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은 정말 공정한가'... 막연함에 저항한 '디디온식 글쓰기'

입력
2022.07.07 11:30
수정
2022.07.07 19:09
15면

[다시 본다, 고전]
조앤 디디온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다수의 철학서를 펴내기도 한 진은영 시인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헤이트 스트리트에 나와 있는 조앤 디디온. 돌베개 제공

헤이트 스트리트에 나와 있는 조앤 디디온. 돌베개 제공

스무 살의 한 여자가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서 패션잡지 보그의 에디터가 되기 위해 뉴욕에 처음 왔을 때, 아무도 그녀가 후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조앤 디디온(1934-2021), 그녀가 1968년 히피 문화를 취재하고 쓴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는 뉴저널리즘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뉴저널리즘은 기사와 소설 작법의 테크닉을 결합했던 실험적 시도로서, 흔히 객관적인 장르라고 여겨지는 기사에 기자 개인의 감정과 관점을 담으려 했다.

디디온은 기사에 글쓴이의 주관성이 드러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에세이 '알리샤와 반체제 언론'(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서 “나는 객관성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지만, 독자가 작가의 특정한 편견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그 객관성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작가가 스스로 편견이 하나도 없는 척하는 것은 모험 전체에 허위를 보태는 꼴이다”라고 했다.

디디온은 감상주의를 혐오했고 낭만적인 신화에도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녀가 보기엔 둘 다 아름답지만 거짓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히피 문화에 대한 환상을 간직한 독자들은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음악과 자유와 평화가 있다고 추앙받아온 히피 문화. 그 문화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스트리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고 그녀가 쓰고 있기 때문이다.

디디온이 그 거리에서 만난 청년 맥스는 자기 삶이 기성세대의 ‘하지 말라’와 싸워 거둔 승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이 “‘하지 말라’는 것 중에서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해본 건 마약 페이오티, 술, 메스칼린, 메테드린” 등의 향정신성 약물뿐이었다. 그들은 음악을 하려고, 글을 쓰려고, 혹은 친구를 사귀고 불안을 달래려고 약을 했다.

히피는 타락한 마약쟁이 집단에 불과하다고 폭로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약에 절어 몽롱한 상태로도 서로를 돌보고 채식주의와 명상을 고집하고 체포, 집단강간, 성병, 임신, 폭행, 굶주림을 피하는 법을 알리는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 디디온은 거기서 “안쓰러우리만큼 아무 대책도 없는 한 줌의 아이들이 사회적 진공 상태에서 공동체를 창조하려 애쓰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사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고 확신한다.

그런 단어들을 가지지 못할 때 청년들은 사회의 의혹에 소박하고 반지성주의적인 저항을 일삼게 된다. 베트남 전쟁과 소비의 상징인 비닐 랩에 반대해 마약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많은 단어가 필요한 생각은 잘난 척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그 점을 무척 염려했다. “이 아이들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유일한 어휘는 이 사회의 진부한 표현들이다. 사실 나는 독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언어의 통달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몸 바쳐 믿고 있기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살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 ‘결손가정’ 출신이라는 표현에 만족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그들이 ‘결손가정’이라는 단어로 자기 상황을 설명하는 순간, 엄마ㆍ아빠ㆍ나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족은 결핍이자 비정상이라는 기성의 관점에 자신들도 모르게 동의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조앤 디디온 지음ㆍ김선형 옮김ㆍ돌베개 발행ㆍ1만7000원.

조앤 디디온 지음ㆍ김선형 옮김ㆍ돌베개 발행ㆍ1만7000원.

디디온은 막연한 관념을 통해 생겨나는 자기 기만에 대항해 글을 썼다. 1960년대 미국 중산층의 허위의식, 자본주의에서 인문학이 생존하는 한심한 방식, 엘살바도르 내전에 대한 미국의 비윤리적 개입, 심지어 도덕성이라는 말을 자기 당파의 유리한 일에만 써먹는 사회 풍토에 대해서. 이 예리한 글들을 읽다 보면, 공정, 불공정, 진보, 보수와 같이 우리 사회를 떠도는 말에 대해 우리가 너무 막연한 수준의 지지와 반대만을 재생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단순한 결론을 향해 가는 언어 말고 제대로 듣고 충분히 관찰한 뒤에 생겨나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언어의 발신자와 수신자가 되자는 간곡한 요청을 그녀에게서 듣게 된다.

낭만 없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은 독자를 괴롭히는 법이다. 디디온은 사랑받은 만큼 공격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 의무가 있다고 믿었기에 비난과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과거에 ‘한 성격 한다’고 말해진 어떤 자질, 절제력 있는 터프함과 윤리적 배짱을 가진 사람이 되기로 이십대부터 결심했었다. 그녀가 에세이 ‘자존감에 관하여’(보그)에서 쓴 표현에 따르면 터프한 사람들이 가진 이 ‘성격’은 “자기 삶에 대단한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이자 “자존감이 샘솟는 원천”이다.


진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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