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세계의 빈곤] 출발선부터 취약계층인 다문화가구… 정부 지원 정책은 미미

입력
2020.06.1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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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들이 대림역 8번 출구쪽 한 여행사 앞에서 서류 신청을 기다리며 모여있다. 지난해 9월 26일 촬영된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동포들이 대림역 8번 출구쪽 한 여행사 앞에서 서류 신청을 기다리며 모여있다. 지난해 9월 26일 촬영된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자란 사람이 한국으로 건너와 뿌리를 내리면서 겪는 빈곤, 즉 다문화 가구의 문제는 정부 통계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부가 2018년 내놓은 전국적 실태조사 보고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가구’ 항목에서 이 문제를 다음처럼 기술했다. “다문화가족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가구의 비율은 5.7%로 우리나라 전체 수급가구 가운데 1.7%를 차지한다. 우리나라가 가구 중 다문화 가구의 비중이 1.6%임을 감안하면 모집단과 비슷한 수준으로 파악되며, 다문화가구라고 해서 수급자 비율이 특이하게 높은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외국인 여성과 한국인 남성의 국제결혼으로 형성된 다문화 가구의 상당수는 출발선에서부터 빈곤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문제로 국내에서 배우자를 구하지 못한 중장년 남성이 동남아시아에서 중개업체를 통해 여성 배우자를 데려오는 경우, 부부 모두 경제적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가 결혼이민자와 혼인 귀화자를 구분해서 통계를 내놓은 2015년의 경우, 다문화가구 29만4,663가구 가운데 80%가 혼인을 매개로 형성됐다. 2018년 기준 다문화 가구는 33만4,856가구로 가구원은 100만8,520명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결혼이주여성으로서 이주여성 권익 옹호 활동을 이끌어온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장은 “1980년대 말부터 이뤄진 결혼이민의 경우 저소득층끼리의 결혼은 아니었다”면서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남성이 해외에서 배우자를 구하기 시작했고 이 경우 (배우자가) 국내로 오자마자 취약계층에 들어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 여성도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출신 국가에서 직업 훈련이나 사회활동을 경험하지 않고 이민한 사례가 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좋은 일자리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 조사에서 다문화 가구를 형성한 이주민은 고용형태가 불안하거나 처우가 열악한 분야에서 주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단순노무 종사자 비율은 결혼이민자와 기타 귀화자(27%)가 국민 전체(13%)의 두 배 이상이다. 반면 상용직 비중은 결혼이민자와 기타 귀화자(42%)보다 국민 전체(51%)가 높다. 특히 일용직 근로자의 비중(18%)은 2015년 조사(20%)보다는 줄었지만 국민 전체(5%)보다는 월등히 높다.

왕 회장은 구직하는 결혼이주여성을 세 분류로 구분했다. 첫째는 처우를 따지기보다 일단 공장이나 식당에 취직해 적극적으로 일하는 부류로 한국어 능력이 떨어지지만 동향에서 온 동료가 많아 직장생활에 무리가 없다. 둘째는 고학력자이거나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한국으로 건너온 부류로 한국어 능력이 비교적 뛰어나 다양한 직종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다. 마지막은 한국어 능력이 일정 부분 있지만 특별한 기술은 없거나 미약하고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에서 근무하는 부류다. 왕 회장은 “정부가 다문화가정지원센터를 통해 마련한 일자리인 통번역사의 경우, 실제로 통번역 업무를 수행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얼마 안 된다”면서 “정부가 억지로 만든 일자리인 셈인데 이런 자리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사업을 접으면 그 뒤부터는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빈곤 문제를 겪는 다문화 가구를 구제하기 위한 뾰족한 수는 없다고 왕 회장은 잘라 말했다. 그는 “결혼이민자가 동사무소에 가 어떤 지원을 받을 때 다문화 가구라서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대부분 생활 자체가 안 되는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왕 회장은 “정부가 단기적으로 눈에 띄는 정책을 내놓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결혼이민자에게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면서 “결혼이주여성과 혼인한 남성들에게 직장을 구해주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다문화 가구가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서툰 점을 감안하더라도 근본적 해법은 최저 수준의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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