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보기] 어느 방역 공무원의 죽음

입력
2020.06.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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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약품통을 등에 멘 채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방역 공무원. 연합뉴스
소독약품통을 등에 멘 채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방역 공무원. 연합뉴스

지난 3월 30일, 파주에서 한 방역 공무원이 사망했다. 코로나19 얘기는 - ‘일단은’ 아니다. 그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업무에 종사하던 가축방역 전문가로, 지난해 경기북부지역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후 매일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현장업무를 담당해 왔다. 그는 사무실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파주시는 6월 2일, 그에 대한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고인은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한 모범공무원이었다”며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최일선에서 노력한 고인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방역에 헌신한 고인에 대한 예우로써, 파주시의 결정에 감사를 표한다.

… 자, 여기까지는 공보용 미담이었다. 아름답게 꾸며진, 듣기에 좋은 말. 윗분들의 기분도 흡족하셨기를 바란다. 이제부턴 현실을 볼 차례니까.

조사 결과 그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지난해 9월부터 월 387시간씩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도 쉬지 않고 한 달 30일을 꼬박 일했다고 가정하더라도, 하루 13시간씩 일해야 가능한 숫자다. 그렇게 무려 일곱 달, 그 과로가 결국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여기서 시장이 책임을 진다면, 그건 그럴듯한 선의로 포장된 책임이 아니라 반인권적인 근무 환경에 고인을 방치했던 죄에 대한 책임이어야 한다.

물론 그런 건 없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월 400시간에 육박하는 근로시간도 그대로다. 아프리카돼지열병뿐 아니라, 이미 다섯 달 째에 접어들고 있는 코로나19 방역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병을 얻고 쓰러진 사람이 또 나왔지만, 윗선에선 다만 고장 난 부품마냥 그를 빼내고 다른 사람을 끼워 넣었을 뿐이다. 현장의 부담은 여전히 그대로고, 누군가 또 쓰러지면 또 새 사람이 들어올 것이다. 이런 와중에 대체 뭘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건가. 순직 처리는 책임질 테니 안심하고 일하다 죽으라는 이야기인가?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이 칭찬을 받고 있지만, 사실 현장 상황은 썩 좋지가 않다. 현행법상 감염병 예방 관리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있는데, 이 컨트롤타워의 감염병 대응 능력이 너무 떨어진다. 지역 보건의료의 중심이 되어야 할 보건소도 코로나19와 같은 방역 위기에 대한 대응 여력은 약하다.

더 큰 문제는 그 위의 기초자치단체장이다. 이들이 보건소장에 대한 지휘권은 물론, 임용권까지 갖고 있는지라 보건소장이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문제는 기초자치단체장은 방역 전문가가 아니라 재선에 목을 매는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가, 일선 방역 공무원을 일곱 달 동안 과로시켜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 놓고 “끝까지 책임지겠다”며 홍보에 써먹는 파렴치함이다. 방역 현장은 여전히 무너지고 있고, 그에 대한 대책은 아무 것도 나오지 않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어디 그게 전부겠는가. 무의미한 보고 따위로 업무량만 늘리는 데다, 진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하는 대신 쓰지도 못할 빛 좋은 개살구에 돈을 퍼붓는다. 현장은 휘청거리고 있는데, 페이스북과 지역 언론에는 있지도 않은 리더십과 먼지 쌓인 개살구가 방역을 지탱하고 있다는 자화자찬이 펼쳐진다.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과 관련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도리어 예산과 인원이 줄어드는 데다 권한도 불충분한 반쪽짜리 승격이란 것이다. 지역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질병관리청 산하에 권역별 질병대응센터를 신설할 계획이지만, 지원 기능을 할 뿐 실제 권한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에 남아 있다. 정부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별 특성에 맞춰 방역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그 특성이란 걸 알 수가 없다. 효율적인 방역보다 시장님 군수님 구청장님 심기부터 신경 쓰는 현실에. 아, 설마 그 시장님 심기 말하는 건가?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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