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큰 정부의 귀환인가?

입력
2020.06.02 04:30
27면
코로나19 사태로 수요가 치솟은 마스크를 국민들이 공평하게 구매할 수 있게 한 공적마스크 5부제는 현직 약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한호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수요가 치솟은 마스크를 국민들이 공평하게 구매할 수 있게 한 공적마스크 5부제는 현직 약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한호 기자

한국판 뉴딜 정책, 전시 재정에 준하는 추경,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요즘 뉴스를 보면 재난에 대응하는 굵직굵직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코로나19 감염병이라는 사회적 재난이 4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국민도 정부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고 있다. 골목상권 소상공인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풀린 돈에 한숨을 돌리고, 수출길이 막힌 중소기업은 긴급기업대출에 희망을 걸고, 고사 위기 항공사는 정부의 항공권 1,600억원 선결제에 그나마 버텨낸다. 큰 정부(big government)의 귀환일까? 강한 정부가 없이 우리가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국가와 정부의 역할을 돌아보게 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행정학자들이 예측하기를 미래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였다. 복잡하고 다양해진 시대에 맞게 정부의 권한과 책임을 줄이고 민간의 전문가, 이해관계자,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의 힘이 더 커져야 한다고 믿었다. 이른바 ‘뉴거버넌스’ 논의이다. 미래사회에서 정부는 다양한 참여자들의 협력이 잘 일어나도록 지원하고 촉진하는 역할로 충분하다. 공무원들은 공공과 민간을 연결하면서 조력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미래를 대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의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잠시 멈춰진 듯하다. 모든 것의 중심에 정부가 있는 듯 보인다.

일견 정부의 일사분란한 지휘로 국가역량을 집중적으로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코로나19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정부 혼자만의 힘 때문은 아니었다. 정부가 공개한 데이터를 이용해 하룻밤 사이에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도록 코로나맵을 개발했던 이는 헌신적인 한 대학생이었다. 그 동안 우러러보던 선진국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이 사재기 혼란으로 이어졌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현직 약사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제안한 의약품안전사용시스템을 이용해 모두가 공평하게 마스크를 구할 수 있었다.

K-방역의 핵심은 단지 추적하고 차단하는 공격적인 방역체계뿐만이 아니다. 정부와 시민이 협력할 수 있도록 그 동안 쌓아 온 공유와 협치를 위한 준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즘 여기저기서 코로나19 이후 사회변화와 대응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고 기획기사도 줄을 잇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바이러스 그 자체를 거대한 사회변화의 유일무이한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수많은 변화의 동인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사회변화의 흐름을 가속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여하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변화가 다시 큰 정부, 국가의 귀환, 혹은 정부과잉사회로 회귀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행정 분야에서 물 위로 드러난 중요한 변화의 요인은 정부와 시민이 협력할 수 있도록 준비해 온 거버넌스 체계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는 정보를 공개하고, 시민의 아이디어가 행정부 내에서 받아들여질 때 위기가 기회가 되었다.

전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부가 진두지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전쟁이 끝난 뒤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직은 요원해보이기는 하지만 코로나 이후 새로운 균형상태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그 때는 우리가 원래 가고자 했던 ‘정부의 미래’가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려야 한다. 우리가 바랐던 것은 큰 정부의 귀환이 아니라 작지만 강한 정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정부였다. 정부보다는 시민의 힘이 커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미래 행정의 이상향이었다. 드높은 파도 속에 있을수록 등대불빛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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