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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1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자하동 동사무소에서 처음으로 발급된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주민등록제도 시작 당시 12자리였던 주민등록번호는 1975년 생년월일과 성별, 등록지역 정보 등 개인식별정보를 담은 13자리로 바뀌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0년대초 탈북한 주승현(39ㆍ통일학 박사)씨의 수기 ‘조난자’(2018)에는 한국사회의 냉대와 차별 때문에 북한으로 돌아가거나 제3국으로 떠난 탈북자 출신 탈남(脫南)자들의 사연들이 소개돼 있다. 파출소로 연행된 한 탈북민은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던 경찰이 다짜고짜 “북에서 왔냐”고 물어 당황했다고 한다. 그는 탈북민을 수배자처럼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때문에 탈남을 결심했다고 후일 주씨에게 털어놓았다. 모든 탈북민들의 주민번호 뒷자리는 하나원이 있는 경기 안성시 지역번호로 시작되는데, 차별 문제가 제기돼 2009년부터 한 차례 정정이 가능해졌다.

□ 행정안전부가 10월부터 발급되는 주민번호부터 지역정보를 표시하지 않기로 했다. 주민번호 13자리 중 8~11번째에 표시되는 최초 발급지 번호 대신 이 자리에 임의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실제 2018년 한 편의점 업주가 주민번호 8, 9번째에 특정 지역번호가 있으면 직원으로 쓰지 않겠다는 채용공고를 올리는 등 지역차별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해 문제가 됐다. 주민번호 13자리 체계가 도입된 1975년 이후 45년 만에 정부가 부분적이나마 개인정보 식별 기능을 약화시키는 개편을 단행한 이유다.

□ 1968년 북한의 청와대 습격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이 도입한 주민번호 제도에는 국가의 강력한 주민통제 욕구가 드리워져 있다. 생년월일, 성별, 지역 등 민감 정보가 들어 있음에도 변경이 거의 불가능한 주민번호는 기본권 침해 논란을 야기했다. 결국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주민번호 변경 규정이 없는 주민등록법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17년 이후 주민번호 유출로 성폭력ㆍ재산 피해를 입는 등 극히 예외적 경우에 한해 변경 신청이 가능해졌다.

□ 개인정보가 집적된 주민번호의 오ㆍ남용과 유출 위험은 정보화시대를 맞아 더 커지고 있다. 카드사 증권회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날 때마다 시민ㆍ인권단체들은 개인정보 식별이 어렵게 전면적 임의번호 부여 필요성을 외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에 반향 없는 메아리가 되기 일쑤다. 주민번호를 근간으로 한 의료ㆍ정보 시스템 변경에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행안부는 이번에도 전면적 임의번호 도입은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 고작 지역정보 폐지를 위안으로 삼으라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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