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달라진’ 손흥민이 돌아온다

입력
2020.05.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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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장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손흥민. 토트넘 페이스북 제공
훈련장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손흥민. 토트넘 페이스북 제공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앉자마자 하소연이다. “프리미어리그가 없으니 주말 밤이 너무 심심해.”

동석한 사람도 한마디 보탠다. “치킨집 사장님들이 주말마다 한숨만 푹푹 내쉰다는 거 아닙니까~.”

토요일이면 해질 무렵부터 폭주하던 주문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말 치킨 주문량이 감소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얘기로 들렸다.

코로나19로 유럽 축구가 중단된 지 벌써 석 달이 가까워진다. 힘든 한 주를 보낸 뒤 주말 밤 TV 앞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유럽 축구를 시청하는 평범한 일상도 어느덧 오래 전 일만 같다. 비록 무관중이긴해도 대한민국과 독일에서 K리그와 분데스리가 경기들이 무사히 치러지고 있다. 축구팬들은 다시 찾아온 축구에 열광하면서도 여전히 재개되지 않는 여러 나라 상황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물론 마음 한편에는 나머지 유럽 축구들도 빨리 재개되길 열망하는 마음이 존재한다. 그 심정의 대개는 아마 손흥민이 다시 뛰는 모습을 보고픈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손흥민이 뛰는 프리미어리그는 6월17일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의 나라 영국은 28일 기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3만8,000명, 확진자가 27만명에 달하는 유럽 최대 피해국이다. 프랑스나 네덜란드처럼 리그 잔여 일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이 경우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이 감당해야 할 재정적 손해가 막심하다. 프리미어리그 대표이사 리처드 마스터스에 따르면 잔여 일정을 취소하면 10억파운드(약 1조5,000억원) 이상의 위약금이 발생된다고 한다.

리그 재개 일정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선수단과 스태프 전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진행해 일부 확진자를 가려내고 있고, 최근 재개한 팀 훈련 역시, 개인 훈련→소규모 그룹 훈련→전체 훈련 순으로 단계별로 확장하고 있다. 대규모 확산이 벌어지지 않는 한 6월 중 재개가 확정적이다.

프리미어리그가 멈춰 선 동안, 손흥민의 위상도 꽤 달라졌다. 한국에서야 차범근 박지성의 뒤를 잇는 절대적 축구 스타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지만, 영국에서 손흥민에 대한 평가는 다소 보수적이었다. 해리 케인이나 델레 알리 같은 잉글랜드 자국 스타들에게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흥민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그의 부재를 통해 높아지기 시작했다.

손흥민은 팀 동료 해리 케인이 부상으로 이탈한 뒤 5경기 연속 골로 팀 성적을 견인했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팔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자 팀은 6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다. 곧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시즌이 중단되면서 유럽 언론들이 양산해 낸 수 많은 분석 기사는 손흥민이 선수들 사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과 기록적으로도 독보적인 행보를 걸어 왔다는 것을 환기시켜 주었다. 메시와 판다이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위시리스트에 손흥민의 이름을 넣었고, 갖가지 랭킹 뉴스 같은 정성적 평가에 의한 갈채도 뒤따랐다. 빅 클럽으로의 이적설과 레전드 스타들의 상찬 같은 이적 시장에서의 평가마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넣은 환상적인 75m 드리블 골이 휴식기 중 발표된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골’에 선정된 것 역시 손흥민의 진가에 모두가 주목한 결과다.

얼마 전, 손흥민이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소속팀에 복귀하자 현지 팬들이 온라인에서 보여 준 반응은 대단했다. 부상당한 경기에서 팔이 부러진 채로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기어이 역전골을 만들어낸 투혼과 리그 중단기에 귀국해 군복을 입고 병역의 일부를 완수하는 모습이 큰 울림을 줬다.

거리 두기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들 기운이 빠진 시기다. 모두가 함께 환호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때다. 이제야 제 평가를 받기 시작한 손흥민이 활기차게 뛰는 모습을 다시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치킨집 사장님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서형욱 풋볼리스트 대표ㆍ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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