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정계를 뒤흔든 여대생 인턴 실종…누가 왜 죽였나

입력
2022.04.15 04:30
수정
2022.04.15 07:3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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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美 챈드라 레비 살인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좇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2002년 열린 챈드라 레비의 추도식 모습. AP통신 자료사진

2002년 열린 챈드라 레비의 추도식 모습. AP통신 자료사진

2001년 5월 6일 미국 워싱턴 경찰서에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발신지는 워싱턴에서 4,300㎞ 떨어진 캘리포니아주(州) 머데스토. 연방 교정국 인턴으로 일하던 딸 챈드라 레비(당시 24세)가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부모의 실종 신고였다. 경찰이 아파트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친구들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조사 결과 레비는 4월 30일 인근 헬스클럽에 마지막으로 들른 뒤 종적을 감춘 것으로 확인됐다.

5월 10일 경찰은 영장을 발부받아 레비의 아파트를 수색했다. 방안에선 짐을 싸다 만 여행가방과 신용카드, 신분증, 휴대폰이 발견됐고, 싱크대에는 설거지할 접시가 놓여 있었다. 그 집에서 사라진 건 집 열쇠와 반지, 그리고 레비였다. 단순 실종이나 가출이라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가족들은 혹시 무슨 단서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 딸의 통화 내역을 훑었다. 유난히 통화가 잦았던 번호 하나가 눈에 띄었다. 확인해 보니 연방 하원의원 게리 콘딧(당시 53세)의 사무실이었다. “사귀는 ‘비밀 친구’가 있다”던 딸의 얘기가 떠올랐다. 불안과 의심이 싹텄다. 경찰도 곧 눈치를 챈 듯했다. 그해 워싱턴 정계를 뒤흔든 실종사건이자 정치스캔들,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에 비견되는 치정극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실종 당시 챈드라 레비가 살고 있던 워싱턴 아파트 내부 모습.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린 여행가방과 옷가지들이 방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미국 검찰 제공

실종 당시 챈드라 레비가 살고 있던 워싱턴 아파트 내부 모습.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린 여행가방과 옷가지들이 방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미국 검찰 제공


유력 정치인의 숨겨진 연인이 사라졌다

당시 서던캘리포니아대 행정학 석사를 밟고 있던 레비는 학위 프로그램과 연계된 연방 교정국 인턴 과정이 끝나 5월 졸업식에 맞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삿짐을 싸고, 헬스클럽 회원권도 정지했다. 졸업 후엔 연방수사국(FBI)에 지원하거나 로스쿨에 갈 계획이었다. 레비는 정치ㆍ공공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워싱턴 생활을 하면서 고향 머데스토를 지역구로 둔 콘딧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1994년 고등학교 재학 시절 챈드라 레비. 미국 워싱턴 경찰 제공

1994년 고등학교 재학 시절 챈드라 레비. 미국 워싱턴 경찰 제공

콘딧은 명망 있는 정치인이었다. 25세에 캘리포니아주 세레스시 최연소 시장이 됐고, 캘리포니아 주의원을 거쳐 1989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내리 6선을 지냈다. 두 사람은 레비가 친구와 함께 콘딧의 사무실을 방문하고 콘딧이 이들에게 국회의사당을 구경시켜준 일을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레비는 콘딧에게 푹 빠졌다. 퇴근 이후엔 늘 그의 집을 찾았다. 스물아홉 살 차이 나는 유부남 정치인과 여대생 인턴의 은밀한 만남. 레비는 오직 이모에게만 ‘나이 많은 남자’와의 교제에 대해 털어놓았다고 한다.

챈드라 레비와 내연 관계였던 게리 콘딧 미국 연방 하원의원. 위키피디아 제공

챈드라 레비와 내연 관계였던 게리 콘딧 미국 연방 하원의원. 위키피디아 제공

경찰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레비의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복구, 5월 1일 워싱턴 록 크릭 공원 산책로를 검색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대대적인 수색에도 불구하고 공원에선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동시에 콘딧과 레비의 내연관계에도 초점을 맞췄다. 콘딧을 불러 수차례 면담 조사도 했다. 콘딧은 줄곧 “좋은 친구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고, 실종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종 추정 시간대에 딕 체니 부통령과 회의를 한 사실도 확인됐다. 알리바이가 뚜렷하고 물증이 없어 용의자로 특정하기엔 무리였다.

챈드라 레비 실종사건을 다룬 2001년 7월 23일자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 표지.

챈드라 레비 실종사건을 다룬 2001년 7월 23일자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 표지.


그러는 사이 워싱턴에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었다. 언론의 관심이 폭주했다. 실종 두 달 뒤인 7월에는 콘딧이 불륜을 시인했다는 경찰발 보도까지 나오면서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콘딧은 ABC뉴스 인터뷰에서 “레비와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다”고 재차 부인했고, 성관계를 가졌냐는 질문에는 “가족에 대한 존중”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민심은 들끓었다. 과거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콘딧이 클린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호통쳤던 일화까지 소환되며 ‘내로남불’로 지탄받았다. 이듬해 3월 콘딧은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완패했다. 정계 입문 뒤 30년간 단 한 번도 선거에서 진 적이 없던 그는 2003년 1월 임기를 마친 뒤 결국 불명예스럽게 정치 인생을 마감했다.

2002년 5월 22일 챈드라 레비의 시신이 발견된 워싱턴 록크릭 공원에서 경찰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AP통신 자료사진

2002년 5월 22일 챈드라 레비의 시신이 발견된 워싱턴 록크릭 공원에서 경찰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AP통신 자료사진


유해 발견ㆍ용의자 검거, 그가 진짜 범인일까

세간의 호기심을 자아낸 치정극은 한동안 언론을 도배했으나, 9ㆍ11테러가 터지면서 완전히 잊혔다. 9월 10일까지 콘딧의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도 다음 날 싹 사라졌다.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레비는 1년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2002년 5월 22일 록 크릭 공원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한 남성이 숲이 우거진 가파른 경사로에서 우연히 백골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치과 기록 확인 결과 레비였다. 유해 발견 장소는 1년 전 수색 당시 지휘부와 현장 간 소통 오류로 수색 범위에서 제외됐던 곳이었다. 제대로 수색만 됐다면 더 일찍 발견됐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장에서 운동화와 운동복이 수거됐지만, 용의자 DNA는 나오지 않았다. 백골뿐이라 사망 원인도 밝힐 수 없었다. 정황상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챈드라 레비 유해 옆에서 발견된 운동복과 운동화. 미국 검찰 제공

챈드라 레비 유해 옆에서 발견된 운동복과 운동화. 미국 검찰 제공

용의자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실종 넉 달 뒤인 2001년 9월 워싱턴 경찰과 연방 검찰에 교도소 제소자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록 크릭 공원에서 여성 2명을 공격한 혐의로 체포돼 수감 중이던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 잉그마르 관디케가 레비를 죽였다고 고백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관디케를 수사했지만 그는 혐의를 부인했고, 거짓말 탐지기 조사마저 통과하자 수사선상에서 제외됐다.

2007년 수사팀이 바뀌고 2008년 레비 살인사건을 파헤친 워싱턴포스트의 탐사보도가 파장을 일으키면서 관디케는 다시 유력 용의자로 떠올랐다. 관디케가 수감 중이던 교도소에선 레비 사진도 발견됐다. 결정타는 과거 감방 동료인 아르만도 모랄레스의 증언이었다. 모랄레스는 “관디케가 레비를 죽이긴 했으나 강간하진 않았다고 털어놨다”며 검찰에 제보했다.

2009년 4월 관디케는 1급 살해 혐의로 기소됐고, 2010년 배심원은 유죄 평결을 내렸다. 변호사는 “관디케가 레비에 대해 얘기한 적 없다”는 다른 제소자 진술을 제출하고, 물증이 아무것도 없다고 반박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의학적 증거와 목격자 진술 없이 오로지 정황 증거와 제보자 증언에만 의지한, 초유의 유죄 판결이었다. 강하게 혐의를 부인했던 관디케는 법정에서 통역을 위해 쓰고 있던 이어폰을 내던지며 격분했다고 한다. 앞선 범행으로 10년형을 받았던 관디케는 60년형이 추가돼 다시 감옥에 갇혔다.

챈드라 레비 실종 사건이 발생한 미국 워싱턴 록 크릭 공원 일대 지도. 하단 검은색 원은 레비가 살던 아파트, 가운데 파란색 원은 공원 관리사무소, 상단 빨간색 원은 레비 시신이 발견된 장소다. 위키피디아 제공

챈드라 레비 실종 사건이 발생한 미국 워싱턴 록 크릭 공원 일대 지도. 하단 검은색 원은 레비가 살던 아파트, 가운데 파란색 원은 공원 관리사무소, 상단 빨간색 원은 레비 시신이 발견된 장소다. 위키피디아 제공


뒤집힌 판결… 또다시 미궁에 빠진 진실

그렇게 용의자가 처벌받으며 사건은 모두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러나 5년 뒤 레비의 죽음은 또다시 소환됐다. 2015년 관디케 측에서 제보자 모랄레스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재심을 청구한 것이다. 로랄레스가 레비 사건 이전부터 검찰과 은밀히 유대관계를 맺고 교도소 정보원 노릇을 해 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모랄레스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해온 인물이라는 주변인들의 평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감형을 위해 증언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검찰은 결국 재심에 대한 반대 의견을 철회했다.

새로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랄레스가 검찰 정보원이었다는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검찰이 이런 정보를 알고도 변호사에게 고의로 감췄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재심을 앞두고 교체된 새로운 검찰 팀은 2016년 관디케에 대한 기소를 취하했다. 검찰은 “관디케의 살인 혐의를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증명할 수 없다”며 “최근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뜻밖의 진전에 따라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관디케는 즉시 석방돼 이민당국으로 넘겨졌다. 불법체류 신분이었던 그는 이듬해 고국 엘살바도르로 추방됐다. 추방되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도 그는 “레비와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2016년 미국 유명 토크쇼에 출연한 게리 콘딧 전 연방 하원의원. 그는 챈드라 레비와의 내연관계를 줄곧 부인하고 있다. ABC방송 화면 캡처

2016년 미국 유명 토크쇼에 출연한 게리 콘딧 전 연방 하원의원. 그는 챈드라 레비와의 내연관계를 줄곧 부인하고 있다. ABC방송 화면 캡처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진실은 미궁에 빠졌다. 뉴욕타임스는 “레비의 죽음은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미제 사건 중 하나로 남게 됐다”고 평했다. 워싱턴경찰은 “범행 단서를 계속 추적할 것”이라고 했으나, 새로운 수사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관디케가 설사 진범이었다 해도, 그는 이제 미국에 없다. 콘딧은 사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연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2016년 한 토크쇼에 출연한 그는 “경찰이 누명을 씌우려 거짓 정보를 유출했다”며 억울해했다. 그러나 레비의 속옷에서 자신의 DNA가 발견됐다는 점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고통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었다. 레비 사망 20주기였던 지난해 레비의 엄마 수전은 머데스토 지역언론에 “누군가 진실을 말해 주기를 바란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단 하루도 딸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팔다리가 없는 것처럼 허전하고 고통스럽다. 딸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아직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죄인이 죄값을 치르기를 바랄 뿐이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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