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야말로 고대사 파괴의 주범"

2023.02.06 04:30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줄여서 '메트')은 프랑스 루브르와 러시아 에르미타주 등에 이어 규모 기준 세계 5위권에 드는 미국 최대 박물관으로, 전세계 국보급 컬렉션만 200만 점이 넘고 특히 중동 이슬람 유물 컬렉션은 단연 세계 최고로 꼽히는 곳이다. 고대 근동역사를 전공한 오스카 화이트 무스카렐라(Oscar White Muscarella, 1931.3.26~ 2022.11.27)의 평생 직장이 그곳이었다. 그는 1964년 보조큐레이터로 취업해 2009년 선임연구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메트를 비롯한 전세계 유수의 박물관들과 거물 수집가들의 부정한 탐욕, 즉 도굴 문화재와 위변조 유물 거래 실상을 줄기차게 폭로했다. 유물 거래의 가장 큰 손인 주요 박물관들이 소장품을 늘리는 데 눈 멀어 출처도 불분명한 유물을 비싼 값에 경쟁적으로 사들임으로써 도굴을 부추겨 유적지를 훼손하고 결과적으로 유물 자체의 역사적 가치와 고고학적 진실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메트에서 근무한 만 45년 동안 모두 세 차례 (부당)해고 당하고도 소송을 걸어 승소했고, '선임연구원'이라는 한직으로 쫓겨나 조직과 동료들로부터 외면 당하면서도 유물-문화재의 검은 네트워크를 폭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학술 발굴로 출토되지 않은 출처 불명의 문화재를 거래하고 수집하는 행위를 ‘고고학적 강간’이라고 주장한 그가 별세했다. 향년 91세. 국제무역센터(ITC) 등이 추정하는 근년의 글로벌 지하경제 규모는 약 2조 2,000억 달러.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2022년 세계 120여개국 GDP(국내총생산) 총액(101조 5,600억 달러 추정)의 약 2~3% 수준이고, G7 국가인 한국 연간 GDP(1조 7,000억 달러)보다 큰 규모다. 마약이나 인신매매, 불법 무기거래 등에 비해 시장 규모는 적지만 예술품과 문화재 밀거래 시장도 연간 약 50억~ 10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전쟁 등으로 정정이 불안정해 문화재 약탈이 상대적으로 심한 지역, 예컨대 중동지역의 경우 문화재 밀무역이 3대 지하경제에 포함되기도 한다. 다른 조직 범죄에 비해 규모가 작고 피해 역시 피부로 체감하기 힘들어 덜 주목받지만, 문화재 도굴(절도)-위조- 밀무역은 여느 지하경제 부문보다 수익성이 높아, 인터폴 등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문화재 밀무역이 여느 지하경제와 다른 점은, 주요 수요자가 세계적 명성과 지위를 누리는 내로라하는 유명 박물관과 대학, 저명한 수집가라는 점이고, 일부 고고학계와 해당 국가마저 문화재 보호와 학술연구 등을 명분으로 그 행위를 비호 정당화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고교시절 교내 고고학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해 뉴욕 시티칼리지와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아테네에서 유학하며 그리스와 이란 터키 등지의 주요 발굴 현장에서 잔뼈를 굳힌 무스카렐라는 박사학위를 받기 1년 전인 64년 메트의 고대 근동부서 보조 큐레이터로 취업했다. 부(associate) 큐레이터를 거쳐 70년 말 부서장에 임명되며 순탄한 승진 가도를 달리던 그가 역설적 의미에서 ‘출세’를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였다. 1972년 메트가 고대 그리스 유물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Euphronios Krater)’를 저명 골동품 딜러 로버트 헥트(Robert Hecht)를 통해 120만 달러에 매입했다. 그리스인들이 와인을 희석하는 데 쓰던 그 항아리는 기원전 6세기 도공 유프로니오스의 작품으로, 검은 바탕에 붉은 물감으로 호머의 ‘일리아스’ 서사를 그림으로 새긴 걸작.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 때문에 논란이 시작됐다. 작품가를 15만 달러쯤으로 평가한 클리블랜드 박물관 고대예술 큐레이터(John Cooney)는 “25만 달러까지 쳐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이면 나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고, 저명 고고학자인 브라운대 교수 로스 홀러웨이(Ross Holloway)도 20만 달러 이상 되지는 않는다고 평했다. 펜실베이니아대 고고학 교수 데이비드 오언스(David Owens)는 “기가 찬다(…) 그 가격은 완전히 넌센스”라며, 후원금과 시민의 돈인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박물관의 방만한 경영을 비판했다. 오언스는 “저런 가격이 유물을 망친다”고 “이제 모든 마을 모든 농부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땅을 파헤칠 것”이라고도 했다. 매입 결정을 주도한 이들 중 한 명인 메트의 그리스-로마관 큐레이터 디트리히 폰 보드머(Dietrich von Bothmer)는 “값진 예술품은 가격이 없는 법”이라며 “왜 가격 걱정 대신 그 멋진 작품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인가” 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가격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불분명한 출처였다. 메트 측은 고고학 전문가들과 언론의 집요한 추궁을 완강히 외면하다 결국 "딜러가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수집가의 거래를 대행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해명은 1840년 이래 처음 ‘시장’에 나온 유프로니오스 걸작의 이력으로는 너무 허술했고, 메트쯤 되는 박물관의 공식 발표라기엔 너무 불투명했다. 거래가 성사되기 전부터 상당수 전문가는 그 작품이 도굴품이리라 의심했다. 일부 전문가는 거래 직전인 71년 말 도굴된 이탈리아 에트루스칸(Etruscan) 무덤에서 나온 것이라 추정하기도 했다. 메트의 거래를 옹호한 스위스의 한 저명 딜러는 “모든 유물은 루브르에 있든, 대영박물관에 있든, 메트에 있든, 원칙적으론 인류의 것”이라며 “다른 곳보다 미국에 있는 게 더 잘 보존될 것”이라고 도굴품 거래 자체를 옹호하기도 했다. 홀러웨이 교수는 “무덤을 약탈하는 행위가 예술품 보존이란 말이냐"며 거칠게 반박했다. 하지만 메트의 결정을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한 것은 당시 메트의 부큐레이터 무스카렐라였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작품이 어디서 출토된 것인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만일 무덤서 출토됐다면 다른 부장품도 있었을 것이다. 출토 장소를 알지 못하는 한 유물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과연 우리는 도굴꾼들을, 그들의 물건을 비싼 가격에 사주는 자들보다 더 비난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당시 메트 관장 톰 호빙(Tom Hoving)은 72년 8월 그를 “비직업적인 부적절한 행위”를 사유로 해고했다. 그는 소송을 걸어 77년 법원으로부터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아냈다. 메트는 그를 큐레이팅 업무에서 배제하고 선임연구원으로 발령했고, 그는 2009년 퇴직할 때까지 그 직책에 머물렀다. 무스카렐라의 오랜 동지이자 원군인 뉴욕 바드대 박사후과정 운영센터(Graduate Center) 명예교수 엘리자베스 심슨(Elizabeth Simpson)은 “저 일 이후 무스카렐라는 부서 업무로부터 사실상 배제된 채, 유물 구입이나 전시품 재배치, 심지어 회의나 신규 직원 채용 소식조차 듣지 못할 때가 많았고, 동료들의 방문을 받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고, “하지만 그를 아는 모두가 증언하듯, 아니 그의 삶 자체가 보여주듯, 이후로도 그는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는 결국 도굴품이란 사실이 확인됐고, 딜러인 헥트는 재판 도중 자연사했다. 메트는 이탈리아 정부 등 국제사회의 끈질긴 압력과 협상에 굴복해 2008년 그 작품을 이탈리아로 반환해야 했다. 유네스코는 1970년 협약을 통해 도굴 문화재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도굴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고 그 책임은 피해국에 있다. ‘일상업무 배제’라는 무스카렐라에 대한 보복성 징계는, 역설적으로 그에게 자잘한 잡일을 면제해주는 혜택이기도 했다. 그는 1978년 메소포타미아 전문 고고학 학술지 ‘비블리오테카 메소포타미카(Bibliotheca Mesopotamica)’에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메트를 비롯한 세계 27개 박물관과 저명 수집가 2명의 대표적 소장품 247점이 명백히 위조됐거나 모작 의혹이 있다는 요지의 논문이었다. 그는 유물의 시대별 형상적 특징과 기법을 확정적인 진품과 대조하는 등 다양한 분석을 통해 저 의혹을 제기하며, 해당 박물관 등에 유물 구입 경위와 판매자 신원, 가격 등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하버드대 피보디 박물관 소장품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박물관장 램버그-카를로프스키는 언론 전화 인터뷰에서 “몇몇 유물에 대해서는 그와 견해가 다르다”고 전제하면서 "하지만 그의 논문은(…)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당혹스럽지만, 예외적으로 중요한 지적을 담고 있다”고, “위조된 유물에 근거해 기록된 역사는 순전히 공상소설일 뿐”이라고 말했다. 옥스퍼드대 애쉬몰리언 박물관의 로저 무리(Roger Moorey)는 “지적된 유물들을 재평가한 결과 일부가 위조품임을 확인했다”며 “유물 가격이 치솟으면서 위조 기술도 수량도 늘어나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메트의 소장품 10점도 그의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 당시 메트 관장 대행 필립 드 몬테벨로(Philippe de Montebello)는 “그의 논문을 읽지 않아 반박도 동의도 하지 않겠다”며 “(하지만) 세상 어느 박물관치고 위조품이 하나도 없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클리블랜드 박물관장 셔먼 리(Sherman Lee)는 “우리는 소장품에 달려 있는 명패를 믿는다”며 “무스카렐라는 ‘결백’이 밝혀질 때까지 모든 걸 ‘유죄’라 말하는 사람이다.(…) 그가 진짜 주장하려는 건 유물 거래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리의 비난에 대해 무스카렐라는 “맞다. 나는 딜러를 통한 고대 예술품 거래에 전면 반대한다. 문제의 유물이 진품이라면 우리는 도굴 문화재를 사는 게 되고, 가짜라면 모조품을 사는 게 된다. 유물 가격 즉, 도굴꾼과 딜러, 관련 공무원들에게 지불될 뇌물 비용은 모두 시민의 돈”이라고 말했다. 그는 큐레이터 시절 자기 경험을 소개하며 “대개 딜러들은 여러 박물관을 상대로 동시에 흥정하며 ‘다른 박물관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식으로 미끼를 던진다. 그렇게 은밀히 진행되는 ‘낚시질’에 박물관장이나 큐레이터 등은 자기 전문분야도 아닌 지역의 유물을 쫓기듯 구입하고는 사후에야 자문을 받는다. 그러곤 명백한 위조 증거에도 불구하고 진품이라고 우긴다.” 그는 딜러와 위조범, 도굴꾼, 거물 소장가들과 박물관들, 일부 고고학자들이 저 병든 시스템- 그의 표현으로는 ‘시장 고고학(bazaar archeology)’-을 지탱하는 자들이라고, 유물을 구매하는 이가 없다면 도굴도 위조도 없어지거나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유물 수집의 동기, 즉 유물에 대한 독점욕과 권력욕-과시욕 혹은 병적인 자기애, 경제적 탐욕이 문화의 불멸성을 말살한다고, “유물 수집이 고고학에 미치는 영향은 강간이 사랑에 미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78년 논문의 증보판 격인 2000년 저서 ‘The Lie Became Great’에서 그는 명백한 위조품과 모작 의혹 유물 리스트를 1,250여점으로 늘렸다. 무스카렐라는 1931년 한 동거 부부의 2남매 중 장남으로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만 6세 때까지 고아원에서 성장했고,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살며 의부의 성 ‘무스카렐라’를 물려받았다. 고교시절 고고학클럽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당시 그를 격려해 준 “나의 첫, 최고의 사서”에게 2000년 책을 헌정했다. 대학 진학 후 고학하며 뉴욕시티칼리지 야간부를 6년 만에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에 진학해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발굴지를 누볐다. 2005년 인터뷰에서 그는 “터키, 이란, 그리스 등 어느 유적지를 가더라도 당신은 다이너마이트와 불도저로 훼손된 흔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도굴된 것들이 출처가 감춰진 채 (대학)박물관으로 팔려 나간다”고 말했다. “렘브란트의 작품은 도난 당해도 예술사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고대 유적지가 약탈 당하면 영원히 파괴되고 인류는 그 유적의 의미를 끝내 알지 못하게 된다. 단지 유물을 도난당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 파괴되는 것이다.” 박물관 이사진은 대부분 돈 많은 기부자이거나 개인 소장품을 박물관에 대여할 능력이 있는 거물 수집가, 키신저 등 정치인과 영향력 있는 언론사 사주 등이다. 그들은 유물 기부- 대여 등을 통해 세금을 감면 받고, 전시를 통해 유물 출처를 세탁하고 가치를 높인다. “돈과 권력의 협잡이다. 약 200여 명의 그들 큰손 수집가들과 유력 큐레이터들이 고대 인류역사를 파괴하고 있고, 시민의 세금이 그 파괴행위에 자금을 대고 있다.”‘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 구매 과정에 깊이 관여한 뉴욕타임스 사주인 설즈버거(Sulzberger) 일가도 메트의 이사진에 포함돼 있었다. 무스카렐라는 유물 보호-연구를 명분으로 도굴품을 사들이는 행위를 ‘논쟁적 이슈’로 포장한 당시의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신매매를 옹호하는 ‘포주 같은 짓’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사창가도 유고슬라비아나 우크라이나 그리스 남아프리카 중국 등지서 납치돼 온 여성들을 사들여 보살피지 않는가? 그럼 그들도 그 여성들을 보호하는 것인가.” 그는 유물 약탈도 결국 계급 문제라고 말했다. "나는 좌파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기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기적이고 부유한 자들의 권력이 역사를 말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심슨은 2018년 무스카렐라를 응원한 고고학자와 큐레이터 등 10여 명의 에세이를 모은 책 ‘한 걸출한 학자의 모험: 오스카 화이트 무스카렐라에게 바치는 글들’을 펴냈다. 심슨은 “그는 퉁명스럽고 호전적이었지만(…), 그를 싫어하는 이들도 그를 존경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의 벗'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 별세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섰던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가 4일 별세했다. 향년 55세. 고인은 1987년 한신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93년 강남향린교회에서 전도사 신분으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캐나다 유학을 거쳐 2003년 향린교회 부목사로 사역했으며 2013년부터 섬돌향린교회 담임 목회자가 됐다. 섬돌향린교회는 주류 개신교로부터 박해받는 성소수자의 쉼터였으며, 고인은 사회적 약자들의 벗이었다. 2010년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교 연대' 공동 대표를 맡아 활동했고 이로 인해 일부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당하기도 했다. 제주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과 동물권 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빈소는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 2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 오전 7시다. 유족은 남편과 딸 2명이 있다. 6일 오후 7시에는 추모문화제가 있을 예정이다.

英에 해외 독립운동가 첫 동상 세운다… ‘대한매일신보’ 창간 베델 선생

일제강점기 언론 활동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한국명 배설) 선생의 동상을 영국에 건립한다. 정부 주도로 영국에 세우는 첫 번째 외국인 독립운동가 동상이다. 국가보훈처가 올해 한영수교 140주년과 6·25 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계기로 베델 선생의 생가가 있는 브리스틀에 동상 건립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조만간 브리스틀시에 동상 건립 추진 의사를 전달하고 세부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보훈처는 최근 주영 대사관과 공동으로 조사활동을 거쳐 베델 선생의 생가를 확인하고 브리스틀시 당국과 표지판 설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델 선생은 일제강점기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와 코리아데일리뉴스를 창간하는 등 언론 활동으로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를 통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폭로하고 고종의 밀서를 보도하는 등 일본의 침탈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국채보상운동을 지원했다. 일제가 베델 선생의 추방을 영국에 요청해 소송을 벌이던 1909년 5월 1일 37세로 순국해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안장됐다. 정부는 1950년 베델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영국을 방문 중인 박민식 보훈처장은 4일(현지시간) 베델 선생의 손자를 만나 “한국과 영국은 6·25전쟁을 통한 호국의 혈맹관계이고 그 이전 독립운동으로부터 보훈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며 “영국에 첫 해외 독립운동가 동상 건립을 추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손자 토머스 오언 베델은 “대한민국은 우리가 찾지 못한 생가를 직접 확인하고, 표지판 작업에 이어 동상 건립까지 추진하는 등 과거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참으로 대단한 나라”라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