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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 명예의전당 오른 정광준씨
“급성 백혈병 환자 긴급 수혈 라디오 듣고” 사흘 동안 내원해 4시간 동안 피 뽑기도
2010년 7시간 수술 도움 받고, 수혈자 만나 굳어진 ‘헌혈 나눔’
서울 양천구 신정2동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정광준씨가 지난 15일 서울 적십자혈액원 목동센터에서 100번째 헌혈을 하고 있다. 양천구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로 사람들 발길이 뜸해진 서울 적십자혈액원 목동센터. 정광준(48)씨는 지난 15일 오후 6시 일과를 마치고 바로 이곳에 들러 헌혈을 했다. 꼭 100번째 헌혈이었다. 성인 남성의 1회 평균 헌혈량은 400ml. 100번을 했으니 500ml 생수 80병에 해당하는 피를 위급한 시민에 나눠준 셈이다. 이날 정씨는 100번 이상 헌혈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대한적십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정씨는 2006년부터 양천구 신정2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다.

정씨는 고1때부터 헌혈을 시작했다. “처음엔 내 이름 적힌 헌혈증을 갖고 싶어 호기심에서 시작했죠.” 19일 전화로 만난 정씨의 말이다.

웃으며 말했지만, 30여 년 동안 100번의 헌혈을 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씨는 헌혈을 위해 2017년 사흘 동안 병원을 찾기도 했다. 정씨는 “우연히 토요일에 라디오 방송에서 급성 백혈병으로 위급한 환자의 긴급 수혈이 필요하다는 사연을 듣고 바로 서울대병원으로 갔다”며 “며칠에 걸쳐 검사하고 백혈구 촉진제와 알약을 먹은 뒤 다시 백혈구 채혈을 했는데 환자분이 바로 옆에 누워 있어서 그 때 짠한 상황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때 4시간 동안 백혈구 채혈을 했다.

정씨에게 헌혈은 남들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헌혈하러 혈액원을 갔을 때 20번은 발길을 그냥 돌려야 했다. 10년 전 수술을 한 데다 왼쪽 팔 혈관이 너무 약해 헌혈을 쉽게 할 수 있는 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00번 헌혈을 하기까지 30여 년이 걸린 이유다. 정씨는 “피가 안 나오는 등의 이유로 헌혈을 못하고 나온 게 20번”이라며 “헌혈을 할 땐 그래서 오른팔이나 손등으로 채혈을 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씨가 헌혈로 오랫동안 나눔을 잇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씨는 “2010년에 왼쪽 어깨 인대가 끊어져 7시간 동안 수술을 받으며 나도 수혈을 받았다”며 “내가 아파도 보고 바로 옆에서 수혈이 필요한 환자를 본 적도 있어서 헌혈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정씨는 꾸준히 헌혈을 하기 위해 매일 2만 보씩 걸으며 체력 관리를 하고 있다.

“예전에 헌혈하러가면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엔 10분의 1 수준으로 준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헌혈자가 줄어 혈액보유량이 많이 떨어졌다고 해 더 가게 되더라고요. 무섭지 않냐고요? 따끔한 건 잠깐이죠. 보람과 행복감이 더 크거든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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