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이 처가 제사상을?" 아시아 흥분시킨 '신데렐라남'

'제사음식 준비를 며느리 대신 사위들이 한다. 이런 신선한 장면이 반갑다.'(@for_n****, Lakh****, sami****)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9일 첫 공개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이런 반응들이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로 줄줄이 올라왔다. 배경은 이렇다. 드라마에선 남성 10여 명이 앞치마를 두르고는 전을 부치고 마늘종과 맛살로 꼬치를 만들며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장면이 2분여 동안 펼쳐진다. 이들은 재벌가인 퀸즈그룹 사위들로, 사위들이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게 이 집안의 풍습이다. 퀸즈그룹 홍 회장의 맏손녀 사위로 서울대 법대 출신인 백현우(김수현)는 고사리를 제기에 담으며 "이게 무슨 재능 낭비인지"라고 구시렁댄다. 제사 준비에 녹초가 된 사위들은 "홍씨 제사인데 준비하는 사람은 백씨, 조씨, 유씨" "뼈 빠지게 전 부친 건 우린데 절하는 건 지들끼리" "차례상 (준비만) 끝내면 집에 보내준다더니 '막내 당숙 오면 가라'고 한다" 등의 푸념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명절증후군으로 가슴이 답답해진 백현우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처가 식구와 한집에 산다. 1년 365일 제 시간이 없다"며 하소연한다. 한국의 며느리들이 한결같이 겪는 고충들로, 사위들을 통해 '미러링'(Mirroring·거울처럼 상대방의 언행을 따라해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것)의 방식으로 가부장제의 차별을 비꼰 것이다. 가부장 문화의 마지막 남은 잔재라 여겨지는 제사·차례상 준비를 TV 드라마에서 남성들이 도맡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이례적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여성을 주체적으로 그리는 것을 넘어 가부장제의 핵심을 풍자했다는 점에서 통쾌함을 안겨줬다"고 평했다. '눈물의 여왕'은 '사랑의 불시착'(2019)으로 한류에 다시 불을 지핀 박지은 작가가 대본을 썼고, 세 자매의 성장기를 장르물처럼 다룬 '작은 아씨들'(2022)로 주목받은 김희원 PD 등이 연출했다. 여성 창작자들이 대중문화 주류에 우뚝 서며 변화를 이끌었다. 가부장제에 억눌려 지낸 한국 며느리들도 아니고 외국 시청자들이 K드라마의 제사 에피소드에 열광한 이유는 뭘까.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눈물의 여왕'을 봤다는 인도네시아 시청자 린탕(22)이 한국일보에 들려준 사연은 이랬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청년 결혼 비율이 떨어지고 있어요. 한국처럼 가부장적 관습이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거든요. 아직도 많은 여성이 '남편과 남편의 가족을 섬기고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요리를 해야 한다'는 인식 속에 살고 있고요. 아내와 며느리로서 고단하게 사는데 (우리처럼) 가부장제가 여전히 강한 나라가 있다는 데 묘한 동질감을 느꼈어요. K드라마를 통해 가부장 문화에 대해 가족과 얘기하는 게 속 시원하기도 했고요. 어떤 면에서 '눈물의 여왕'이 교육적으로 다가왔다랄까요, 하하하."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한국, 일본 등 가부장제의 위력이 여전히 강력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눈물의 여왕'은 이달 11일부터 16일까지 넷플릭스 드라마 부분 1위를 달리고 있다. '눈물의 여왕'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도 비튼다. 우선 '백마 탄 왕자'가 없다. 퀸즈그룹 이사인 홍해인(김지원)은 헬기를 타고 지방으로 찾아가 백현우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태양의 후예'(2016)에서 특전사인 유시진(송중기)이, '킹더랜드'(2023)에서 재벌2세인 구원(이준호)이 헬기를 타고 연인에게 날아가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과 정반대의 성역할이다. "절대 당신 눈에서 눈물 나게 안 해"라며 불안해하는 연인의 마음을 보듬는 것도 홍해인이다. 그간 '킹더랜드' 등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재벌 캐릭터를 남성 배우가 주로 맡아 '왕자님 판타지'를 불러일으켰다면, '눈물의 여왕'에선 재벌로 나오는 여성 배우가 남성에게 신분 상승 기회를 제공한다. '신데렐라'를 남성 버전으로 다시 쓴 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로맨스 판타지 주인공의 성별 전복을 비롯해 '신데렐라가 돼도 행복하지 않다'는 스토리로 또 한 번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뒤집었다"며 "뻔한 이야기에 블랙 코미디 같은 웃음을 준 게 인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재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K드라마의 변화도 감지된다. 퀸즈그룹 부모는 딸에게 쩔쩔맨다. '재벌집 막내아들'(2022) 등 재벌가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권위적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기세에 눌려 자식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방송 중인 SBS 드라마 '재벌X형사'에서 형사인 진이수(안보현)는 재벌가 일원이기에 보유한 인맥 등을 동원해 범죄를 소탕한다. '눈물의 여왕'에서 홍해인은 시아버지의 이장 선거를 물량공세로 돕는다. 영화 '베테랑'(2015) 등에서 '갑질'을 하고 버럭 화만 내던 재벌은 K드라마에서 친근하게 그려지고 서민의 일상까지 파고든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정경유착 등 비리와 특혜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고 자라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는 재벌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데 따른 변화"라고 달라진 흐름을 짚었다. 현실에서 재벌 총수를 "형"(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라 부르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시민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쉿' 동작(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한 게 화제를 모은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재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최근 보름 새 '로얄로더'를 비롯해 세 편이 줄줄이 공개됐다. 재벌3세와 평범한 회사원의 사랑과 위기, 친족들이 모두 모여 선대 제사를 지내는 현실 속 재벌가의 모습이 '눈물의 여왕'에 등장해 몰입을 키운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재벌 이야기가 세계로 퍼지면서 SNS엔 새삼 'Chaebol(재벌)'이란 단어가 들어간 게시물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드라마에서 재벌가가 인간적이고 친숙한 모습으로 연출되면서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문제와 약탈적 경영의 폐해들이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키즈존 아냐" 생후 170일 된 아이 안고 생방송한 아나운서

"엄마 마이크는 잡지 말아줄래?" 임현주(39) MBC 아나운서가 품에 생후 170일 된 딸을 안고 이렇게 말했다. 방송사 대기실에서가 아니다. 그는 18일 MBC '생방송 오늘 아침'에 딸을 안고 출연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진행자가 아이를 안고 나오기는 이례적이다. 이 파격은 저출생을 주제로 프로그램이 꾸려지면서 연출됐다. 임 아나운서는 딸 아리아를 안고 "오늘은 아주 특별한 손님과 함께한다"며 방송의 문을 열었다. 그는 "'웬 아기야?' 하고 놀라셨을 거다. 오늘 저희 방송에서는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저출생 관련 토크가 준비돼 있다"며 "그에 딱 맞는 게스트가 출연한 것"이라며 방송을 이어갔다. 돌도 안 지난 아이와 생방송을 하는 데는 좌충우돌이 따랐다. 딸은 엄마 마이크를 잡고 귀에 꽂힌 인이어(외부 모니터용) 줄을 당겼다. 임 아나운서도 당황했다. 그는 "벌써 예상하지 못하는 행동이 나오고 있다"며 "울 수도 있고 보챌 수도 있다. 이 또한 아이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니까 함께 아이를 지켜봐 준다는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고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육아를 행복하게 병행할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보탰다. 생방송 촬영장은 '노키즈존'이 아니었다. 방송 직후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아이를 많이 낳지 않고 아이가 귀해진 시대지만 안타깝게도 아이가 배제되는 곳도 많다. '여긴 출입금지야' 하면서"라며 "때론 배제되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많은 이야기를 대신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보시는 것처럼 오늘은 '노키즈존'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울러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며 "낯선 장면에 놀라셨을 텐데 함께 지켜봐주신 시청자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전했다. 임 아나운서는 영국 출신 작가 다니엘 튜더와 결혼해 지난해 10월 딸을 얻었다. 출산하고 석 달 만에 그는 방송 활동에 복귀했다. 그의 남편이 육아를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MBC 공채 32기 아나운서로 입사한 그는 2018년 지상파 여성 아나운서 최초로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

욕하면서 보는 '커플 팰리스''더 커뮤니티'...그래도 얻는 게 있다

먼저 질문부터. 타인의 성격유형검사(MBTI) 결과를 추측해 본 적 있나? 그가 어떤 동네에서 자랐을지 예상한 적은? 사람을 고작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거나 틀에 맞추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행위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짐작과 유형화를 통해 눈앞의 상대를 판단해 보았을 것이다. 상대에게서 어떤 전형성을 찾는 행위는 타인이라는 불확실한 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방영 중인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은 인간의 유형화 본능을 적극 이용한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의 ‘더 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은 여성·남성 각각 6명으로 구성된 12명의 출연자가 ‘커뮤니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미션을 이행하며 싸우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쇼는 승패의 결과보다 참가자들 사이의 이념과 가치관 충돌을 그리는 데 더 큰 중점을 둔다. 경제적 계급(서민·부유)과 젠더(페미니즘·이퀄리즘), 정치(좌·우) 관점 그리고 개방성(개방·전통) 항목으로 평가된 참가자들의 ‘사상점수’는 ‘커뮤니티’에 공유되지 않는다. 출연자들은 화법과 습관을 통해 상대의 성향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갈등을 겪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협력하기도 한다. Mnet ‘커플 팰리스’는 유명 결혼정보회사 시스템에 기반한 커플 매칭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서로의 조건을 공개하지 않고 대화부터 진행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과 달리 철저히 조건 중심의 소개팅을 지향한다. 미혼 여성과 남성 각 50명씩 결혼을 희망하는 100명의 출연자는 “S대 출신 변호사” “자산 5억에 연봉 1억” “미스코리아 출신” “부모님이 50억 원대 자산가” 같은 키워드로 자신의 스펙을 공개한다.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될 여자” “네 명의 아이를 낳아줄 여자”라거나 “명문대 출신에 전문직을 가진 남자” “양육은 보모에게 맡겨도 이해해 줄 남자” 등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배우자의 조건을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한다. 이곳에서 결혼이란 결코 손해 볼 수 없는 거래이므로 출연자들은 상대와 직접 눈을 마주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외모, 학벌, 배경, 재산 등을 재고 따지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로맨스만 제외하고 세상의 모든 접점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더 커뮤니티'의 참가자들과 결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 자신의 모난 부분을 필사적으로 감추는 '커플 팰리스'의 참가자들은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은 사회의 많은 문제가 '인간의 유형화' 때문에 발생한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나아가 그 문제는 대부분 '유형화할 수 없는 인간의 이해와 포용으로 해결된다'는 것도 보여준다. 익명의 채팅룸에서 각자의 사상을 관철하려 상대의 소중한 가치에 손상을 입히던 '더 커뮤니티'의 출연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보다 나의 선택이 커뮤니티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판단하는 것에 집중한다. 외모와 경제적 조건만 보고 결혼 상대를 흥정하듯 골랐던 '커플 팰리스'의 출연자들은 삶에 대한 가치관을 교환하다 갈등을 겪으면서 ‘결혼 거래’를 허무하게 종료한다. 그 후 나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우연히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누며 결혼의 조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두 작품은 소재 자체가 피로감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혹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그 이유로 추천한다. 서로에게 간섭해야만, 싸움의 끝을 봐야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감각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안 봐도 뻔하다’고 회피했던 수많은 더미 속엔 내가 얻을 수 있었던 새로운 관점들이 함께 묻혀 있다. 논쟁은 피곤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것에 다가가는 것을 멈춘다면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실수로라도 보지 않으리라 눈을 질끈 감았을 땐 결코 알 수 없었을 시끄러운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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