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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의 주역인 김재규 피고인이 1979년 12월 4일 육본 계엄보통군법회의 공판에 출두하는 모습. 유족들은 최근 사건 재심을 청구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0·26 사건 주범인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유족이 최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40년 전 확정된 이 사건을 다시 심판한다고 해서 김 전 부장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살한 사실이 달라질 것은 아니다. 6개월 만에 3심 재판을 거쳐 집행된 사형을 돌이킬 것도 아니다. 재심 청구의 주장은 내란목적살인죄는 무죄라는 것이다. 유족들은 김재규가 반역을 도모한 것인지, 독재를 끝내려 한 것인지를 가리는 역사적 재평가를 바라고 있다. 죽어서라도 명예를 회복하려는 것이다.

□ 56년 전 사건을 재심해 줄 것을 요구한 최말자(74) 할머니도 있다. 그는 1964년 성폭행을 시도한 남성의 혀를 깨물어 잘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경찰은 성폭행 피해자의 정당방위라고 판단했지만 검찰은 이를 뒤집어 최씨를 중상해죄로 구속 기소했다. 남자의 성폭행 미수는 기소되지 않았다. 구속된 최씨는 검찰 조사에서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냐”는 등 온갖 막말과 협박을 들었다. 재판장은 최씨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으며 결혼을 권했다.

□ 10·26 사건 재심 변호인단은 보안사의 재판 개입 등을 청구 사유로 들었다. 보안사가 지휘한 군 합동수사본부가 당시 재판을 녹음한 자료가 근거가 됐다. 최씨에겐 새로운 증거가 없지만 여순사건처럼 증언만으로도 재심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다. 법적 요건과는 별개로, 당시 판결의 문제는 뻔히 드러나 보인다. 보안사가 재판에 개입하려 보낸 쪽지를 재판부는 보지 못했을까.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최씨의 목소리를 판사는 듣지 못했을까. 사법부는 군사독재와 한편이었고, 가부장제의 일익이었다.

□ 재심은 재판을 진행한 법원과 검찰이 과거를 성찰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검찰이 직권으로 과거사 재심을 청구하고 사법부가 재심 판결문에 자기반성을 담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 사법 불신은 여전하다. 많은 사람이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며 분노하고, 과거사 재심에서 역주행 판결을 내린 대법원의 사법 농단 실태에 한탄한다. 최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법은 빼고 우리 사회가 참 좋아졌다”고 말했다. 사법이 나아진 게 없기야 하랴마는 한참 뒤처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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