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살 건데?" 여성 연예인, '나'를 외치다

최근 유튜브에선 한 22초짜리 광고 조회 수가 6일 기준 280만 회를 돌파했다. 광고의 주인공은 여자 아이돌그룹 아이브(IVE) 멤버 리즈. 최근 온라인쇼핑몰 지그재그는 리즈를 비롯해 배우 신예은, 가수 백예린 등 젊은 여성 연예인과 유튜버 등이 출연하는 광고를 찍었다. 주인공은 달라도 포맷은 하나다. "다이어트 한 거 맞아?", "금발이 더 잘 어울리는데?" 등 사람들이 참견하며 수군거린다. 가만히 듣던 연예인들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제가 알아서 살게요." 마음대로 사고(buy), 살겠다(live)는 중의적 의미인데 대중들은 "실제 여자 연예인들에 대해 갖는 생각을 속시원하게 반박하는 것 같다"고 반겼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 등 여성 서사 픽션이 대세다. 이런 흐름 속에 여성 연예인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 과거 할 말 하는 여성 연예인들은 연차가 쌓인 뒤 '기가 세진' 캐릭터로만 쓰임새가 있었고 제 할 말을 하는 젊은 여성 연예인의 자리는 없었다. 김교석 대중문화 평론가는 "과거 여자 연예인은 예능에서도 서브 MC에 머물며 상황을 정리하거나 예쁘거나 귀여운 모습으로 남성 연예인을 받쳐주는 정도의 역할에 머물렀다"고 꼬집었다. 매체가 여성 연예인을 대하는 태도는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을 고착화한다. 서울 YMCA는 연초 발표한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분석 보고서에서 MBC M '주간 아이돌'의 한 회차에서 한 여성 아이돌에게 애교 섞인 노래를 '애교력 검증'이라며 부르도록 요구한 장면을 성차별을 강화하는 장면으로 지적했다. YMCA는 "여성의 애교는 자연스럽고, 칭찬받을 만한 것으로 전달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러한 맥락 속 편견을 '정면 돌파'하는 여성 연예인의 모습을 담은 광고는 '통쾌함'을 준다. 리즈는 데뷔 초 다른 멤버들과 스타일을 비교당하거나 "다이어트 등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식의 악플에 시달린 적이 있다. 신예은은 과거 예능에서 지나치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소속사가 배역 몰입도를 깰 수 있다며 예능 금지령을 내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예능 금지령'이 해제된 뒤 MBC '전지적 참견시점'과 SBS '런닝맨'에 출연해 엉뚱 발랄한 매력을 발산하는 신예은을 향해 대중은 더욱 환호했다. "알아서 살게요"라는 여성 연예인들의 말에 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표도 이를 증명한다. 지그재그에 따르면 광고 영상 공개 직후(지난달 16일) 기준으로 일간 활성이용자는 전주 대비 30% 증가했고 신규 가입자도 43% 증가했다. 이러한 분위기 반전의 기저엔 여성 연예인과 팬 사이의 관계성이 바뀐 점도 반영돼 있다. 연예인을 대상화하는 대신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자아실현의 욕구를 투영하기 때문이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와 조직에서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등의 고정관념이나 외모 지적을 받은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대중매체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는 여성 연예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라면서 "스스로 대상화되는 것을 참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여성 연예인들에게 환호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아이돌 마케팅의 진화]콜라병 없애고 뉴진스만 노출했는데 코카콜라 제로 대박났다

지난달 걸그룹 뉴진스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신곡 '제로'(ZERO)를 두고 온라인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콘텐츠 수준을 생각하면 오랜 기간 작업한 정식 타이틀곡 같은데 '코카콜라 맛있다'라는 가사가 나오는 걸 보면 광고 방송용 노래(CM송)처럼 비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콘텐츠는 한국코카콜라와 회사의 글로벌 뮤직 플랫폼 '코크 스튜디오' 등이 함께 만든 CM송 뮤직비디오로 2일 기준 유튜브 조회수 1,544만 회를 돌파했다. 정식 음원까지 나오면서 CM송으로는 드물게 지니뮤직 등 음원차트 1위까지 찍었다. 시선끌기에만 그친 게 아니라 대다수 편의점에서 제로슈가 제품 '코카콜라 제로'의 점유율이 상승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1일 서울 종로구 한국코카콜라 사옥에서 만난 권정현 마케팅팀 상무와 이정민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매니저는 "브랜드 노출은 최대한 줄이고 뉴진스의 감성을 극대화해 광고라는 거부감을 줄인 것이 통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마케팅팀은 애초 뉴진스가 K팝의 틀을 깨고 독보적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이번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뉴진스의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는 판단이었다. 나아가 세계 무대에 진출해서 해외 팬들로부터 호응을 얻겠다는 계산도 깔렸다. 코카콜라가 200개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만큼 애초 글로벌 프로젝트로 이번 협업을 시작했다는 얘기다. 뮤직비디오는 빨간 문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코카콜라의 슬로건인 '리얼매직'을 구현한다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이 매니저는 "연출의 초점은 스토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겨진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재미를 넣어보자는 것"이었다며 "K팝 콘텐츠처럼 팬들이 다양한 문화나 콘텐츠를 2차 생산하도록 기회를 열어놓았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버스 번호(0722)를 뉴진스의 데뷔일(2022년 7월 22일)로 적어두고 팬들이 찾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콘텐츠를 '스즈메의 문단속'에 빗대어 해석하는 글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는 빼기 위해 노력했다. 애초 뉴진스가 춤을 출 때 활용하는 빨간 소파에 브랜드 이름을 새기려고 했지만 너무 눈에 띈다는 이유로 이를 배제했고 광고의 단골 동작이었던 캔 따는 클로즈업 장면도 일부러 빼면서 제품의 직접 노출을 줄였다. '청량감', '긍정'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왔는데 이번엔 같은 메시지라도 모델이 가진 힘을 최대한 끌어내면서 신선한 느낌을 자아내려 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무엇보다 이미 후렴구에 '코카콜라 맛있다'라는 유명 가사가 들어가 있어 홍보 효과가 줄어들 걱정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권 상무는 "광고에 브랜드를 욱여넣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세련되게 표현할까 고민했다"며 "소파, 문 등 일부 소품에 코카콜라를 상징하는 빨간색을 입혀서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K팝의 성공 DNA를 이식시키는 데 상당히 공을 들였다. 메인 뮤직비디오 공개 날 음원을 풀고 며칠 후 퍼포먼스 비디오를 공개하는 등 K팝의 마케팅 방식을 고스란히 따른 것이다. 뮤직비디오는 코카콜라 공식 유튜브 채널이 아닌 뉴진스 채널에만 공개해 실제 타이틀곡처럼 느끼게끔 만들었다. 이 매니저는 "유명한 CM송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잊혀지는 곡이었는데 뉴진스의 활약으로 다시 부활한 분위기"라며 "이제 추억이 아니라 트렌디한 음악으로 자리 잡는 듯하다"고 말했다. 코카콜라는 뉴진스의 광고 영상을 재편집해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등에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코카콜라 맛있다'라는 중독성 강한 멘트를 한국어로 노출해 외국인이 그대로 따라 부르도록 이끈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제로 뮤직비디오에는 한글보다 외국어 댓글이 더 많을 정도로 글로벌 팬들의 관심이 크다. 보통은 각국 지사에서 다른 나라에서 만든 광고를 끌어다 쓸 때 현지 성우를 구해 목소리를 입히는 식으로 송출하는데 영어가 아닌 광고 콘텐츠가 원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는 설명이다. 이 매니저는 "그만큼 해외에서 뉴진스라는 모델 자체의 힘을 크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상무는 "뉴진스의 글로벌 파워를 인정한 여러 나라 지사에서 한국에서 만든 제로 광고를 쓰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며 "조만간 외국인 입에서 '코카콜라 맛있다'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라고 내심 기대했다. 한편 코카콜라는 지난달 31일 뉴진스와 손잡고 글로벌 무대를 공략할 또 다른 신곡도 공개했다. '그래미 어워즈 5관왕'의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 라틴 팝 아티스트 카밀로, 미국 래퍼 제이아이디(J.I.D) 등 다섯 팀의 아티스트와 함께한 '비 후 유 아'(Be Who You Are)다. 뮤직비디오는 공개 직후인 2일 기준 유튜브 조회 수가 37만2,000회를 돌파했다. 코카콜라는 이 음원을 앞세워 전 세계를 대상으로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죽을 고비 넘기고 두 번째 삶" 엄정화·차정숙 닮은꼴의 기적

지난겨울, 순조롭게 이뤄지던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 촬영이 중단됐다. 서이랑 역을 맡은 이서연이 아버지 서인호(김병철)가 반대한 미대 진학을 준비하다 들켜 호되게 혼나는 장면에서 펑펑 울어야 하는데 눈물을 흘리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상황. 그때 극 중 이랑의 엄마 차정숙 역을 맡은 엄정화(54)는 딸에게 다가가 두 팔로 20여 초 동안 부둥켜안았다. 대본에도 없는 엄정화의 돌발 행동에 중견 배우 박준금은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다. "액션!" 엄정화에 안긴 뒤 다시 카메라 앞에 선 이서연의 눈에선 거짓말처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촬영이 몇 번 중단되니 눈치가 보여 서연이가 포기하려고 하더라고요. 어떤 마음으로 이 장면을 준비했고, 그 감정이 제대로 안 나오면 얼마나 괴로운지 전 아니까요. 가서 만져주면 도움이 될 거 같았어요."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소재 사람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엄정화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진짜 이랑 엄마 같았다. 차정숙은 의대생 시절인 젊은 나이에 임신해 두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로 살다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이젠 뻔뻔하게 살겠다"며 20년 만에 레지던트를 시작한다. 엄정화가 차정숙의 경력 단절의 설움과 '워킹맘'의 강인함을 실감 나게 보여주자 드라마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첫 회 4.9%로 출발했던 시청률은 4일 종방 직전 20% 문턱까지 치솟았다. "젊은 친구가 잘못하면 실수지만 나이 먹은 사람의 잘못은 무능"이란 쓴소리를 들으며 차정숙처럼 직장에서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게 현실. 절망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려는 차정숙에게 시청자들은 TV 앞에 몰려들어 그를 응원했다. 엄정화는 "어떤 주부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는데 다시 도전해 보겠다고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냈다"며 "드라마를 통한 작은 공감이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거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엄정화와 차정숙은 묘하게 닮았다. 엄정화는 2010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뒤 8개월 여 동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원인은 왼쪽 성대 신경 일부 마비. 그는 "꿈을 좇아왔던 시간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숨소리를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던 시절, 엄정화는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고 목소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차정숙도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뒤 꿈을 다시 좇는다. 엄정화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차정숙과 제 인생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뭉클했고, 그런 일들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더 '차정숙이 어떤 감정일까'에 몰입하며 촬영했다"고 말했다. 엄정화가 지난해 12월 '닥터 차정숙' 촬영을 끝낸 후 가장 자주 찾은 곳은 춤 연습실이다. 그는 tvN 예능프로그램 '댄스가수 유랑단'으로 요즘 전국 각지를 누비며 무대에 선다. 김완선, 이효리, 보아, 화사 등이 그의 유랑 동료다. 그에게 유랑단 활동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간"이다. 1993년 '눈동자'가 실린 1집을 낸 뒤 올해로 가수 활동 30년. 다시 일어선 엄정화는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가수로서 발라드부터 디스코, 힙합까지 아우른 엄정화는 스크린에서도 연쇄살인범(영화 '오로라 공주')과 탈북 요원('오케이 마담')으로 쉼 없이 변신했다. 배우와 가수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그의 신조는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자"이다. "2016년 앨범 '드리머'를 냈을 때 (차트) 100위 안에서 노래를 찾아볼 수 없더라고요. 충격이 컸죠. 하지만, 노래도 연기도 내가 하기 편한 장르만 고집했다면 이렇게 오래 활동하지 못했을 거예요. 돌아보니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게 없어요. 그러니 시도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요. 나이에 갇히지 않으려고요. 차정숙이 준 '시작하기 늦은 나이는 없다'는 메시지를 품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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