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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평양에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의 대외 담화나 도발은 주로 심야에 이뤄진다. 북미 관계 변화에 따라 미국 워싱턴 현지 시각을 고려해서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담화 등 최근 일련의 북한 발표도 거의 늦은 밤이나 새벽에 나왔다. 내용은 ‘남한 때리기’인데도 굳이 백악관 업무 시작 시간에 맞춘 것은 결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겠다는 의도다. 2018년 남북미 화해 모드 때도 중요한 대남 전통문을 보내는 시간은 늘 밤늦은 시간대였다. 당시 심야에도 비상 상태를 유지해야 했던 우리 당국자들 입에선 볼멘소리가 나왔다. 

□ 북한의 미사일 발사도 예외 없이 새벽에 이뤄진다. 정치적 의도가 있으면 이른 새벽인 3시, 군사적 목적이 클 때는 늦은 새벽인 5~7시를 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늦은 새벽 미사일 발사는 미군 위성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서다. 탄도미사일은 이동식 발사 차량에 실려 옮겨지는데, 낮에는 이 과정이 고스란히 위성에 포착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2018년 3월 평양을 방문한 남한 대표단에게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회의를 여느라 고생하셨는데 더는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 북한이 미국 등 국제사회에 미사일 수준을 과시하려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경우엔 이른 새벽 시간을 택한다. 2017년 11월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발사는 새벽 3시17분에 실시됐다. 발사 당시 미국은 오후 1시로 미 전역에 뉴스가 퍼져 도발 효과가 극대화됐다는 평이다.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심야가 아닌 낮 2시50분에 이뤄진 것은 폭파 장면 연출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김여정이 예고한 대로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연출하기 위해 한낮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 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을 닮아 ‘올빼미형’으로 알려져 있다. 낮에 현지 지도를 하고 밤에 서면 보고와 결재를 한다. 새벽 군사훈련을 직접 참관하는 모습도 보도된다. 북한이 위기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ICBM 발사와 핵시설 재가동 등 도발 수위를 높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2017년 마지막 ICBM 발사 때 “앞으로 우리의 최고수뇌부가 결심하는 임의의 시각에 발사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온 국민이 새벽마다 새로운 도발 소식에 신경 써야 할 판이다. 밤마다 ‘벼랑 끝 전술’에 골몰하는 김정은은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할까.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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