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삶으로만 조명되기엔 황홀하고 치열한 실비아의 시 [다시 본다, 고전]

입력
2022.03.17 14:00
수정
2022.03.17 18:49
15면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다수의 철학서를 펴내기도 한 진은영 시인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유학하던 20대 시절의 실비아 플라스. 유튜브 캡처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유학하던 20대 시절의 실비아 플라스. 유튜브 캡처

실비아 플라스(1932-1963), 강렬한 시를 썼고 지독한 우등생이었으며 재능과 의욕이 넘쳤던 사람. 후일 영국의 계관 시인이 된 테드 휴즈와 결혼해 세기의 문인 커플이 된 미국 여성 시인. 그녀의 시 전집은 작가 사후에 출간된 책으로는 처음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러나 실비아의 멋진 시보다 사람들이 더 주목하는 것은 그녀의 죽음이다.

그녀의 별명은 자살 학교. 두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고 세 번째에는 오븐의 가스를 열어놓고 목숨을 끊었다. 시인의 거듭된 자살 시도에 대한 세상의 호사가적인 관심은 도를 넘어 1970년대 초 미국의 한 대학신문에는 이런 수수께끼가 실리기까지 했다. “문: 왜 실비아 플라스가 도로를 건너갔을까? 답: 다가오는 트럭에 부딪히려고.”(박명욱.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에서 재인용) 이 고약한 농담을 남겨진 가족들이 읽었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제 겨우 서른 살.

그리고 고양이처럼 아홉 번 죽지요.

이번이 세 번째.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십 년마다 없애야 하나.

(……)

그것이 처음 일어났을 때 나는 열 살이었죠.

그것은 사고였어요.

두 번째에

나는 완전히 끝내고 다시는 살아나지 않으려 했죠.

조개껍데기처럼

- '나자로 부인' 일부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4개월 전인 1962년 10월에 이 시를 썼다. 시는 일종의 유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해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봄에 둘째 아이를 낳았고 10월에 시집 '거상(巨像)'을 출간했지만 호응이 없었다. 그 사이 남편은 아내도 아는 여성 시인과 외도를 했다.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 유튜브 캡처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 유튜브 캡처

테드 휴즈는 "'취직'을 일종의 교도소 복역이라고 상상"('실비아 플라스의 일기')하는 남자였다. 실비아의 엄마는 가난한 시인과의 결혼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녀는 엄마의 못마땅한 시선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은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테드 역시 대영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될 테니까)"('일기')이 될 거라고 쓸 만큼 두 사람의 평등하고 온전한 결합을 확신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그녀는 육아와 강의에 남편 원고 타이핑까지 하느라 작품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가정에 헌신했기에 외도의 충격은 더욱 컸다. 이런 이유로 그녀의 죽음 이후 테드 휴즈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나자로 부인'을 포함해 실비아의 책상에 놓여 있던 마지막 시집 원고 '에어리얼'에서 사람들은 죽음의 징후를 찾는 데 열중한다. 시집 전체가 예견된 끝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충동에 휩싸여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BBC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서 '나자로 부인'을 낭송하면서 시의 화자가 "부활할 수 있는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재능을 지닌 여인(…) 또한 그녀는 착하고 평범한 재치 있는 여인"이라고 덧붙였다. 성경에 나오는 나자로는 죽음을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아닌가? 화자는 유혹에 빠져 십 년마다 죽더라도 고양이처럼 내게는 아홉 번의 죽음이 있다고 말한다. 이 재치 있는 여인은 쓰레기더미 같은 삶 속에서도 난 90세까지 장수할 예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실비아 플라스. 위키미디어 커먼스

실비아 플라스. 위키미디어 커먼스

실비아가 이 시집 원고에 첫 번째로 배치한 시는 딸 프리다에 관한 것이었다. 실비아는 딸에게 "네 입은 고양이 입처럼 보기 좋게 열린다"('아침의 노래')고 속삭인다. 그녀는 "박수갈채에 가장 행복해하는 어릿광대 같고,/별을 향해 걸음마"('너는')하는 아이를 사랑했다. 이 원고에는 과하게 가까우면서도 몹시 증오했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시, 결혼생활의 괴로움을 담은 시도 있다. 이것들은 그녀가 끔찍한 자살 충동과 싸우면서도 삶에 집중하려 애썼던 기록이다. 그녀는 시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말하고 비슷한 고통을 느끼는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했다.

프리다는 테드 휴즈가 편집해 출간했던 '에이리얼'을 시인 자신이 배열했던 원래의 순서대로 재출간하면서 서문에 썼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이 마치 상을 타기라도 한 냥 기념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의 삶이 축하받기를 원했고, 그녀가 실존했고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며 살았고 행복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고 황홀해 하기도 했으며, 그리고 내 남동생과 나를 낳았다는 사실이 축하받기를 원했다. 나는 어머니가 놀라운 작품을 썼고, 평생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붙은 우울증과 싸우기 위해 용감하게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죽음을 스캔들로 소비하는 대신 그녀가 남긴 작품 속의 치열한 삶을 보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이었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실비아 플라스 지음·박주영 옮김·마음산책 발행·728쪽·2만9,000원/'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실비아 플라스 지음·김선형 옮김·문예출판사·710쪽·2만6,000원.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실비아 플라스 지음·박주영 옮김·마음산책 발행·728쪽·2만9,000원/'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실비아 플라스 지음·김선형 옮김·문예출판사·710쪽·2만6,000원.


진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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