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토착화에 맞춘 방역전략의 대전환

입력
2022.12.17 11:00
수정
2022.12.17 12:14
17면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리포트입니다.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가 시판을 시작한 지난 1월 서울 동작구의 한 전담약국에서 구청 관계자가 약사로부터 환자에게 전달할 약을 받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가 시판을 시작한 지난 1월 서울 동작구의 한 전담약국에서 구청 관계자가 약사로부터 환자에게 전달할 약을 받고 있다. 뉴스1

2023년 새해를 맞이하며 일상 복귀의 마지막 관문인 실내 마스크 자율화가 초미의 관심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면역회피는 높고 전파력이 강한 쪽으로 변이를 거듭하면서 오미크론 하위변이들이 뒤섞이는 '변이 수프'(variant soup)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전 세계 국가별로 유행할 변이나 유행 규모를 예측하기 힘들다. 일부 지자체와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 의무화 해제를 결정해야만 하는 국면에서 방역당국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스페인독감(H1N1)은 변이가 많은 RNA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파 형태와 유행 경과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코로나19 상황 예측에 중요 단서가 될 수 있다. 스페인독감은 1차 유행 중증도가 기존 독감과 유사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여파로 밀집도가 높아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 군대를 통해 급격히 전파되었고 잠복기 동안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로 진화했다. 이후 전쟁을 통해 각국으로 전파되며 사망률이 높은 '2차 대유행'을 유발했다. '3차 대유행'은 바이러스가 독성이 약화된 일반 독감형태로 변환되면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감염시켰고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5,0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스페인독감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4년 만에 감염에 의한 집단면역으로 일반 독감으로 토착화되었다.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의 초기 1차 대유행 시기보다는, 감염률이 높은 국가에서 독성과 전파력이 강해진 변이 형태로 본격적인 2차 대유행으로 이어졌다. 3차 대유행은 감기 바이러스 특징이 병합되면서 독성은 5분의 1 이하로 약화되고 전파력이 급격히 높아진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어 전 세계에서 이뤄졌는데, 이는 스페인독감과 매우 유사하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코로나19의 국가별 상황은 달랐다. 남아공은 백신 접종률이 33%로 낮고 공식 확진자는 인구 대비 7%였지만 감염에 의한 자연면역 획득으로 오미크론이 델타변이보다 유행 규모와 기간이 짧았다. 발생 초기에 감염자와 사망자 비율이 높았던 인도나 유럽, 미국 등도 현재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비율이 안정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반면 한국, 대만 일본처럼 초기에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로 확진자 발생과 치사율이 매우 낮았던 국가는 백신접종률이 매우 높지만 오미크론 이후에는 확진자가 높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일련의 사례를 통해 코로나19도 감염에 의한 집단면역으로 토착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미국의 2022년 11월 조사 항체율 조사에서 94%가 1회 이상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도 2022년 3월 항체검사에서 백신 접종률이 0.4%인 초등학생들의 자연면역이 82%로 감염되면서 자연면역을 얻게 됨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54%의 국민이 감염되었으나 지난 8월 항체검사에서도 20% 정도가 보고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자연감염비율은 75~80% 정도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는 집단면역이 될 때까지 미감염자를 중심으로 파도 형태의 유행이 반복되고 감염률이 낮은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 항바이러스제 투여가 대응 방법 중 하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체로 침입 후 복제를 통해 장기손상을 유발하므로 항바이러스제로 감염되어도 복제를 억제하면 독감처럼 관리할 수 있다.

현재 독감은 진단되면 연령 관계없이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아 증상과 후유증을 감소시키므로 독감에 걸려도 일상이 정지되지 않는다. 그런데 코로나19는 항바이러스제가 투약이 시작된 지 1년이 가깝지만 처방률은 30%에 불과하다. 낮은 처방률에 따른 피해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60세 미만, 중증의 기저질환자도 금기약물이 있는 경우 대체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가 있음에도 환자가 희망하는 경우조차도 처방을 받지 못해 중환자로 악화하거나 사망한 사례를 경험하고 있다. 70% 이상 국민이 자연면역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격리 기간이 7일로 유지되는 반면 항바이러스제는 증상 발현 5일 이내로 투약이 제한되어 격리 후에는 처방이 불가능한 정책이 여전히 고수되고 있다. 고위험군에게만 승인된 팍스로비드, 레게브리오, 렘데시비르의 처방 과정을 독감처럼 간소화하거나, 의료진이 처방을 하지 않아도 사유를 기록하게 하는 등의 대응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항바이러스제 처방의 효과는 주위에서 쉽게 확인된다. 40대 암환자로 투약 대상자임에도 격리기간 항바이러스제가 처방이 되지 않아 사망한 사례가 있는 반면, 고령의 암환자도 항바이러스제 조기 투약으로 악화 없이 완치된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백신추가 접종과 실내 마스크 의무화로 중증자를 관리하려는 정책은 변화된 코로나 상황에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항바이러스제를 대상자에게 예외 없이 투여한다는 원칙의 확립이 필요하다. 항바이러스제를 제때 처방받지 못해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환자가 없도록 정책을 개선하는 게 방역당국의 의무다.

항바이러스제와 관련, 경증인 경우에 대한 대응도 시작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지속적 염증 반응으로 여러 후유증을 남긴다. 경증에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유발하므로 정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 연령, 기저질환에 관계없이 경증에도 적정한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하는 게 코로나19 토착화의 필요조건이다. 현재 사용 중인 경구용 항바이러스제는 투여가 제한적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광범위 투약이 시작됐다. 코로나19를 표적해 개발된 조코바인데, 12~60세 미만를 대상으로 오미크론 유행 시 임상이 진행되어 BA4, BA5에도 효과가 증명되었다.

모든 대상자에게 적정한 항바이러스제 투입이 가능토록 하고, 증상과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순차적 감염을 통해 집단면역에 도달하는 것이 향후 코로나19 극복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다. 스페인독감과 코로나19 경험이 쌓이면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더라도 현명한 대처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센터장

이화여자의과대학 졸업 후 삼성서울병원 호흡기 전임의로 근무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과 하버드보건대학원을 연수했다. 현재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와 호흡기내과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코로나 관련하여 서울시와 의협 코로나19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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