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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날개해오라기는 남중국과 동남아에 넓게 분포하는 종이다.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나그네새로 기록되다가 현재는 거의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월동하는 개체도 발견된다. 사진 서한수

며칠 전 지나치던 도로 옆 논배미에 낯선 색의 새가 먹이를 잡고 있었습니다. 간혹 벼 사이에서 모습을 보여 주던 흰날개해오라기였습니다. 촬영은 엄두도 못 내고 지나쳤지만 카메라를 들고 가보면 보이지 않기 마련입니다. 몇 년 전부터 국립생물자원관은 기후변화생물지표종을 조사하고 있죠. 그중 흰날개해오라기나 검은이마직박구리 등이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계절활동, 분포역 및 개체군 크기가 변하거나 예상되는 종입니다. 흰날개해오라기는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우 드물게 여름철에 보이던 종이지만, 이제는 제 눈에도 자주 띌 만큼 그 수와 분포지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뭔가, 기후가 변한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 주는 종인 셈이죠.

최근 대표적 온실가스의 하나인 이산화탄소의 대기 농도는 측정 이래 6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보도도 있었지요. 측정 역사상 최고치이기도 하며 최근 300만년 사이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5월은 역시 기상 관측 이후 가장 더운 것으로 기록되었죠. 시베리아는 1981년부터 30년간 평균보다 10℃ 이상 온도가 올라갔습니다. 지난여름의 북반구를 휘감았던 화재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흰날개해오라기는 남중국과 동남아에 넓게 분포하는 종이다.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나그네새로 기록되다가 현재는 거의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월동하는 개체도 발견된다. 사진 서한수

이 기후변화는 새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이미 새들의 번식지 분포권이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1966년부터 쌓아온 북미번식조류조사(NABBS) 중 최근 41년간의 자료를 분석해 보니 북미 동부권에 서식하는 32개종의 전체 번식지가 변화합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는 1985년부터 번식지 변화 강도는 강해졌죠. 북미의 텃새나 온대권 겨울철새들은 기후변화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보다 북쪽까지 번식지를 넓힙니다. 최남단 번식지는 그대로 유지한 채 말입니다. 하지만 여름에는 북미에서 번식하고 겨울을 중남미에서 나는 신열대구 철새들(북미의 여름철새)의 경우 번식지는 북쪽으로 확장되지 못하면서 남방한계선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신열대구 철새는 기후변화에 훨씬 더 취약하다고 추정하고 있죠. 그렇다면 왜 신열대구 철새는 번식지 확장을 하지 못할까요? 장기간에 걸친 열대의 건조화 경향도 겨울나기를 어렵게 만듭니다. 수천 ㎞를 이동해야 하는 새들은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풍부한 먹이와 습도가 높은 양질의 서식지가 필요하지만, 열대의 건조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요. 에너지를 비축하지 못한 새들은 봄철 이동거리에 한계를 갖습니다. 또 빨라진 봄에 따라 식물이 더 빠르게 움트게 되며, 기존의 번식 남방한계선에 여름철새들이 도달할 즈음이면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우기엔 너무 녹음이 우거진 상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죠. 그러니 더 위로 올라야 하지만 에너지가 부족하여 계속 북으로 이동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습니다.

이 현상이 반복된다면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조류는 더욱 번성하겠지만, 그러지 못한 새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균형이 깨진 환경 내에서 생물수는 같을 수 있어도 생물종 다양성은 다시, 감소하게 됩니다.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뜨거운 여름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생물종을 없애 버릴 힘까지 가진 셈입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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