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접근금지' 어겨도 꼴랑 200만 원 과태료... 스토킹 피해자는 두렵다

입력
2022.10.05 14:4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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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피해자 '3종 보호조치' 있으나 마나
긴급응급조치 위반해도 235만원 내면 돼
잠정조치 승인까진 일주일 넘게 걸리기도
경찰 구속영장 신청은 100건 중 1건 불과

현행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 재발 우려가 있을 때 경찰이 가해자에게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세 가지다. ①접근금지를 명령하거나(긴급응급조치) ②유치장에 가두거나(잠정조치) ③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것이다. 가ㆍ피해자를 확실하게 분리시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최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 보듯 현장에선 이 같은 ‘피해자 보호 3종 세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하는 가해자에게 부과하는 과태료는 200만 원 수준에 불과했고, 잠정조치는 법원 승인까지 3일이 소요됐다. 가해자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되는 사례도 100건 중 1건에 그쳤다.

①돈으로 때우자? 유명무실 응급조치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이 지난달 21일 서울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이 지난달 21일 서울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5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 시행 후 올해 7월까지 경찰이 시행한 긴급응급조치는 2,791건이다. 이 중 긴급응급조치를 어겨 과태료를 부과받은 건수는 194건(6.9%), 평균 부과액은 235만 원이었다. 긴급응급조치 위반 시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한 현행법을 감안하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다 보니 가해자들은 ‘100m 이내 접근금지’, ‘전화ㆍ메시지 전송 금지’ 규정 등을 대놓고 어기면서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있다.

②유치장 가두려 해도 2.5일 걸려

서울교통공사 노조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신당역 사망 역무원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서울교통공사 노조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신당역 사망 역무원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잠정조치 역시 구멍이 적지 않았다. 용 의원실 측이 6, 7월 경찰의 잠정조치 처분 1,035건을 분석한 결과, 경찰 신청부터 법원 인용까지 평균 2.5일이 걸렸다. 지난해 10~12월 당시 2.3일보다 늘어난 것이다.

물론 경찰이 잠정조치를 신청하고 당일 혹은 다음 날 법원 결정이 나온 경우(391건ㆍ37.8%)가 가장 많았지만, 법원 인용까지 6일 이상 걸린 건(80건ㆍ7.7%)도 꽤 있었다. 용 의원은 “일주일 넘게 승인을 기다리는 피해자 마음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경찰도 이런 ‘공백’ 기간에 가해자가 피해자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가해자를 먼저 유치하고 이후 법원 판단을 받는 ‘긴급잠정조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③스토킹범 1.4%만 구속영장 신청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스토킹피해자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구를 의석에 붙이고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스토킹피해자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구를 의석에 붙이고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강력한 가ㆍ피해자 분리 조치인 구속영장 신청 실적도 저조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경찰에 접수된 스토킹 범죄 신고 2만7,234건 가운데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건은 고작 351건(1.4%)뿐이었다. 경찰이 신고 접수 후 가해자를 검거한 사건(7,141건)을 기준으로 해도 구속영장 신청 비율은 4.9%에 불과했다. 용 의원은 “경찰의 스토킹 대응 매뉴얼에도 영장 신청 기준은 없다”며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을 파악할 의지가 없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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