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픽] 이게 돈이 된다고? 대기업도 줄 서는 ‘쓰레기 속 미래’

[이코노픽] 이게 돈이 된다고? 대기업도 줄 서는 ‘쓰레기 속 미래’

입력
2022.06.22 16:00
수정
2022.06.22 16:36
24면

폐기물 재활용 ‘순환경제’, 미래 성장동력 급부상
폐비닐·플라스틱에선 이미 원유 뽑는 ‘산유국’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엔 4대 그룹 모두 뛰어들어

편집자주

다양한 경제, 산업 현장의 이슈와 숨겨진 이면을 조명합니다.

지난달 22일 제주시 이호해수욕장 해변에 중국발 플라스틱 쓰레기가 떠내려와 나뒹굴고 있다. 플라스틱 순환경제가 고도화되면 이런 플라스틱 쓰레기의 발생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제주=뉴시스

#. 지난 16일 글로벌 전기차업체 테슬라가 미국 내 판매 전기차 가격을 최대 6,000달러(약 780만 원) 인상했다. 테슬라는 이미 올해 들어 미국에서 수차례 가격을 인상했는데, 가장 저렴한 모델은 작년보다 1만 달러나 올랐다. 테슬라는 한국에서도 17일 모델3와 모델Y의 판매 가격을 335만~577만 원 인상했다.

반도체 칩 부족에다 전기차 및 배터리에 쓰이는 리튬과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것이 가격 인상의 배경이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특히 “리튬 가격이 원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라며 “리튬값 급등은 향후 전기차 업계의 성장까지 저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부터 전기차 배터리 필수 원료인 리튬 가격은 폭등세를 보였다. 전기차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10년쯤 뒤엔 자칫 초고가로도 핵심 원자재를 구하지 못해 전기차를 만들지 못하는 사태를 맞을 수 있다.

한때 착한 소비와 착한 경영의 수단 정도로 여겨졌던 폐기물 재활용이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국내 대표 대기업은 모두 관련 산업에 뛰어들었다. 안 돼도 그만인 수준이 아니다. 실패하면 기업의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정부와 업계는 이를 ‘순환경제’라 부른다. 버려지던 자원을 귀한 원자재와 첨단 제품으로 되살리는 친환경, 비용절감, 원자재 확보 모델이 대한민국 경제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던지고 있다.

선형경제와 순환경제.


왜 순환경제인가

순환경제는 ‘생산-소비-폐기’로 끝나는 일방향의 선형경제가 아닌, ‘생산-소비-관리-재생산’의 순환을 통해 폐기물 소각과 매립을 최소화하고 폐자원을 최대한 재활용하는 친환경 시스템을 말한다.

“가급적 쓰레기는 줄이고, 이왕이면 재활용하는 게 좋지” 하던 시절은 끝났다. 선진국일수록 순환경제에 필사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미중 대립 속에 그간의 세계화 분업시스템이 와해되면서 이제는 돈이 있어도 자원을 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전 지구적인 탄소중립 물결은 갈수록 기존 생산방식의 비용을 높이고 있다.

순환경제로 필수 원자재의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 재활용 과정에서 탄소 배출까지 줄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미래 유망산업이 되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화장품 미용산업박람회 및 국제건강산업박람회를 찾은 시민들이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린소재 용기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플라스틱의 재탄생

현재 세계적으로 순환경제가 가장 활발한 분야는 플라스틱이다. 2020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약 3억6,700만 톤 가운데 단 9%만 재활용되고 12%는 소각, 79%는 매립됐다. 특히 지난해 전체 수입액의 약 11%를 원유 수입에 썼던 우리로서는 소각, 매립되는 플라스틱의 일부라도 재활용할 경우 원유 의존도와 환경오염을 한꺼번에 줄일 수 있게 된다.

그간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이른바 ‘물리적 재활용’에 그쳤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선별 수거한 뒤, 잘게 부수고 녹여 재활용 용기를 만드는 식이다. 하지만 접착제, 내용물 찌꺼기 등 이물질이 많아 재활용 비율이 매우 낮았다.

이에 새롭게 떠오른 신기술이 ‘화학적 재활용’이다. 폐플라스틱과 비닐 등을 화학적으로 분해해 원유 정제 과정의 최초 원료 상태에 가깝게 만든 뒤 완전히 다른 형태의 제품에까지 사용하는 방식이다. 석유화학 강국인 한국은 그 중심에 서 있다.

일명 ‘도시유전’으로 불리는 열분해유는 폐비닐ㆍ플라스틱을 고온으로 녹여 만든 재활용 원유다. ‘후처리’ 기술 수준에 따라 원유의 순도가 높아지는데, SK지오센트릭은 지난해 9월 열분해유를 정유ㆍ화학 공정 원료로 투입하는 데 성공할 만큼 기술 경쟁력을 높였다.

LG화학은 2024년까지 충남 당진에 국내 최초의 초임계 열분해유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10톤의 폐비닐ㆍ플라스틱을 8톤 이상의 열분해유로 재탄생시키는 게 목표다.

열분해유 생산공정.


SK케미칼은 화학적재활용 기술을 이미 상용화했다. 폐페트병 등을 분해해 순수 원료 상태로 되돌린 뒤 고분자 플라스틱으로 재가공한 ‘에코트리아 CR’ 소재를 로레알, 에스티로더, 시세이도 등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 용기로 공급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재활용 제품 판매 비중을 2030년 100%까지 높일 계획이다. 화학적 재활용 시장은 열분해유 기준 2020년 70만 톤에서 2030년 330만 톤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폐배터리도 새 배터리로 부활

전기차 배터리는 최근 급부상하는 순환경제의 차세대 주자다.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을 감안할 때 2030년쯤엔 국내에서만 연간 10만 개 이상의 폐배터리가 쏟아질 전망이다.

가격만 봐도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폐배터리는 쉽게 버릴 물건이 아니다. 아직은 전기차에서 나온 폐배터리를 전기 오토바이, 캠핑용 전원공급 장치 등에 ‘재사용’하는 수준이지만, 업계에선 장기적으로 폐배터리를 분해ㆍ가공해 애초 원재료 광물인 코발트, 리튬, 니켈 등을 추출해 새 배터리 생산에 활용하는 순환 시스템을 겨냥하고 있다.

여기에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강화 분위기 속에 유럽연합(EU)은 2030년 새 배터리 제조시 코발트 12%, 니켈 4%, 리튬 4% 이상은 반드시 재활용 소재를 쓰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2035년 배터리셀 제조에 쓰이는 리튬의 16%가 폐배터리에서 나올 거란 전망과 2040년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가 87조 원에 달할 거란 예측이 나올 정도다.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시장 규모.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감지한 국내 간판 대기업들은 다투어 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말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업체(라이-사이클)에 지분을 투자해 2023년부터 10년간 재활용 니켈 2만 톤을 공급받기로 했다. 국내 오창공장에는 폐배터리를 활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스템을 구축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자체 개발한 수산화리튬 추출 기술로 배터리용 광물 확보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함께 배터리 생애 주기에 걸친 재활용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SDI는 배터리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불량품(스크랩)을 분해ㆍ가공해 다시 배터리 원료 광물로 활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현대차그룹은 기업이 배터리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 대여(리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관건은 폐기물 확보” 선점 투자전쟁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국내 플라스틱 제조업체에는 2023년부터 재생원료 사용의무가 부과된다. 또 2030년까지 플라스틱 원료의 30% 이상은 재생원료로 사용해야 한다.

이런 수요 증가 전망을 타고 전국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 선별장에서 페트 압축 베일 가격은 급등 추세다. 2020년 kg당 300원이던 것이 2022년 800원으로 3배 가까이 급등했다. 아직은 자발적 분리수거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독일이 빈 플라스틱 1병당 0.25유로(약 340원)의 보증금을 돌려주며 회수율을 높이고 있는 이유다. 1병당 300~500원가량을 돌려주는 노르웨이는 플라스틱 병 재활용률이 97%에 달할 만큼 투자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 광물도 비슷한 상황이다. 최근 인플레이션 등의 영향으로 배터리셀 kWh(킬로와트시)당 가격은 올해 124달러에서 2024년 143달러로 오를 거란 전망이 이미 나온다. 여기에 중국이 배터리 4대 소재(양극재ㆍ음극재ㆍ분리막ㆍ전해액) 공급의 54~71%(2020년 기준)를 점유할 만큼 시장이 편중돼 있어 언제 보호무역의 장벽이 높아질지 모른다.

이에 각국은 이미 치열한 폐배터리 확보전을 벌이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만 4만600개에 달하는 중국은 일찍이 2016년부터 배터리 등록번호 제도 시행과 핵심소재 회수율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에선 이미 니켈, 코발트, 망간은 95%, 탄산리튬은 85%가 회수되고 있다. 2018년에는 자동차 생산기업에 폐배터리 재활용 책임을 부여했고 폐배터리 재활용 관련 규격, 등록, 회수, 포장, 운송, 해체 등 단계별 국가표준까지 제정해 적용 중이다.

EU는 ‘새로운 배터리 규정’을 시행해 현재 50%인 리튬이온 배터리 회수율 목표를 2030년 70%까지 높였고,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배터리 공급망의 모든 관계자가 배터리 정보와 이력을 공유해 재활용률을 높이는 ‘배터리 여권’ 제도를 계획 중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배터리 재활용 인프라에 2,050만 달러(267억 원)를 투자하고 전기차 및 배터리 관련 기업에 31억 달러(4조362억 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기지개 켜는 코리아 순환경제

이 같은 주요국과 각 산업 분야의 거대한 변화 이면에는 갈수록 늘어나는 환경 규제가 있다. 가령 유엔은 2024년 말까지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오염 규제협약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프랑스 생수기업 에비앙은 2025년부터 페트병을 100% 재활용 원료로 생산하기로 했다. 코카콜라는 2030년까지 페트병 원료의 50%를 재생원료로 대체한다. 유엔 가입국도, 코카콜라 납품 업체도 더는 순환경제를 외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정부의 주요 품목별 순환이용률 목표.

이에 우리 정부도 지난해 말 ‘한국형 순환경제 이행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생산ㆍ유통ㆍ소비ㆍ재활용 전 과정에서 폐기물을 감량하고 순환성을 강화하는 한편, 이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이에 따라 2030년엔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전면 금지되고, 기업들은 순환경제를 위해 아예 제품 디자인 단계부터 재활용을 염두에 둬야 한다.

기업 가운데는 주력사업을 폐기물로 변경하는 사례도 나왔다. 건설사(옛 SK건설)였던 SK에코플랜트는 2021년 환경ㆍ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뒤, 최근까지 약 2조8,000억 원을 들여 △수처리 △폐기물 소각ㆍ매립 △전기ㆍ전자 폐기물 처리 등 분야의 11개 업체를 잇따라 인수하고 있다. 김순종 미래전략 담당 임원은 “폐기물 자원 확보와 각종 필수소재 재생산을 통해 고부가가치 순환경제 사업을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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