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권리장전과 성소수자 인권(6.12)

입력
2020.06.1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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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식민지 버지니아주 의회가 모든 근대 인권선언의 토대가 된 버지니아 권리장전을 1776년 6월 12일 채택했다. kr.usembassy.gov
영국 식민지 버지니아주 의회가 모든 근대 인권선언의 토대가 된 버지니아 권리장전을 1776년 6월 12일 채택했다. kr.usembassy.gov

인간 존엄과 인권을 위한 인류의 다짐은 시대의 한계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며, 범위를 확장해 왔다. 이제 인류는 피부색과 성별, 출신 지역 및 국가, 경제ㆍ사회적 지위를 초월해 모두 동등한 존재이며 대등한 가치와 천부의 권리를 누린다고, 적어도 말과 글로는 인정한다. 그래야만 문명시대의 인간으로서 공존할 자격을 얻는다.

1215년 영국 국왕 존이 귀족들의 요구에 굴복해 서명한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는 인권을 명시하지 않았다. 의회 승인 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없고, 법 없이 체포ㆍ감금할 수 없다는 규정이 골자였다. 대헌장이 견제하고자 한 것은 군주의 절대권력이었고, 지키려던 것은 귀족의 권리였다.

1689년 명예혁명 이후 즉위한 영국 왕 윌리엄 3세는 권리장전에 서명했다. 거기에는 국왕의 통치권이 넘볼 수 없는 법률의 위상과 의회 권리, 시민의 권리가 기재됐다. 의회 동의 없이 국왕이 법 집행을 제약할 수 없고, 평시 상비군을 둘 수 없고, 국민 청원권과 선거의 자유, 법에 근거하지 않고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장전의 효력이 식민지에는 미치지 않았다.

독립전쟁을 갓 시작한 1776년 6월 12일, 미국 버지니아 의회가 ‘버지니아 권리장전’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영국 권리장전이 보장했던 귀족원 등 세습ㆍ특권적 계급 개념을 배제하고 생명과 자유, 재산권을 보장한 근대적 인권선언이었다. 제1장은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게 자유롭고도 자주적이며 일정한 천부의 권리들을 갖고 있는 바, 인간들이 한 사회의 성원이 될 때, 예컨대 생명과 자유의 향유와 같은 그러한 권리를 후손들로부터 박탈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한 달 뒤 필라델피아에 모인 식민지 13개 주 대표들이 채택한 ‘미국 독립선언문’과 1789년의 미국 권리장전, 프랑스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버지니아 권리장전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거기서 말한 ‘인간’에는 아프리카의 흑인(노예)은 포함되지 않았고, 여성도 제한적으로만 ‘인간’이었다.

20세기 현대 헌법의 토대를 닦은 1919년의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거쳐, 여성 참정권 운동과 식민지 해방운동을 거쳐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됐고, 1964년 미국 시민권법이 제정됐다. 보수 기독교인 등 일부는 시민권법 제정자들에게 성소수자는 염두에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1776년 버지니아 의회의 입법자들에게도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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