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코로나19와 공간의 재해석

입력
2020.06.08 18:00
수정
2020.06.08 18:11
37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근무 환경의 변화다. 여러 곳에서 불가피하게 재택근무로 전환한다. 그것의 필요성과 당위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는 동의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부분적 일상이 되었다. 아들이 재택근무할 때마다 서재를 내준다. 공간에 따라 근무 집중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간헐적 일상이 되었다.

처음 아들의 재택근무를 보면서 제대로 일이 될까 싶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회사에서와 같은 시간에 정확하게 업무를 시작해서 퇴근 시간에 딱 맞춰 끝난다. 중간에 서재에서 나오는 건 점심식사 시간. 아내는 그 시간에 맞춰 점심을 준비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재택근무 중 야근은 없다. 업무가 끝나면 자신의 개인 시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화한다. 이제는 그 일상이 가족 모두에게 익숙해졌다.

일본은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도 여전히 문서로 작업하고 결재 도장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인터넷의 뛰어난 속도와 안정성 덕분에 조금도 어렵지 않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재택근무를 꺼렸을까? 상사의 눈에는 부하들의 뒤통수가 사무실에서 보여야 그들이 일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야 통제가 가능하고 긴장해서 일할 수 있는 사회였고 직장이었다. 믿음도 없고 자신도 없으니 눈에 묶어 둬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업무 수행을 실시간으로 관찰(감시가 아니라)할 수 있고 적절하고 충실한 피드백도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이 상황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만 있으면 될 일이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준비된 것도 아니고 갑자기 ‘당한’ 상황이라 허둥지둥 모두 어쩔 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수동적으로 끌려갈 것이 아니고 특히 소수의 강자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재편되는 걸 경계하면서 오히려 더 진보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당장은 그리고 일시적으로 외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선택했겠지만 차제에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른바 ‘공간의 재구성’이 불가피하게 제시된다. 예를 들어 1,000명을 고용한 기업은 그 인원들이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시내 중심가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그 공간을 얻는다. 그런데 절반씩 재택근무를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굳이 그 넓은 공간은 필요 없다. 당연히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 개인 공간을 줄이는 대신 공동의 공간을 확대해서 업무와 생활을 훨씬 더 다양하고 생산적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그렇게 줄인 비용을 사주가 꿀꺽하지 않고 공동의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재투자해서 일의 효용과 업무의 질을 높이고 삶을 더 윤택하고 여유롭게 영위할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

코로나 19는 타자의 존재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꿨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보건적 거리’를 확보하는 건 생존을 위한 일이어서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고립감도 수반된다. 친밀하고 상대의 건강을 확인할 수 있는 관계에만 충실하게 될 것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이웃 주민에 별 관심 없이 살았다. 그러나 단지 내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건강에 대한 의무와 관심을 갖게 된 현실은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관계를 조금씩이나마 무너뜨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을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까? 그런 방식을 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까? 공간의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1년 가까이 가까운 사람 넷이 모여 도시와 건축에 대한 토론을 나누고 있다. 건축가, 과학저술가 겸 사업가, 평론가와 함께 모여 집담회를 갖게 된 계기는 지금까지 건축과 도시설계가 주로 생산자 중심이었던 것을 소비자 입장에서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하는 실험적 목적이다. 매번 모일 때마다 핵심은 ‘공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공간의 생산과 소비고 그 안에서 어떻게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을 조화롭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로 수렴된다.

세상이 바뀌면 당연히 생각도 바뀌고 삶의 방식도 바뀐다. 그 변화가 고립과 착취의 구조가 아니라 융합과 조화로 진화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이 팬데믹은 불가피하게 그 새로운 길을 가게 만든다. 끌려가지 않으려면, 새로운 노예가 되는 삶을 요구받지 않으려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대안을 마련하고 제공하며 함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사람을 믿어야 한다. 공간을 재해석하는 것은 그 중요한 변화의 첫 걸음일 것이다. 아들의 재택근무를 보면서 그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도록 해야 하고 고립과 퇴화가 아니라 진보와 진화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는 계기가 된다면 이 상황이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김경집 인문학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