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낙태를 빌미 삼은 여성 증오범죄"

입력
2022.12.3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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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존 샐비

지난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 중단을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을 합헌 판결,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번복했다. 게티이미지

지난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 중단을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을 합헌 판결,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번복했다. 게티이미지

1994년 12월 30일 오전, 미국의 만 22세 청년 존 샐비(John C. Salvi III, 1972~1996)가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의 한 낙태 클리닉에 난입, 22구경 반자동소총으로 접수 담당자 2명을 살해하고 직원 등 5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도주했다. 그는 다음 날 버지니아주 노포크의 한 클리닉을 공격하려다 사전에 발각돼 미수에 그쳤고, 변장을 위해 이발까지 했지만 현장에 가방을 두고 도망치는 바람에 체포됐다. 가방에는 실탄 700여 발과 구매 영수증이 들어 있었다.

당시 그는 뉴햄프셔의 한 미용실 견습사원이었다. 사건 일주일 전 직장에서 ‘아직 고객을 받을 기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화가 나 저지른 범행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는 이전부터 잦은 분노와 폭력 등 정서적 불안 증상을 보이곤 했지만, 그의 부모는 ‘정신병’ 진단을 받으면 취직이 더 어려워질까 봐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게 했다.
변호인단은 샐비의 정신분열증 진단 등을 근거로 재판 기피를 시도했지만, 연방법원은 1996년 3월 그에게 1급 살인 등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는 항소심 중이던 그해 11월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세기 이래 이어진 임신중단권 충돌 사례 가운데 가장 끔찍한 범죄로 기억되는 저 사건 직후 대표적인 낙태 반대운동 진영이던 가톨릭 보스턴 대교구가 추기경 성명을 통해 낙태 클리닉 앞 시위 중단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가톨릭 교단과 신자 등의 시위는 이어졌고, 심지어 일부는 샐비를 영웅처럼 떠받들기도 했다.

사건 현장 클리닉에서 낙태 시술 차례를 기다리던 한 여성(Debohah Gaines)은 사건 충격으로 낙태를 포기한 뒤 아이를 출산했고, 얼마 뒤 클리닉을 고소했다. 저 사건 탓에 출산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됐으므로 클리닉 측이 아이의 양육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패소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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