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얼마나 뻣뻣해야 하는가

입력
2022.03.01 19:00
수정
2022.03.24 15:28
25면

편집자주

17년 차 베테랑 검사이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저자인 정명원 검사가 전하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투명유리 너머로 검사선서가 비쳐 보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투명유리 너머로 검사선서가 비쳐 보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대로 몸을 접어 팔로 종아리를 감고 배를 허벅지에 붙입니다.'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요가선생님의 목소리에 따라 모든 회원들이 몸을 반으로 접은 가운데, 유독 우뚝 솟아나 있는 자가 있다. 구부리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구부렸다고 하기도 애매한 뻣뻣한 자세로, 어떻게든 남들과 가장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려고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검사 18년 차이자 요가 강습 1개월 차인 나다.

평생을 뻣뻣하게 살아 왔다. 어릴 때부터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몸을 휘고 구부리는 일보다는 꼿꼿하게 서서 걷는 일이나, 똑 부러지게 말하는 쪽에 재능이 있었다. 그런 특성은 내가 사회에 나와 갖게 된 직업과 잘 맞는 측면이 있었다. 내 직장에서 주로 듣게 되는 칭찬은 '강단이 있다'라거나 '강직하다'는 것이었으므로, 나의 뻣뻣함을 장점으로 발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를 고른 것 같았다.

내 일은 형사법이라는 잣대로 사람들의 행위를 평가하는 일이다. 어떤 행위가 금지된 행위인지 규명하고 그 행위를 한 사람에게 합당한 벌의 양을 가늠하는 일이다. 형사법이라는 이름의 잣대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아마 길고 단단한 직사각형의 잣대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일은 기본적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일이다.

문제는 그 잣대에 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직사각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 물컹하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고, 안개처럼 희뿌옇게 흩어지기도 한다. 똑 부러진 형태가 없는 세상의 모든 사연들을 형사법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재는 자의 얼굴은 기본적으로 근엄할 수밖에 없다. 허다한 사연의 결을 따라 이리저리 흘러가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된다. 그럴수록 검사는 척추를 곧추세우고 눈길을 흔들림 없이 영점에 맞추고 우선 그 행위의 죗값을 측량해 내야 한다. 세상사와 인생의 굴곡에 얼마나 감응할 것인가는, 어찌되었든 그다음의 일이다. 단단한 측량의 시간을 통과한 이후의 일.

그러므로 뻣뻣함은 이 직업을 가진 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다. 나는 쉬이 흘러넘치려는 마음을, 구부러지고 휘청이려는 눈길을 다잡아 영점에 맞추는 훈련을 하면서 이 직을 수행해 왔다. 그 결과로 평균 이상의 뻣뻣한 척추와 단단한 어깨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사연을 알 리 없는 나의 요가 선생님은 이리저리 내 몸을 늘려 보려고 노력하다가 요가 강사 십수 년에 이렇게 뻣뻣한 몸은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두른다.

검찰은 때로 너무 무르다고 비판받아 왔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뻣뻣하다고 비난받아 왔다. 직사각형의 잣대를 가지고 물컹이는 삶을 재는 일은 언제라도 두 가지 비판을 동시에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적절한 지점은 어디인가를 언제나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뻣뻣하고, 얼마나 유연해야 하는가. 혹은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단단하고, 어느 지점에서 부드러워야 하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그 '얼마나'와 그 '어느 지점'이 당장의 시류와 힘 있고 목소리 큰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명백하다.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지고 특별히 아프고 힘든 곳에 집중하면서 숨을 후~ 내쉬어 보라는 요가 선생님의 조언을 그래서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도 모른 채 뻣뻣하게 굳어 있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마땅히 더 중심을 잡았어야 했는데 놓쳐버린 원칙들과 충분히 유연할 수 있었을 텐데도 마냥 딱딱하게만 머무르던 지점들을 들여다보고, 근육을 그 반대쪽으로 당겨보아야 한다. 많이 아프겠지만, 그 아픔에 집중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후~ 하고 숨을 내쉬면서.

정명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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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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