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호랑이부부 사육장 이동에 뿔난 시민들, 왜?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에버랜드가 공간 부족을 이유로 스타 '호랑이 부부'의 사육장을 이동시키자 시민들과 동물단체들이 우려하고 있다. 동물단체들은 공간이나 시설∙인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호랑이를 번식시키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에버랜드는 이달 1일 호랑이 '건곤'(7세∙암컷)과 '태호'(7세∙수컷)를 타이거밸리에서 사파리월드로 옮겼다. 건곤과 태호는 2021년 낳은 새끼 호랑이 네 마리 '아름', '다운', '우리', '나라'와 타이거밸리에서 지내왔는데 새끼들이 성장하면서 이들이 생활하는 내실 공간이 부족해졌다는 게 에버랜드 측의 설명이다. 건곤과 태호의 이동 소식이 알려지자 에버랜드 동물 관련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이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민들은 운영 방식이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호랑이들의 적응 여부를 우려하는 한편 기존 방사장 확대 등 대안은 없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타이거밸리와 사파리월드는 똑같은 에버랜드 내 사육장이지만 운영방식은 차이가 있다. 타이거밸리는 일반 동물원과 같은 전시형태의 사육공간으로 교차방사 등을 통해 개체들을 관리하고 있다. 반면 사파리월드는 관람객들이 트램이나 지프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먹이를 주며 호랑이, 사자 등을 가까이에서 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동물단체들은 사파리월드에 많은 개체가 방사되고 있어 영역 다툼으로 인한 스트레스, 부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시민들은 2018년 중국 상하이 동물원에서 온 건곤과 태호가 1년간 사파리월드에서 생활하다 2019년 타이거밸리로 이동한 후 4년 5개월여 만에 다시 돌아가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두 호랑이의 나이가 적지 않고, 특히 건곤의 경우 새끼 기르는 데 지친 상황이라 영역 다툼 등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민들과 동물단체들은 또 건곤과 태호의 이동이 예견됐음에도 지금까지 공간 확보 등을 하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에버랜드는 2020년 2월 건곤과 태호가 낳은 '태범'과 '무궁'을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경북 봉화군 춘양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으로 이동시킨 바 있다. 논란이 커지자 에버랜드 측은 "건곤과 태호를 기존 사파리월드 호랑이들과 합사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사파리월드의 규모는 2만6,000㎡에 달한다"며 "건곤과 태호를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사파리월드 내 호랑이 개체 수는 민감한 정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또 "태범과 무궁의 경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으로부터 이송 요청이 있어 보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단체들은 이번 논란을 통해 동물원의 번식정책과 사육방식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곤과 태호는 2020년 2월에 이어 1년 4개월 만에 또다시 출산했다. 당시 에버랜드 측은 새끼 키우는 데 지친 건곤이를 쉬게 하는 도중 태호와 잠깐 합사하는데 임신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지금과 같은 동물원 내 번식은 멸종위기종 보전과는 상관이 없는데, 보전이라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번식을 시키고 있다"며 "번식을 시킬 때는 방사장 면적뿐 아니라 내실 규모, 사육사 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호랑이는 암수 모두 단독생활을 하는데 사파리월드처럼 한 공간에 몰아넣는 것은 동물 습성에 반하는 사육형태"라고 비판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도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으로 동물원 서식환경 기준이 강화될 것"이라며 "개체의 복지를 고려하지 않은 증식은 앞으로 강화된 기준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에버랜드 측은 "사파리월드에서는 사육사들이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돌보고 있다"며 "건곤, 태호가 건강하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백운산 오늘의 운세] 2023년 6월 8일

24년 바라던 소원을 성취한다. 36년 고생한 보람이 있다. 48년 지인들에게 뜻밖에 도움을 받는다. 60년 바라던 일들을 성취할 운이다. 72년 주위의 조언을 들으며 추진해야 한다. 84년 온유하고 원만하니 지혜를 얻는다. 25년 좋은 꿈을 꾸니 횡재수가 있다. 37년 꼬였던 일이 풀려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49년 뜻하는 일이 잘 풀리는 운이다. 61년 일한 만큼 실적이 오른다. 73년 최선을 다해 일하니 뿌듯하다. 85년 심란해지는 시기이니 조심한다. 26년 먼 곳에서 반가운 소식이 온다. 38년 어두움을 밝혀줄 은인을 만난다. 50년 좋은 대접을 받고 어깨춤을 춘다. 62년 좋은 성과로 얼굴이 밝아진다. 74년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86년 부모님께 사랑을 가득 받는 운이다. 27년 잡념을 비워 낸다. 39년 욕심들을 다 날려 보낸다. 51년 상념들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한다. 63년 복잡한 일에서 잠시 떠나 머리를 식힌다. 75년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한다. 87년 먹을 건 먹으면서 다이어트해야 한다. 28년 빠른 회복으로 퇴원한다. 40년 집에 관한 매매가 성사된다. 52년 외출할 때는 집안을 철저히 살핀다. 64년 서로 합심하니 의기양양하다. 76년 인기 계단에 오르는 운이다. 88년 은은한 색상의 옷을 선호하는 날이다. 29년 주춤하다가 상승하는 운이다. 41년 몸살감기가 나으니 운수대통한다. 53년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을 만끽한다. 65년 도시를 벗어나 드라이브한다. 77년 차분히 기다린다. 89년 물건을 잘 고르다가 비싼 것을 얻게 된다. 30년 가벼운 옷을 입으니 막힌 일이 뚫린다. 42년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본다. 54년 빵과 커피 한잔에 피로가 풀린다. 66년 좋은 공간에서 커피를 마신다. 78년 운기가 크게 들어온다. 90년 미리 화해함이 좋다. 31년 생각하지 않은 일이 성취된다. 43년 일이 잘되니 즐거운 하루다. 55년 윗사람이 잘하면 아랫사람도 본을 받는다. 67년 질서를 지키니 뿌듯해진다. 79년 화가 나도 참으면 좋아진다. 91년 시간 약속을 지켜 칭찬받는다. 32년 도움 되는 운이 찾아 든다. 44년 금전운과 문서 운이 트인다. 56년 근심이 사라지니 마음이 편해진다. 68년 북동쪽 방향 길에서 행운이 있다. 80년 오전이 지나서 오후부터 이익이 있다. 92년 마음을 비워야 합격한다. 33년 문서가 목돈이 된다. 45년 재물 운이 좋아지게 된다. 57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짜증 난다. 69년 건강 운과 신수가 좋아 운수대통한다. 81년 불길한 일들이 모두 대길하게 된다. 93년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챙긴다. 34년 행복하니 두루두루 화평해진다. 46년 좋은 기운이 집안으로 스며든다. 58년 어려운 시기에도 운수대통한다. 70년 도움을 받게 된다. 82년 대길하고 목표를 달성한다. 94년 흩어져 지내던 가족과 화합이 된다. 35년 문서와 금전 운기가 집 안으로 들어온다. 47년 가구 위치 변경을 해본다. 59년 금전 운이 열려 도움을 준다. 71년 불길 운이 소멸하니 편안히 지낸다. 83년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95년 허심탄회한 마음을 표현한다

총성 멎은 지 70년… 원시림 계곡엔 평화가 내려앉았다

청명한 날씨에 바람까지 시원한 지난 1일 오후 북한강변 화천 산천어파크골프장에서는 부부골프대회가 한 달 일정으로 열리고 있었다. 일명 ‘거례리 사랑나무’ 양쪽으로 18홀 3개 코스를 갖춘 골프장이다. 잔디를 식혀줄 분수에 햇살이 부서지는 풍경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화천은 겨울 산천어축제로 전국에서 수십만의 관광객을 불러모으지만 읍내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도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민통선 지역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총성이 멎은 지 70년, 인간의 간섭이 적어 상대적으로 원시의 자연을 보존하고 있다. 남북이 대치한 최전방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롭다. 화천읍에서 평화의댐으로 가자면 해산령을 넘는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거친다. 해산령터널을 통과하면 해오름휴게소가 나타난다. 해산은 화천읍에서 동쪽에 위치한 해 뜨는 산, 일산(日山)의 다른 이름이다. 해발 650m 언저리 해산령터널은 길이 1,986m다. 터널을 완공한 1986년에 숫자를 맞췄다고 한다. 해오름휴게소 건너편에 비수구미마을로 가는 길이 있다. 4륜 구동 차량만 갈 수 있는 험한 길인데 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게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외지인은 오로지 걸어서만 갈 수 있다. 이 길도 해산령터널과 마찬가지로 평화의댐 공사를 위해 개설됐다. 그전까지 비수구미 주민들이 외부로 드나드는 유일한 수단은 소형 선박이었다. 1944년 화천댐 준공으로 형성된 파로호 물길을 이용해 간동면 구만리까지 가는 ‘70리 뱃길’이다. 주민들은 요즘도 험한 이 길보다는 뱃길을 주로 이용한다. 비수구미(秘水九美),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독특한 지명이다.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마을 어귀 커다란 바위에 ‘비소고미금산동표(非所古未禁山東標)’라 새겨진 것으로 보아 옛 이름은 ‘비소고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동표는 조선 초기 궁궐 건축에 쓸 소나무 군락을 보호하기 위해 무단 벌목을 금지하는 표시다. 해산령에서 비수구미마을까지는 약 6.3km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철문을 통과하자마자 제법 넓은 흙길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인위적으로 산림을 가꾸지 않으니 소나무를 밀어내고 온갖 활엽수가 장악한 원시림이다. 물푸레나무와 층층나무 쪽동백나무 다래나무 단풍나무가 계곡을 따라 우거져 있고, 흔히 볼 수 없는 함박꽃나무도 종종 눈에 띈다. 귀하다는 고로쇠나무 박달나무 자작나무도 많아 주민들은 음력 정월부터 석 달 동안 마실 물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고, 그 수액으로 밥을 지었다고 한다. 더덕과 송이버섯도 지천으로 널렸다니 교통은 불편해도 오지의 축복을 제대로 누린 셈이다. 숲길로 들어선 여행객마다 상큼하고 청량한 공기에 엷은 탄성을 내뱉는다. 내리막이라 발걸음도 가벼운데 청아한 계곡 물소리가 걷는 내내 이어진다. 작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합쳐져 하류로 내려갈수록 계곡의 폭은 넓어지고 수량도 많아진다. 경사가 심한 지점엔 물소리도 요란하다. 그늘 짙은 계곡에 이끼 낀 바위 사이로 흐르는 하얀 물줄기, 크고 작은 폭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비소고미(非所古未), 굳이 해석하면 ‘아무것도 아닌 곳’이다. 혹여 이 비경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꺼려해 그렇게 지은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중간쯤에 ‘과부터골’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주인 없는 골짜기에 피란민이 들어와 화전을 일구고 농사를 지었는데, 우연히도 아홉 과부였다고 한다. 사람이 살았던 실제 흔적은 마을을 2km 정도 남긴 지점, 내리막이 끝나고 북한강이 가까워져서야 만날 수 있다. 끊겼던 휴대폰 신호도 이쯤에서 다시 연결된다. 버려진 옛 농지에 잡풀이 무성하고 간간이 바위틈에 놓인 벌통이 보인다. 현재 비수구미마을에는 4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그중 두 가구는 민박과 식당을 겸한다. 비수구미민박에서 산채비빔밥(1만2,000원)을 시켰다. 곰취 취나물 눈개승마 고사리 풍년초가 한 접시에 동그랗게 담기고 매실장아찌와 도라지무침을 비롯한 8가지 반찬이 별도로 나온다. 깊은 골짜기 자연으로 차린 밥상이니 꿀맛 건강식이다. 식당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북한강이다. 강변 언덕을 따라 비수구미 말고도 초소께 방께 법성골 지둔지 너다리 등의 자연부락에 또 20여 가구가 흩어져 살고 있다. 편리함보다는 산 좋고 물 좋은 고향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비수구미에서 해산령으로 되짚어 올라오기는 사실 힘든 일이다. 계곡을 걸어 마을까지 오는 이들은 대개 단체 여행객이다. 해산령에 여행객을 내려놓은 버스는 평화의댐 인근 싸리골에서 대기한다. 마을 선착장에서 싸리골까지는 비포장 도로가 나 있지만 낙석 위험으로 폐쇄됐다.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운영하는 작은 배로 이동해야 한다. 비수구미 주민들이 유일하게 외부와 통하던 파로호 ‘70리 뱃길’에 현재는 유람선이 운행하고 있다. 간동면 구만리 선착장에서 평화의댐 선착장까지 오전 10시, 오후 2시 하루 두 차례 40인승 평화누리호(왕복 1만9,000원)가 운항한다. 1시간 동안 잔잔한 호수를 미끄러지듯 민통선 인근 깊은 골짜기로 이동한다. 이곳은 광복 이후 북한에 속했던 지역인데 한국전쟁 때 되찾아 이승만 전 대통령이 파로호(破盧湖)라 명명했다. 오랑캐를 무찌른 곳, 즉 중공군을 격파한 호수라는 뜻이다. 험준한 산자락 짙은 녹음이 수면에 비쳐 푸른 물빛이 더욱 싱그럽다. 주민들을 태운 작은 선박이 이동하면 거울처럼 매끄러운 수면에 비단 물결이 일렁거리고, 이따금씩 왜가리가 하얀 날개를 펼치며 산모퉁이로 사라진다. 비수구미가 가까워지면 산자락으로 드문드문 한두 채의 집이 보인다. 집 아래 물가에는 어김없이 이동수단인 소형 모터보트가 정박해 있다. 낯선 시간, 낯선 공간을 유람하듯 몽롱하다. 평화의댐 선착장에 내리면 거대한 댐을 중심으로 캠핑장과 국제평화아트파크가 조성돼 있다.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삼각탑을 중심으로 낡은 탱크와 비행기를 활용한 30여 설치미술작품이 포진하고 있다. 포신에 평화의 나팔을 달고 비둘기 날갯짓으로 비상하는 탱크가 인상적이다. 국제평화아트파크 위로 비목공원과 세계평화의종공원이 연결된다. 비목공원은 6·25 전쟁의 아픔과 당시 희생된 젊은 무명 용사의 넋을 기리는 곳이자 가곡 ‘비목’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작사가 한명희는 1960년대 중반 이곳에서 14km 떨어진 백암산 비무장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잡초가 우거진 골짜기에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 하나를 발견했고, 무덤의 주인도 자신과 같은 젊은이였을 거라 생각하며 노랫말을 지었다. 후에 작곡가 장일남이 곡을 붙였다. 비목공원에는 면류관처럼 앙상한 십자가 가지에 녹슨 철모가 상징물로 설치돼 있다. 세계평화의종공원에는 이름처럼 대형 종과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기리는 동판이 세워져 있다. 평화의 종은 실제 30여 개 나라 분쟁지역의 무기를 녹여 만들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원에서 평화의댐 상부로 도로가 연결돼 있다. 지나온 선착장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고, 물이 거의 없는 댐 안쪽에 넓은 습지가 형성돼 있다. 비목의 배경 백암산(1178m)에는 지난해 케이블카가 놓였다.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금성전투의 현장으로 북한 땅이 코앞에 보이는 대한민국 최북단 케이블카다. 2.12km 길이에 40인승 캐빈이 왕복 운행한다. 원시림 우거진 가파른 산자락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전망대와 연결된다. 넓은 통유리에 ‘임남댐 16.69km, 금강산 53.11km’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날씨가 좋으면 임남댐이 선명하게 보이고 금강산 줄기도 손에 잡히는 위치다. 남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평화의댐도 코앞이다. 평화의댐은 1986년 북한 임남댐 수공에 대비하기 위해 건설했다. 전두환 정권은 당시 실제보다 위협을 과장해 전 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전개했고, 반공정서를 정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남북 2개의 댐을 잇는 물줄기는 험준한 산악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비무장지대에서도 생태의 보고로 평가된다. 케이블카 하부정류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언뜻 양의대습지가 차장으로 스친다. 굽이 도는 물줄기 안쪽에 형성된 거대한 초록 습지다. 백암산의 거친 바위지대에서는 천연기념물 산양도 종종 발견된다. 백암산케이블카 정상에서는 군사보안상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산하를 눈으로 보고 가슴에 새긴다. 최전방 관광지라 제약이 많다. 백암산케이블카 홈페이지(baegamcable.ihc.go.kr)에서 최소 3일 전 출입 신청을 해야 한다. 그래도 개인 차량으로는 갈 수 없고 읍내 화천체육관에서 신분 확인을 한 후 셔틀버스를 타고 단체로 이동해야 한다. DMZ평화의길(durunubi.kr/dmz-main.do) 화천코스를 예약하거나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끝없이 평화를 갈구하지만 긴장이 팽팽한 것이 현실이다.

라이프+

라이프 기획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