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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은 불가능
개방성과 다자주의 확고한 지지 통해
중견국 모범국가 위상 다져야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두를 괴롭히고 있지만 미중 양국의 협력을 가능하게 할 만큼 충분히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양국 간 동병상련의 협력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이전투구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주 회견에서 베이징을 ‘잔혹한(brutal)’ 권위주의 정권이라 칭하고 자유진영에 대한 이념적, 정치적 적대국이라고 언급했다. 소위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설립하여 탈중국 공급망을 건설한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국으로 설정하고 미국과 동맹국의 이익을 지키고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규칙기반 질서를 강화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언론은 미국이 중국에 신냉전을 선언했으며 한국이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고 논평한다. 보고서에서 한국이 언급된 맥락을 찾아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최근의 선언들은 새롭지도 않고 냉전적이지도 않다. 이미 오바마 정부 말기부터 대중 견제 노선이 등장했고, 2018년 10월 허드슨 재단에서 펜스 부통령은 지금보다 더 강경한 어조로 중국을 비판하기도 했다. 세계가 냉전기처럼 하늘을 맞댈 수 없는 양대 진영으로 분리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미중의 상호 의존이 높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미중을 따라 두 세계로 나뉘기도 쉽지 않다.

미중 관계가 요동치는데 따라 한국이 절벽에 선 것처럼 두려움에 떨지 않으려면 미중 관계 속에서 바로 서는 원칙이 필요하다. 현 정부는 미중 관계가 전략 경쟁의 긴 여정이 시작되면서 출범한 정부이기에 남은 2년 동안 다음 정부가 이어받을 수 있는 표준을 제시해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첫째로 고려해야 할 점은 미중 전략 경쟁은 이제 시작되었으며 매 국면마다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무역과 기술 부문에서 진행 중인 경쟁은 규범과 가치, 금융, 에너지 부문을 거쳐 군사 안보에까지 이를 것이다. 미중이 벌이는 경쟁에 매번 놀라 당황하지 않으려면 경쟁의 전체 로드맵을 예상하고 선제적인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국내의 총역량을 기울여 전문적인 견해와 모범으로 한발 앞선 대응을 해야 한다.

둘째, 미중 관계에서 항상 수학적 중간점에 위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상 동맹인 미국 편에 가깝지만 때로 중국 편에 가까운 이슈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의 정책이 어떠한 규범에 기초하고 있는가, 다른 중견국들이 모범 삼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 미중이 충돌할 때 가장 큰 고난을 겪으면서 미중 양국이 모두 중시하는 발전된 중견국이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국가들이 미중 경쟁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 예의주시하는 지표 국가이다. 한국은 모든 국가가 소중히 해온 개방적이고 다자주의적이며 합의에 의한 국제 질서를 수호하는 명분을 대변할 수 있다. 특정 강대국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 중심의 국제 정치를 바로세우려는 정책 개념과 비전을 강구해야 한다.

셋째, 미중 양국은 피 흘리는 싸움을 하면서 다른 국가들의 참여를 내심 원하고 있다. 중국의 보복 정책이나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서 보이듯 진정한 규범 기반 질서가 정립되기 이전에 보복 기반 질서가 횡행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겠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강대국 경쟁의 와중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피해의 부담이 국내에서 가능하면 균등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넷째, 미중 양국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의 강 대 강 국면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미국 내에서 미국의 대중 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전략으로 길을 잃는 상황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고 기업들의 대중 협력 요구도 지속되고 있다. 백악관은 이번 대중 전략보고서에서 뜻이 맞는(like-minded) 국가들과 협력하겠다고 했지만, 한국이야말로 미중 내부에서,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뜻이 맞는 국가들과 적극 소통의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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