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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김문중 기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얼마 전 여론 양극화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놓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진보ㆍ보수 진영 갈등이 심화하자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얼마나 갈라져 있는지 실증적으로 따져본 것이다. 연구진이 2018년 12월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도’는 45%에 달했고 양극단인 ‘매우 진보’와 ‘매우 보수’는 각각 3%도 되지 않았다. 응답자의 3분의 2는 ‘다소 진보’와 ‘다소 보수’ 사이에 걸쳐 있었다. 한마디로 여론 양극화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그럼에도 착시 효과가 생긴 건 양극단의 사람들이 온라인 여론 형성 활동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 적극적인 소수가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다. 가령 마케팅 분야에서 ‘1%의 법칙’은 웹사이트에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은 전체 이용자의 1%에 불과하다는 법칙이다. 9%는 글을 달고, 나머지 90%는 단순 이용자라는 의미에서 ‘90-9-1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또 인터넷 접속의 99%는 1%도 안 되는 사이트에서 이뤄지며, 책 판매의 99%는 1%도 안 되는 저자의 저서에서 나온다고 한다.(강준만, ‘독선 사회’)

□ 달라진 미디어 환경은 이런 추세를 부추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은 개인 취향은 물론 정치 성향까지 분석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이용자는 필터링된 정보만을 접하기 때문에 자신의 성향과 다른 세상과는 절연하게 된다. 문제는 비슷한 성향끼리만 모이는 세상에서는 극단적인 진영 논리가 득세하고 선명성 경쟁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소수임에도 도드라지게 보이는 이유다.

□ 다만 우리 사회에서 양극단은 여전히 소수이고 여론 양극화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보고서 결론이다. 미래통합당이 지난 총선 때 민심 읽기에 실패한 것도 보수 우익 유튜버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맹신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달라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양극단의 사람들 의견이 과대평가되지 않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양한 성향과 이해관계를 가진 유권자 표심이 의회 구성에 투영되어야 한다. KDI 보고서는 해법으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정당 국고보조금을 지급할 때 소액 다수 기부금 총액과 매칭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무한 갈등과 대립으로 국력을 낭비시키는 여론 양극화의 폐해를 떠올리면 한 번쯤 검토할 만한 주제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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