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해라는 범죄자의 이력 설명서

입력
2022.04.12 19:00
25면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남편 살인 혐의로 수배중인 이은해와 공범 조현수. 인천지검 제공.

남편 살인 혐의로 수배중인 이은해와 공범 조현수. 인천지검 제공.

살인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은해가 잠적했다. 경기 가평 계곡에서 남편을 익사로 위장하여 사망케 한 살인 혐의를 받는 이은해가 공개 수배되면서 30세 그녀의 삶의 이력들이 속속들이 공개되고 있다. 이은해가 자신의 범죄 이력서를 적는다면 어떠한 경력을 적을까? 그리고 그녀의 경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 가출과 비행: 주변 사람들은 이은해가 중학교 때부터 가출하였고 비행청소년 경로에 들어섰다고 진술한다. 사연이야 어떻든 가정 밖의 청소년에게 이 사회는 결코 따뜻하지 않다. 지긋지긋했지만 그래도 둥지(nest)였던 가정을 박차고 나온 청소년은 당장 오늘 집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녀는 그 현실을 조금 더 알아버린 가출 선배들의 돈벌이 도구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2. 소년사건 전과 6범: 10대에 이미 전과 6범으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 그녀는 조건만남을 미끼로 남성들을 모텔로 유인한 뒤 남성이 씻는 사이 지갑 등을 훔쳐 달아났다. 10대의 범행은 반복되었지만 소년보호처분을 받았을 뿐이고 그 내용도 지금은 폐기되었다. 결과적으로 공식적인 전과는 아닌 셈이다. 상습·누적 소년사범 관리의 구멍과 소년범에 대한 형사정책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3. 유흥업소와 성매매 종사: 유흥업소나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다는 증언들은 그녀와 조현수의 공생관계를 잘 말해준다. 2019년에 진행한 성매매 실태조사 연구를 보면 시작 업태가 달랐던 많은 여성이 최종적으로는 성매매로 귀결되는 경로를 보여준다. 종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외부와의 교류는 어렵고, 그 영역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많은 불법적 환경과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 둘러싸인 그녀에게 이 바닥 문화를 매우 잘 아는 조현수는 안전하게 불법적 계획을 논의하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둥지(nest)였을 것이다.

4. 살인: 법적으로 부부가 된 이후부터 그녀는 남편 가족들의 반응을 예의 주시했을 것이고 남편이 죽더라도 가족들이 자신을 의심하거나 몰아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부터 과감한 범행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2019년 2월, 5월, 6월의 사건들에서 모두 사고사로 위장하려는 계획이 묻어난다. 여성 살인자는 흔치 않지만 대부분 40~50대이다. 젊은 여성들이 영아나 어린 자식을 죽이기도 하지만 40대 이상의 여성들은 대부분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서 남편을 살해한다. 남편의 폭력에 동기를 둔 살인 사건은 본인이 직접 살인에 가담하며 상대가 반드시 죽어야 본인이 살 수 있기에 범죄 현장은 처절하고 때에 따라 시체 손괴가 심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은해의 사건은 다르다. 여성 살인 사건이 대부분 단발성인 것에 비해 이은해의 주변 남자들은 여러 명이 죽어 나갔다. 사고사로 위장하여 자신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는 것도 다르다. 이를 통해 그녀의 살인은 원한 해소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 이득을 얻기 위한 살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새롭게 회자되는 과거 남자들의 죽음에 그녀가 관여한 것이 맞는다면 그녀는 연쇄 살인마이다. 남자 연쇄 살인마는 살인을 통해 사냥하는 쾌감을 얻고자 하지만, 여자 연쇄 살인마는 주로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범죄를 행한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이용할 수 있는 희생자를 찾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사고사로 위장된 추가 피해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5. 특이사항-2002년 공중파 방송 출연: 초등학생인 이은해는 본인의 집을 고쳐준 TV 프로그램에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저도 나중에 커서 받은 것을 다른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순수하고도 기특한 어린이의 울림 있는 발언이었다.

이은해의 이력은 많은 범죄자의 이력서와 유사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본인을 위해 인간을 이용하고 도구화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은 닮은 모습이요, 살인을 범하고도 보험회사를 방송 프로그램에 제보까지 하는 당당함은 어이가 없다. 대체 세상이 얼마나 만만했던 것일까?! 문득 초등학생이었던 이은해 말 속의 "받은 것을… 베풀고 싶어요"라는 목적어와 서술어의 조합이 씁쓸하다. 범죄자의 이력을 써 내려간 그녀는 도대체 사회에서 무엇을 받았고 무엇을 배웠던 것일까?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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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랑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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