담긴 표정과 감정이 말투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말투도 각양각색이다. 퉁명한 말투와 상냥한 말투, 자신 없는 말투와 활력 넘치는 말투, 투정하는 말투와 긍정적 말투 등 다양하다. 어떤 사람과 대화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기운이 빠진다. 대개 이런 사람은 누군가를 비난하고 험담하거나 매사에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다.

말투가 말하는 사람의 인상과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좌우한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말투가 좋지 않으면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말투는 침착하고 안정적이다. 믿고 의지하게 싶게 만든다. 듣고 나면 안심이 되고 희망이 보인다. 이들의 말만 잘 들으면 문제없을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지난 6일 충북도립대 연구팀이 두 사람의 브리핑 음성을 분석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낮은 음높이와 적은 편차가 차분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진정성이 통했다

‘진정성’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진실하고 참된 성질이라고 나온다. 이 말은 본래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했는데, ‘너 자신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거짓과 꾸밈이 없으면, 겉과 속이 같으면 진정성이 있는 것일까? 알 것 같으면서도 손에 딱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말을 들어보면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주로 하는 말은 설명과 당부다. 실력이 있으면 설명은 잘할 수 있다. 문제는 당부다. 당부는 잔소리나 훈계에 가깝다. 누구나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그런 당부의 말을 지시가 아닌 부탁으로, 훈계가 아닌 간청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대상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이 두 가지가 있을 때 느껴진다. 두 사람에게는 이것이 있는 것이다. 이들 말을 들으면 사람을 위하는 마음,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한 사람이라도 더 희생자를 줄이고자 하는,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하루 빨리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 따르고 부응하고자 한다.

그 동안 하루하루 수척해지는 낯빛과 늘어나는 흰 머리를 보며 짠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 두 사람이 잠도 좀 푹 자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짠하고 나타나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고대하고 염원한다.

부처님 오신 날, 유시민 작가와 함께 봉하에 내려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방송을 위해서였다. 오가는 열차 안에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화제에 올랐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했던 유 작가는 정 본부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매사에 그렇게 성실할 수가 없고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의대에 간, 전형적인 모범생 아니냐고 도발적으로 물었다. 그가 손사래를 치며 한 말은 의외였다. 서울의대생 시절, 공부만 한 게 아니라 어렵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학생운동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평상시 말도 지금 방송에 하는 것처럼 또박또박 일목요연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방송으로 보는 그녀와 실제 그가 똑같다는 얘기였다.

강원국 작가ㆍ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강원국 작가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연설문을 쓰다 청와대에 입성,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연설문을 담당했다. 그 경험을 살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등을 펴냈고, 전북대 기초교양교육원 초빙교수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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