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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27ㆍ끝> 전문가 좌담회
김태현(왼쪽)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2계장과 이웅혁(가운데)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김대근 형사정책연구원 부패ㆍ경제범죄연구실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지능범죄 근절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지능범죄는 날로 진화 중이다. 휴대폰을 쓰는 이들을 노리는 피싱ㆍ스미싱 사기는 이미 고전적인 수법이다. 해외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을 활용해 피해자의 영혼까지 지배한 ‘n번방’ 사건이나 1조6,000억원대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라임자산운용 사태처럼 범죄수단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능범죄는 세대와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금전적인 피해로 끝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가정 파탄과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강력범죄ㆍ성범죄 등보다는 사회적 관심도가 적어 그 악랄함은 쉽게 잊혀지고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한국일보는 이런 지능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총 26회에 걸쳐 <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시리즈를 보도했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이달 초 김태현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2계장과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김대근 형사정책연구원 부패ㆍ경제범죄연구실장이 지능범죄의 심각성을 논하고 예방책을 제시하는 좌담회를 준비했다. 이들은 “지능범죄 영역은 앞으로도 끝없이 확장될 것”이라며 “투명한 정보공유 등 피해를 막기 위한 구조적 변화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김태현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2계장. 정준희 인턴기자

-경찰청 최신 통계인 2018년 기준 지능범죄는 34만4,600여건으로 모든 범죄 유형을 통틀어 교통범죄 다음으로 많이 발생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김태현=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만 놓고 봐도 2016, 2017년 한해 400건에 못 미쳤던 사건 수가 2018년과 지난해에는 900건 이상으로 치솟았다. 무서운 증가세다. 당초 보이스피싱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대출 사기 등이 급증하면서 전체 사건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김대근=전통적인 사기는 일대일로 이뤄지는 대면 사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단계나 피싱 사기처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사기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소수의 조직만으로 광범위한 피해자들을 공략하는 게 가능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피해 건수가 폭증하고 피해액도 커지는 구조가 됐다.

◇사회 신뢰 저해하고 가정 해체시키는 범죄

이웅혁=사건 수 증가도 문제이지만 사실 지능범죄의 무서운 점은 피해 범위다. 지능범죄를 우리가 흔히 ‘화이트칼라 범죄’라고 하는데,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블루칼라 범죄’와 달리 법 제도와 서류 등을 교묘히 이용해 범행을 저지르는 특징 때문이다. 사기만 해도 상대방의 신뢰를 얻었다가 이를 배반해 이익을 착복하는 게 범죄의 기본 구조다. 따라서 지능범죄는 우리사회 신뢰 전반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피해가 훨씬 지속적일 수밖에 없다.

김태현=동의한다. 지능범죄가 주로 재산 피해를 낳기 때문에 시각적 피해는 적을지 몰라도 실제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 사건으로 인해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 나는 등 피해자들의 후유증이 극심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정준희 인턴기자

이웅혁=‘초연결사회’가 되면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지능범죄자들의 타깃이 되는 문제도 있다. 대표적인 게 ‘로맨스 스캠’인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 실존 인물과 상관 없는 사진을 걸어놓은 뒤 무작위로 고른 피해자들에게 접근해도, 현실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만남이 워낙 활발하다 보니 의심하기가 쉽지 않다.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는 누구든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민들 간 비대면성이 커진 현재 상황이 사기꾼들에게 최적의 범죄 환경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마스크 거래 사기 사건이 쏟아지지 않았나. 범죄 수사의 기본 격언 중 ‘모든 접촉은 증거를 남긴다’는 게 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란 아예 접촉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수사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김대근=2017년 범죄통계를 보면 사기범죄 중 가해자가 미상인 비율이 50%를 넘는다. 피해를 당해도 결국 가해자를 만나본 적도, 어디에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다 보니 추적이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피해를 당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사기 사건도 상당수다.

김태현=같은 맥락에서 블록체인ㆍ비트코인 등 암호화 네트워크가 발달할수록 범죄 자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기 매우 난해해진 측면이 있다. n번방ㆍ박사방 사건의 경우에도 운영진이 비트코인을 사용한 게 주목 받지 않았나. 자금 추적은 지능범죄 수사의 핵심이다. 예전엔 범죄자금 유통이 국내에서만 이뤄졌는데 이젠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보니 추적 기법을 계속해서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능범죄에 뛰어드는 청년들…IT 기술로 무장

김대근=최근 지능범죄가 조직화되는 추세가 우려된다. IT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범죄의 주체가 되거나 피해를 입는 것도 그렇다.

이웅혁=보이스피싱 조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거의 중소기업화 돼 있다. 인턴 사원을 모집한다든지, 실제 전화를 하는 사람의 경우엔 그때그때 시사 주제에 밝아야 하니 대학 경영학, 법학 전공생들을 뽑는 등 전문적 실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도 기업식이다.

김대근=이런 조직의 하부 말단 역할로 청년들이 급격히 편입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대체적으로 사기 등 경제범죄의 경우 해당 분야에서 그럴듯한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 하니 40, 50대가 가해자의 주를 이룬다. 하지만 최근 n번방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IT 능력이 뛰어난 젊은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상부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말단 행동요원 역할을 하기도 한다.

김태현=청년 지능범죄자들이 늘어나는 게 정말 위험한 이유는 재범율이 높기 때문이다. 지능범죄에 포함되는 경제사범은 재범율이 90% 이상이다. 초범의 경우 범죄 계획이 완결성을 갖기 힘든데 이후 공모자들과 함께 각자의 경험을 기반으로 숙련된 범죄수법을 개발하는 양상을 보인다.

김대근=흔히 직업범죄인이라고 부르는데, 재소자 연구를 해보면 교도소에서 학습해 오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 일반적으로 강력범죄자들은 교도소에서 각자 격리 수용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경제사범은 혼거 형태의 구금이 대부분이다. 교정시설 자체가 서로 수법을 배우면서 숙련도가 높아지는 환경이 될 공산이 크다.

김대근 형사정책연구원 부패ㆍ경제범죄연구실장. 정준희 인턴기자
◇경찰, 회계ㆍ디지털 분석 전문성 키우는 노력 중

-범죄자들이 빠른 속도로 수법을 고도화하고 있는데 경찰은 이를 어떻게 따라잡고 있나.

김태현=범죄수법을 경찰이 미리 예상하고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경찰과 범죄가 늘 쫓고 쫓기는 관계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경찰도 끊임없이 자체 교육을 통해 수사기법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특히 지능범죄는 회계와 디지털 분석 등 고도의 추적 기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관할 경찰서ㆍ팀에 새 인력들이 오면 개별 교육이 이뤄진다. 범죄추적수사팀에 회계사를 두는 등 인력구조상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김대근=그럼에도 국제 공조 측면에선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보이스피싱만 해도 중국과 수사공조가 안 되다 보니 검거가 어렵지 않나. 여기엔 지능범죄에 대한 국가별 기준이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국가 간 범죄인 인도가 원활한 편인 강력범죄와 달리 사기에 대해선 기준이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사기라고 주장해도 상대국 법령상 애매한 범죄라면 공조 자체가 이뤄질 수 없다.

김태현=덧붙이자면 국가별로 경찰 체계도 각기 다르다. 한국은 지능범죄수사팀이 별도로 있지만 미국의 경우 마약법 집행은 법무부 산하 마약단속국(DEA)에서 하고, 연방수사국(FBI)은 은행 횡령ㆍ수표 위조 등 사건을 다루기도 한다.

◇정보 투명성 강화 시급…피해자도 혼자 감당해선 안돼

김대근=수사의 한계를 감안하면서 지능범죄 피해를 막으려면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다. 사기범죄는 공공기관의 허가 등 절차가 불투명하게 이뤄진다는 인식을 악용해 피해자에게 특혜를 주려는 것처럼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공시나 정보공개시스템 등 정부 자료의 투명성을 강화해서 이런 인식 자체를 불식시켜야 한다. 더불어 대출 사기 등은 금융 안정성에 취약한 이들이 덫에 걸리기 쉽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국가로부터 대출 등 금융 보호를 못 받는 약자들, 또는 복잡한 금융체계에 대한 이해가 낮은 노인들 등에 대해선 별도의 보호책이 필요하다.

이웅혁=피해자 책임으로 전가해선 안되지만 사기 피해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적법 절차를 밟지 않고 이윤을 취하려는 수요가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기는 스스로가 경계하고 정보를 꼼꼼히 확인해 범죄자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피해 예방법이다.

김대근=특히 어떠한 협박을 받더라도 절대 개인이 해결하려 하지 말고 국가기관에 의존해야 한다. 몸캠 피싱 등 조직은 서로 연결돼 있어서 한번 협박에 굴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조직들이 달려든다. 한 개인이 파멸에 이를 때까지 통장에 남은 마지막 1원까지 긁어갈 것이다. 지금 고통 받고 있다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부터 하길 권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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