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ㆍ문화도시 김천에 사명대사공원 개장… ‘천년 기획’ 한 걸음

입력
2020.06.15 18: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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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공원 전경
사명대사공원 전경

 들어가며-한 군데 소식 셋 

경사는 한꺼번에 온다. 숙지지 않는 팬데믹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발신지는 한 군데, 세 통 한 꾸러미다. 김천 사명대사공원이 신라고찰 직지사 아래 이달 말 문을 연다. 시립박물관과 함께 국내 최대 높이 5층 목탑 평화의 탑도 선보인다. 황악산, 직지사와 어우러진 문화 복합(콤플렉스)이다. 김천의 새로운 랜드마크, 야심찬 기획이다. 14만3,695㎡ 터에 816억원이 들었다. 사업 착수 10년 만이다. 지역민은 물론 전국에서 역사와 문화 관광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설레는 소식이다. 황악산 기슭 직지사는 임란 때 승병장 사명대사가 주지로 주석한 곳이다.

김천 사명대사 공원. 왼쪽으로 김천시립박물관, 뒤쪽에 평화의 탑이 자리하고 있다. 김천시 제공
김천 사명대사 공원. 왼쪽으로 김천시립박물관, 뒤쪽에 평화의 탑이 자리하고 있다. 김천시 제공

 김천과 황악산 

사명대사공원의 배경이자 어머니 품은 황악산이다. 정상 비로봉은 해발 1,111m다. 이곳 사람들은 이 숫자를 일사천리로 읽는다. 좌우로 백화산, 민주지산, 덕유산, 대덕산 등이 첩첩 준령을 이루며 그 사이로 내어준 길이 추풍령이다. 신라에서 백제ㆍ고구려로, 영남에서 영동ㆍ호남으로, 멀리 한양으로 통하는 관문길이었다. 김천은 타고난 지리가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 전략의 요충, 물산의 집적지였다. 예부터 지례, 금산, 개령을 합친 김천은 지척에 황악산을 두고 동으로 금오산, 서로 대덕산을 둘렀다. 그 사이 감천과 직지천이 흘러 김천은 ‘삼산이수’의 땅이다.

 ‘땅 기름지고 삶 안락’ 삼산이수의 땅 

이중환의 택리지는 “금산 서쪽은 추풍령이고, 추풍령 서쪽은 곧 황간이다. 황악산과 덕유산의 동쪽 물이 합하여 감천이 되어 동쪽의 낙동강으로 흘러 든다. 감천 유역에 있는 고을로는 지례, 금산, 개령을 들 수 있는데, 선산과 함께 감천 물을 논밭에 댈 수 있어 땅이 대단히 기름지다. 백성들의 삶은 안락하며 죄를 두려워하고 나쁜 일을 멀리하는 까닭에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가 많다”고 적었다. ‘땅이 대단히 기름지고’‘백성들의 삶이 안락하다’는 말은 단순한 덕담이 아니다. 옛말 틀린 게 잘 없더라고 요새 없어 못 판다는 김천 포도, 특히 샤인 머스켓이나 김천 자두 농사를 짓는 이곳 농민들은 이 말도 지레 알아듣는다.

황악산은 풍수지리적으로 곳곳에 명당과 길지를 숨겨놓은 곳이라 전한다. 그래서일까. 막 오른 비로봉에서 헐떡이는 숨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이 편안하다. 황악산은 황학산이라고도 한다. 황학산 사방 능선마다 학의 무리는 이어진 능선만큼 긴 날개로 멀리 날아갈 것이다.

 사명대사와 직지사 

1592년 왜란 보름 만에 한양성이 함락되고 선조는 허겁지겁 몽진했다. 관군은 무력했고 백성은 진창에 빠졌다. 세속을 여읜 출가자였고 억불숭유로 내쳐진 승려였던 사명대사는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승병을 모아 창의한다. 도체찰사 유성룡은 사명대사에게 ‘8도 16종 승병 부총섭 겸 의승도대장’이라는 차첩(임명장)을 내렸다. 야전군사령관 격이었다.

분충구국(충성을 떨쳐 나라를 구함) 의승군은 2,000명을 넘었다. 관군은 모두 합쳐 4,000명을 채우지 못했다. 의승군의 활약은 혁혁했다. 의병장 조헌 부대와 합세해 청주성을 탈환했고 금산전투에서 승리했다. 평양성 탈환과 행주성 대첩, 한양성 수복 등 큰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듬해 사명대사는 도총섭을 맡았다.

 세속 여읜 출가자의 분충구국 창의 

이후 왜와 화의 대표, 전후에는 왜국의 속셈을 타진하기 위한 수신사(대선교 등계 승의병대장군 겸 동지 이조판서 의금부사) 직을 맡아 왜국 절대 실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을 설복시키고 야사로 전해오는 ‘달궈진 쇠철판’ 등의 이적을 행했다. 조정 대신·관리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적진 담판 등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포로로 잡혀간 조선 백성 3,500여 명을 데리고 그는 무사히 귀국했다.

사명대사는 손자의 영특함을 일찍 알아본 조부의 뜻에 따라 열서너 살 때 고향 밀양을 떠나 김천 황악산 아래 유학자 유촌 황여헌 선생에 사숙했다. 하지만 15세에 어머니를 잃었고 16세에 아버지마저 잃자 그해에 조부는 혈혈단신 손자를 직지사에 출가시켰다. 법명은 유정. 유정은 출가 2년 만인 18세에 고승대덕을 앞질러 승려 고등고시인 승과에 급제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서른 젊은 나이에 직지사 주지를 맡았고 서른둘에는 선종 종찰인 봉은사 주지로 초빙됐으나 사양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서산대사의 제자가 됐다. 이후 봉은사 주지 소임을 다했고 행운유수 납자의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당해 앞서 밝힌 대로 의승병을 창의한다.

직지사는 사명대사가 열여섯에 출가한 곳이다. 열여덟에 승과 급제한 곳이면서 주지로 주석한 곳이다. 직지사와 사명대사의 인연은 애틋하고 각별하다. 김천시나 직지사가 사명대사를 기리고 높이는 일은 마땅하고 필요하다. 종교적 분별이나 편견을 넘어서 역시 그렇다. 사명대사공원에 새로 조성한 숲들이 나날이 우거지듯 사명대사가 이룬 삶과 공덕, 설복의 힘이 이곳을 걷는 걸음마다 울창해지길 바란다.

김천 사명대사공원 내 평화의 탑 야경.
김천 사명대사공원 내 평화의 탑 야경.

 평화의 탑 

사명대사공원 한가운데 탑이 우뚝하다. 지난 3월 완공한 평화의 탑이다. 높이 41.5m. 국내에서 가장 높은 목탑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목조 5층탑이다. 규모와 위용에서 사명대사공원의 랜드마크다.

한눈에도 평화의 탑은 황룡사 9층탑을 닮았다. 설계과정에서 황룡사 9층탑의 지붕 구조 맞춤ㆍ가구 방식과 입면비례를 참고했다고 한다. 화려한 단청 아닌 천연 옻칠로 마감했다. 평화의 비원은 담담한 옻빛이다.

 국내 최고 높이 목탑 ‘담담한 옻빛 비원’ 

시공사인 금진팀버E&C에 따르면, 평화의 탑 공사에 쓰인 목재의 양은 37만 3,261재 약 1,246㎡다. 단면이 가로 세로 각 1m인 목재 1.246㎞가 쓰였다. 이 길이를 아파트 높이로 계산해보면 460층을 넘는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5층 목탑 옥개석 부분을 덮은 기와는 3만 6,134장, 전체 공사 기간은 7개월이었다.

목조 건축은 같은 형태의 콘크리트 건축과는 전혀 다른 품격과 가치를 지닌다. 기둥·들보·판재의 소재 하나, 잇고 짜고 맞추는 결구의 방식 하나마다 기능적 충실함에 형태적 아름다움을 일치시킨다. 요란하지 않게 이어져 서로 숨쉬고 서로 쉼쉬게 한다. 한 채 목조 건축은 협력의 힘이고 조화의 아름다움이다. 조화와 협력은 평화의 실현 방식이라는 점에서 평화의 5층 목탑은 그 자체로 평화의 증표가 아닐까.

국내에서 가장 높이 쌓아올린 평화의 목탑이 지역과 나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가 발원하는 기념물,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되기를 바란다. 탑의 압도적 높이만큼 평화를 바라는 국민적 염원을 이 탑에 담아내는 일이 남았다. 그 염원을 두루 담아낼 때까지 평화의 탑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김천시립박물관
김천시립박물관

 김천시립박물관 

김천시립박물관과 사명대사공원은 나란히 있다. 공간을 사이좋게 나누고 있어 공원 안에 박물관이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인공조림 대숲 사이 박물관의 첫인상은 강렬하다. 백색의 금속성 질감에 단순 직각육면체의 외관이 현대적 감각을 내뿜는다. 포스트모던의 현대미술관 느낌이 물씬하다.

김천시립박물관은 지상 3층, 건물 연면적 5,241.15㎡다. 전시 면적은 1,830㎡, 수장고 면적 3실 307.803㎡이다. 신석기에서부터 근대에 이르는 564점의 유물 전시 준비가 마무리 중이다. 유물은 물론 실물 모형, 대형 스크린, 디오라마, 홀로그램, 가상현실(VR) 투어, VCR(황악산ㆍ부항댐ㆍ무흘구곡 VR 체험), 폐쇄회로(CC)TV 영상, 터치 모니터(도자기 만들기, 퍼즐 맞추기) 등 다양한 형태와 매체 구성으로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전시를 구현했다.

김천시립박물관 내부
김천시립박물관 내부
김천시립박물관 내부
김천시립박물관 내부
김천시립박물관 내부.
김천시립박물관 내부.

 김천의 역사와 숨결 ‘문화 자부심’ 

제1 전시실은 선사시대~조선시대 김천의 역사 전시관. 김천의 역사 흐름을 보여주는 연표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선사시대(신석기·청동기시대), 삼국통일신라시대, 고려·조선시대 별로 문명의 태동, 고대국가의 성립과 이후 영고성쇠의 파노라마를 유물과 전시물로 정리한다. 제2 전시실은 김천의 근현대 역사 및 문화관광 자원 등 전시관. ‘김천의 종교문화’에서는 김천의 불교, 유교, 기독교 문화 관련 사진과 유물,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전체 H자 평면의 김천시립박물관은 오른쪽 제1·2 전시실에서 중간 통로를 건너가면 왼쪽의 기획·특별전시관과 어린이·가족 대상 평생학습장, 디지털 스마트 박물관이다.

평생학습장에서는 어린이·가족을 대상으로 친구 또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주말 체험교육, 테마 교육·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이와 함께 박물관대학 등 정기적 역사교육 및 탐방 프로그램, 노년층·직장인 대상 역사문화프로그램도 마련한다.

이밖에 김천의 역사를 테마로 전시해설사와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전시 해설 프로그램, 매달 마지막 수요일 ‘수요일 밤, 문화가 있는 박물관데이’, 박물관음악회, 재능나눔콘서트, 무료 관람 이벤트, 야간 개장 등도 준비 중이다.

김천시립박물관은 김천의 역사와 숨결이다. 문화도시 역사도시에 걸맞은 문화 자부심이다. 그동안 직지사 성보박물관이나 대구박물관 등에 의존했던 김천지역 문화재·유물의 수집·정리·보전·전시 등의 주인 역할을 찾아왔다. 김천시립박물관은 개령 중심으로 비정하는 ‘잊힌 소왕국’ 감문국의 실체 확인과 역사 복원에도 힘써주기를 바란다.

 나오며 

‘3종 소식 꾸러미’를 듣자마자 달려가는 길이 한편 내내 아쉬웠다. 함께 날아든 ‘한 군데 세 소식’이 머릿속에서는 자꾸 따로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전체를 아우르는 컨셉트, 홍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천년’이라는 주제로 ‘김천천년의삶터’라는 큰 이름을 붙여보았다. 그 안에 ‘직지천년공원’, ‘김천천년박물관’, ‘김천천년평화의탑’을 하나씩 바꿔 넣었다. 머릿속은 가지런해졌지만 이미 지어진 세 이름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직지사처럼 한 번 지어서 천년은 족히 가는 이름이 좋다. 직지의 뜻처럼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 또한 좋다. 지역민과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부분이다. 사명대사공원에 햇살 가득하다. 사명대사공원은 이어온 천년에 다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천년을 기획하는 일의 시작이다.

김천=김윤곤 기자 seoum@hankookilbo.com

추종호 기자 c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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