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죽으면 대체 아기 주겠다"... 덴마크 입양인들, 진실화해위에 '인권침해' 조사 신청

입력
2022.08.22 04:00
수정
2022.08.22 11: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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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인 단체 첫 조사 신청서 제출
유아 사망, 기록 위조 등 인권침해 담겨
불법 입양 88%, 권위주의 정권서 자행

1974년 덴마크로 입양된 피터 뭴러(한국명 홍민)씨.

1974년 덴마크로 입양된 피터 뭴러(한국명 홍민)씨.

덴마크 해외 입양인들이 1970~1990년대 입양 당시의 인권 침해 여부를 가려달라며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조사 신청서를 제출한다. 해외 입양인 단체가 진실화해위에 공식 조사를 의뢰하는 건 처음이다.

21일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그룹(DKRG)에 따르면, 현지 해외 입양인 50명은 23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사무실을 찾아 조사 신청서를 낸다. DKRG 소속 입양인은 175명으로, 나머지 인원도 순차적으로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덴마크로 입양된 한국인은 약 9,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신청을 주도한 DKRG 대표이자 변호사 피터 뭴러(한국명 홍민ㆍ48)씨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입양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과거 한국의 해외 입양은 인권 침해로 얼룩져 있다”면서 “입양인들로부터 불법 입양과 인권 유린 사례에 관한 증거 및 증언을 모아 진실화해위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청서를 낸 이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덴마크로 보내진 입양인들이다. 신청서에는 △유아가 입양 과정에서 사망 △부모가 있었지만 고아라는 별도 서류를 만드는 등 입양 기록 위조 △어른이 되어 한국 기관에 입양 기록을 청구했으나 기록 일부만 제공하거나 제공하지 않는 경우 등 다양한 침해 사례가 담겼다.

A(48)씨의 경우 생후 6개월 때 병원 기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덴마크에 도착하자마자 입원했던 그의 병원 기록을 보면, “여자아기 피부가 종기, 딱지로 가득 덮였고 영양실조 상태였으며 뇌수막염에 감염돼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A씨는 간호사이던 양어머니가 입양기관에 “아기가 죽을까 봐 겁난다”고 하자, 한국의 입양기관이 “걱정 말라. 아기가 숨지면 다른 아기를 주겠다”고 답했다고 증언했다.

실제 한 입양인은 입양 서류를 기반으로 한국의 친부모를 찾았지만, 이들 부부 아이는 비행기 안에서 사망했고, ‘대체’로 보내졌다고 한다. A씨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유아가 입양 과정에서 죽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DKRG는 이런 불법적 해외 입양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했다. 단체가 덴마크 정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보니, 이 나라로 입양된 전체 한국 출신 유아ㆍ어린이(8,814명) 중 1963년에서 1988년까지의 입양이 88%(7,790명)에 달했다. 뭴러씨는 “입양은 기관 설립부터 유아 송출까지 국가 승인 없이 진행될 수 없다. 권위주의 치하 국가폭력 문제를 다루는 진실화해위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뭴러씨 본인도 입양인이다. (▶관련기사: 12년째 친부모 찾는 덴마크 변호사… "입양기록, 당사자에게 오롯이 제공돼야") 뭴러씨는 진실화해위 조사 신청과 별도로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다른 나라로 보내진 입양인들과도 소송 문제를 논의 중”이라며 “한국 당국이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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