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혹은 넷플릭스, 오스카 작품상 누가 품을까

입력
2022.03.05 1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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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코다'는 농인 부모와 오빠를 둔 소녀 루비의 성장기를 그렸다. 판씨네마 제공

올해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코다'는 농인 부모와 오빠를 둔 소녀 루비의 성장기를 그렸다. 판씨네마 제공

27일 오후(현지시간) 열릴 제94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을 앞두고 할리우드가 떠들썩하다. 편집과 분장 음악 미술 등 8개 부문 상 시상 모습을 생방송 중계에서 제외하기로 해서다. 시상은 미리 하고 이 장면을 짤막하게 재편집해 방송에 내보내기로 했다. 평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영화인들이 시상식에서도 뒷전에 놓이게 된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스태프 관련 시상을 생방송에서 제외하기로 한 건 시청률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오스카 시상식을 본 시청자 수는 985만 명으로 2020년보다 58%나 급감했다. 역대 최저 시청자 수다. 오스카 시상식 시청률은 매년 하강곡선을 그려 왔는데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까지 덮쳤다. 극장이 문을 닫은 기간이 길다 보니 화제작은 적었고, 시상식은 조촐하게 열렸다. 시상식을 주최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시대 변화에 맞춰 반전이 필요했다. 시상식을 스타 위주로 재편하고, 대중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인기상을 새로 도입했다. 스태프 시상이 빠진 자리에 뮤지컬 쇼 등 볼거리를 채우기로 했다.

아카데미상의 변화는 시상식 이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테크 기업의 강세가 눈에 띈다. 지난달 27일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와 정호연이 남녀 주연상을 수상하며 눈길을 끌었던 미국배우조합(SAG)상 시상식 결과는 흥미롭다. ‘코다’가 영화 부문 대상 격인 앙상블상을 수상해 오스카 작품상을 누가 탈지 예측하기가 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앙상블상은 오스카 수상 결과를 점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2020년 ‘기생충’이 오스카 레이스에서 ‘1917’에 밀리다 앙상블상을 수상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아카데미상 투표권을 행사하는 AMPAS 회원 16%가량이 배우로 최다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SAG상 시상식 전까진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파워 오브 도그’와 7개 부문 후보가 된 ‘벨파스트’가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돼 왔다.

‘코다’의 투자배급사는 애플TV플러스다. 아이폰 등을 만드는 애플의 동영상온라인서비스(OTT) 자회사다. ‘코다’가 작품상 트로피를 가져가면 테크 기업이 오스카 무대를 점령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애플TV플러스는 ‘테드 래소’로 SAG상 코미디시리즈 부문 앙상블상까지 차지했다.

‘파워 오브 도그’가 작품상을 수상해도 새로운 역사가 새겨진다. ‘파워 오브 도그’의 투자배급사는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오스카 작품상을 받기 위해 오래전부터 공을 들여왔다.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난 테크 기업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서였다. 2019년 ‘로마’, 2020년 ‘아이리시 맨’, 지난해 ‘맹크’ 등으로 작품상을 노려왔으나 트로피를 품에 안은 적이 한번도 없다. 코로나19 대유행을 발판 삼아 할리우드 최고 강자 중 하나로 부상한 넷플릭스로서는 오스카 작품상 수상이 대관식과도 같다. 넷플릭스의 ‘돈 룩 업’ 역시 작품상 후보에 올라 있다. 넷플릭스 영화는 총 27개 부문에서 후보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영화는 23개 부문이다. 전자상거래 대표기업 아마존의 영화는 4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

1930~40년대 할리우드를 호령했던 영화사 중에 RKO라디오픽처스가 있었다. 라디오 최강자였던 전자회사 RCA의 자회사로 1928년 설립됐다. 라디오가 첨단 미디어였던 시절이다. 첨단은 바뀌기 마련이다. 아카데미상만으로도 세상의 변화가 감지된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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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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