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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로 퇴로 없는 대치
문ㆍ아베 정권 들어 양국 관계 사상 최악
일본이 못 하면 우리가 먼저 활로 열어야
나승식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작년 11월 잠정 정지했던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절차를 재개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산업부 제공

일제 강점기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다시 충돌 궤도로 들어섰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이래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해제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협상 시늉을 하면서도 우리의 개선 조치 등을 아예 외면하는 일본의 이중적 태도에 불만이 쌓였다. 결국 협상을 통한 해결을 전제로 잠정 중단했던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하겠다며 포문을 열었다.

아울러 국내 법원은 1일 전격적으로 일본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에 채권압류명령 수령 공시송달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법원은 징용 피해자 등에 대한 배상금 확보를 위해 8월 4일부터 신일철주금 국내 자산에 대한 현금화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이 수출규제 같은 보복ㆍ압박으로 대응하겠다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 역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힌 셈이다.

반면 일본은 한술 더 뜨고 있다. WTO 제소에 대해서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대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4일 기자회견에서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며 “일본 기업의 정당한 경제활동 보호 차원에서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두고 의연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혀 추가 보복 조치를 공식화했다.

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양국 관계를 바라보는 마음은 답답하다. 양국 정부는 이제 공식 천명해 버린 각자의 강경론 때문에라도, 정면 충돌을 향해 달리는 열차가 된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역대급 경제 충격과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의 심상찮은 변화 속에서 양국이 관계 정상화를 통해 거둘 수 있는 절실한 실익을 생각하면 두 정부의 행태는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심하다.

양국 정부의 고집이 반드시 이번에 관철돼야만 하는 더 높은 가치 때문이라면 모른다. 하지만 우리 측이 일본 기업의 압류자산 현금화를 강행해서 거둘 수 있는 가치는 피해자 배상 실현과 별도로, 국가적으로는 일제 한반도 지배의 불법성을 공인하지 못한 1965년 한일 협정의 부당성을 사법적으로 재확인한다는 ‘자족감’ 정도다. 일본으로서도 어떻게든 우리 측이 가해 일본 기업에 대한 국내 자산 현금화를 강행하지 않는다 해도,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공인이 결코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아베 정부가 깜냥이 못되면, 이젠 우리 정부라도 먼저 나서 한심한 교착 국면을 풀 활로를 열어야 한다. 해법이 없지는 않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같은 이는 이미 지난해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수긍될 만한 방안을 제시해왔다. 그는 징용 배상 문제에 관한 양국 갈등의 뿌리는 역시 65년 한일협정에서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공인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그에 따라 일본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청구권 자금을 불법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협정서엔 ‘보상’이라는 용어가 쓰였음).

일본은 그러나 이번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서는 청구권 자금을 통해 이미 ‘배상’이 됐다는 모순된 주장을 펴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는 차제에 청구권 자금의 성격을 불법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역사를 바로 세우는 방향으로 일본과 협상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대신 피해자 배상은 굳이 일본에 매달릴 게 아니라, 우리 정부가 정치력을 발휘해 사회적 기금을 조성하고, 일본 대신 배상해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는 모양을 갖추자는 방안을 냈다.

어두운 과거사를 극복하는 최선의 길은 우리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일본이 부러워할 만한 진정한 일류 국가를 일구는 것이다. 그러려면 말로써 사과와 반성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원대한 시야로 미래를 그리는 지혜가 절실하다. 남 교수는 먼저 돌파구를 여는 노력을 ‘용기’라고 했다. 이 중대한 시기에 아무런 돌파구조차 모색하지 않은 채 지금의 한일 대립을 더 이상 뭉개는 건 정치적 무능에 불과하다.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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