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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평범해서 특별한 배우 설경구 
 ※ 한국영화가 지난해 탄생 100년을 맞았습니다.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며 영화보다 재미있는 한국영화 100년의 이야기를 영화전문가를 통해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서 들려드립니다. 
배우 설경구는 평범한 외모에서 뿜어내는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으로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쇼박스 제공

배우 설경구는 1967년 5월 14일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 태어났다. 공무원으로 서울 마포구청에서 근무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에 이사한 그는 마포구 도화동에서 성장기를 보낸다. 공부를 잘한 건 아니었지만 지각 한 번 없는 성실한 학생이었고, 취미로 아카펠라 팀에 들어가 중창단 활동을 하던 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다만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장래의 꿈이 있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수한 설경구는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했지만, 연출가가 되려면 연극영화과를 가라는 지인의 조언을 받고는 실기점수 비중이 낮았던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낸다.

“소극장 무대에 올라섰는데 꼭 구름 위를 걷는 것 같고, 제가 듣기에도 목소리가 막 떨리는 거예요. 딱 세 음절 말했는데 어디 앉았는지 보이지도 않는 심사위원이 그만 들어가래요. 떨어졌다 싶었죠.”(신동아 2002년 10월호)

연극 '이런 노래' 출연 당시의 설경구(왼쪽). 한국일보 자료사진
 
 ◇배우 생각 없었던 연출 지망생 

‘감독 잘 하려면 연기도 해봐야 한다’는 말에 자극받은 86학번 신입생 설경구는 여름방학 때 천승세 작가의 희곡 ‘만선’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연기를 경험하게 된다. 영화 ‘공공의 적’(2002)에 슈퍼마켓 아줌마로 재회하게 되는 뮤지컬 스타 전수경, 2학년 선배였던 개그우먼 박미선, ‘고스트 맘마’(1996)와 ‘찜’(1998), 드라마 ‘연애시대‘(2006)를 연출하는 한지승 감독과 함께 오른 무대로 그의 배역은 곰치의 딸 슬슬이의 애인인 연철이었다. 이 무렵의 설경구는 “숫기도 없었고 남 앞에 나서는 게 제일 싫었다”고 한다. “누가 봐도 배우를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숨겨진 배우의 재능을 발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면근육에 경련이 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공연을 마친 설경구는 며칠 후 연출을 맡은 선배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무대에 있는 네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는 말과 함께 “네가 연출 공부하려고 이 학교에 온 것은 알지만 연기를 한 번 해 봐라”는 권유가 담겨 있던 이 한 통의 편지가 인생의 향방을 바꿨다. 2학년이 된 설경구는 전공으로 연기를 선택한다.

1993년 5월, 4학년이 된 설경구는 제1회 전국연극제에 ‘달아 달아 밝은 달아’를 올리며 연출가로도 이름을 올린다. KBS 탤런트 공채시험 3차 전형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전국 연극영화과가 모여 경연을 벌이는 자리인 만큼 빠질 수 없었고, 결국 시험을 뒷전으로 한 채 연극 준비에 몰두한다. 공연은 호평 속에 막을 내렸고,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덕성여대 약대 연극반의 연극 ‘들소’에 객원 연출을 맡게 된다. 과 수석으로 전액장학금을 받는가 하면, 지도교수로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이나 대학원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듣기도 했다.

2학기를 맞은 설경구는 동문인 전수경, 유오성, 이문식이 단원으로 있던 극단 한양레퍼토리에 들어간다. 설경구의 연극 데뷔작은 영국의 극작가 레이 쿠니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심야에는 바바라와, 새벽에는 메리와’였다. 이때 자신의 배역이 등장하는 차례를 기다리던 설경구는 긴장을 풀고자 선물 받은 양주 한 병을 비우고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연극은 6개월 간 성황리에 공연되었고, ‘다들 젊고 열심인 극단’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객석을 채우는 관객이 늘어갔다.

한양레퍼토리 시절은 길지 않았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줄 알았는데, 학교 선후배가 사회까지 이어지니까 싫었던”(한국경제신문 2014년 11월 7일자) 설경구는 공무원 시험을 친다는 핑계로 극단에서 빠져 나온다. 대학 선배의 배려로 신촌의 소극장에서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1994년 5월 극단 학전을 이끌던 김민기 대표에 의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무대에 복귀한다. 초연부터 1996년까지 2년간 설경구는 ‘지하철 1호선’을 공연하면서 80여 가지의 배역 중 두 가지만 빼고 모조리 소화하는 저력을 과시했고, 연극 ‘이런 노래’, ‘구렁이신랑과 그의 신부’, 뮤지컬 ‘모스키토’ 등에 출연하면서 대학로 연극배우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설경구(왼쪽 세 번째)가 주연급으로 나오는 첫 영화 '송어'. 강수연, 김인권, 고 이은주 등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영화 '박하사탕'은 "나, 돌아갈래"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배우 설경구를 널리 알렸다. 이스트필름 제공
 ◇“경구야 배우 얼굴이야” 

장선우 감독의 ‘꽃잎’(1996)에서 내레이션과 더불어 소녀를 찾는 운동권 청년 ‘우리들’ 중 한 명을 맡은 것이 설경구의 영화 입문이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의 조연출로 일했던 대학 동기 심광진 감독의 추천 덕분이었다. 본업은 연극이고, 드라마나 영화는 아르바이트로 여기고 있었지만, ‘꽃잎’에서의 경험은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촬영 일정을 마치고 뒤풀이 술자리에서 유영길 촬영감독은 설경구를 칭찬하며 말했다. “경구야, 너 같은 얼굴이 배우하기 좋아. 평범하기 때문에 네가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얼굴이 나올 수 있어.”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설경구의 소시민적 평범성에서 유 감독은 도리어 천의 얼굴이라는 비범한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설경구의 첫 주연작이 될 뻔한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었다. 그러나 술자리가 있은 지 며칠 뒤 홍 감독이 전화로 한마디를 하면서 캐스팅은 무산되고 만다. “그 역을 맡기엔 경구씨는 너무 착해요.” 그러나 ‘지하철 1호선’을 인상 깊게 보았던 임상수 감독이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에 만화가 역으로 참여시키면서 마침내 운이 트이게 된다. 6분 남짓한 분량이었지만 이 작품에서의 연기로 영화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받게 된 것이다. 배창호 감독의 ‘러브 스토리’(1996), 민병천 감독의 ‘유령’(1999)에서 단역을 거친 설경구는 박종원 감독의 ‘송어’(1999)로 처음 주연급 배역을 꿰차게 된다. 이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강수연은 회식 자리마다 그를 동반해 “반드시 (크게) 될 배우”라 소개하면서 영화계에 얼굴을 익히도록 배려해주었다.

“배우로 살아오면서 ‘당신의 인생작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똑같이 답했습니다. 영화 ‘박하사탕’(1999)이라고요. 앞으로도 어떤 영화를 찍든 ‘박하사탕’이 제 대표작이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겁니다.”(한국일보 2018년 4월 25일자)

설경구의 캐스팅이 결정되는 과정은 실로 극적이었다. 원래 ‘박하사탕’의 김영호 역으로 낙점되어있던 배우는 ‘초록 물고기’(1997)로 이창동 감독과 협업한 한석규였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읽은 한석규가 배역을 거절하면서 자리가 비었고,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본 스태프들은 설경구를 추천했다. ‘송어’의 강원 삼척 로케이션 촬영 중 잠깐 서울로 돌아왔던 설경구는 연락을 받은 뒤 만남을 가졌고, 이 감독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시나리오를 건네주었다. 얼마 후 제작자인 배우 명계남으로부터 오디션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설경구는 스태프에게 빗을 빌려서 극 중 영호가 머리에 권총을 대는 장면을 즉석에서 시연해 보였다.

설경구는 역대 첫 1,000만 영화 '실미도'로 명실상부한 충무로 스타 자리에 올라 선다. 시네마서비스 제공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중년배우 설경구에게 '설탕'이라는 별명을 안기며 새로운 팬덤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CJ ENM 제공
 ◇꿈의 배역 ‘박하사탕’의 김영호 

이 감독은 거실에서 배우들의 오디션 필름을 검토했는데, 우연히 영상을 본 감독의 부인 이란(드라마 ‘고백’) 작가의 말 한 마디가 운명을 결정지었다. “김영호 여기 있네.” 합격을 통보받고 고민 끝에 ‘해피엔드’(1999)의 내연남 역할을 고사한 설경구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박하사탕’에 임했다. 철로에 선 영호가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장면은 속도 조절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 달리는 열차를 피해가며 찍은 위험천만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박하사탕’은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상영 직전까지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한 무명배우의 인생은 130분이 흐른 뒤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영화배우 설경구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의 수줍은 은행원, ‘공공의 적’의 꼴통 형사 강철중, ‘오아시스’(2002)의 전과자 청년 종두와 ‘실미도’(2003)의 북파공작원, ‘역도산’(2004)의 레슬러를 거쳐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 이르기까지, 설경구는 매번 변신을 거듭하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갱신해나갔고 한국 영화 전성기의 한 페이지를 오롯이 자신의 목록으로 채워나갔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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