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쓴소리도 달게 듣겠다고? 광주시 대변인 보면 “글쎄요”

입력
2020.06.1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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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광주시장이 지난 8일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차담회를 갖고 있다. 이 시장은 이 자리에서 "시장 직속으로 쓴소리위원회를 둬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이용섭 시장 페이스북 캡처
이용섭 광주시장이 지난 8일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차담회를 갖고 있다. 이 시장은 이 자리에서 "시장 직속으로 쓴소리위원회를 둬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이용섭 시장 페이스북 캡처

“시장 직속으로 쓴소리위원회(가칭)를 둬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겠습니다.”

지난 8일 오전 광주시청 브리핑룸. 기자들과 차담회를 갖던 이용섭 광주시장이 느닷없이 ‘고언(苦言)을 듣겠다’는 얘길 꺼냈다. 이 시장의 입만 쳐다보던 기자들이 이내 노트북으로 ‘받아치기’를 시작했다. 이 시장은 멈추지 않고 “쓴소리위원회는 말 그대로 듣기 좋은 단소리보다 시정에 대해 엄격히 평가하고 애정 어린 비판을 해 줄 시민사회단체와 각계각층의 시민들을 위원으로 모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이 쓴소리 경청이라….’ 몇몇 기자들은 이 시장 발언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자판을 두들기던 손가락을 멈추기도 했다. 이 시장은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초심을 견지하면서 쓴소리도 달게 듣겠다”는 글을 올렸다. 고언 경청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 시장 발언의 진정성에 의문부호가 따라 붙기 시작했다. ‘이 시장의 입’인 김모 광주시 대변인(4급)의 언론관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면서다. 김 대변인이 두 명의 부시장과 실ㆍ국장 등 26명을 초대해 개설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톡방)에 올린 글이 화근이었다. 김 대변인은 지난달 말 단톡방을 만들고 향후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주제 3개를 공지했는데, 이 중 두 개가 언론에 대한 김 대변인의 편협한 인식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김 대변인은 ‘기자가 악의적 또는 도전적으로 취재 중인 건에 대해 사전 통보(notice)’를 첫 번째 주제로 꼽았다. 문제는 김 대변인이 ‘도전적’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다. 추측컨데, 광주시나 이 시장에게 불편한 보도를 하려는 기자의 취재를 ‘도전’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 대변인이 비판적 취재활동을 권력(시정)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거나, 미심쩍은 부분을 파고드는 기자들을 광주시에 싸움이나 걸어오는 아랫사람쯤으로 여기는 오만에 빠져 있다고 해석될 소지가 적지 않다. 시정에 대한 ‘비판 언론’을 바라보는 김 대변인의 ‘위험한’ 시각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대변인이 두 번째 주제로 거론한 ‘보도자료와 다른 내용으로 왜곡된 보도에 대한 대응’을 두고도 “언론을 보도자료나 받아 쓰는 도구로 인식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언론에 대한 광주시 대변인의 뒤틀린 관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 때문에 “쓴소리위원회를 만들겠다”, “시정에 대해 엄격하게 평가하고 애정 어린 비판을 해달라”던 이 시장의 발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감지된다. 김 대변인이 언론의 쓴소리를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상황에서 쓴소리위원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쓴소리위원회 발족은 이 시장의 재선 도전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일각에선 이 시장의 최측근으로 시장을 보좌하는 김 대변인이 언론대응 단톡방을 개설한 배경엔 이 시장의 언론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뒷말도 들린다.

김 대변인은 이에 대해 “단톡방은 공무원들이 언론 취재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보도된 기사에 대해)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직제를 떠나 정보공유 개념으로 만든 것”이라며 “다만 기자들의 도전적 취재라는 적절치 않은 단어를 쓴 건 제 실수다”고 해명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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