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비전문가' 빈살만이 주무르는 760조 사우디 국부펀드

입력
2023.01.04 19:30
구독

760조 규모 사우디 국부펀드에 왕세자 '입김' 작용
투자 개인 취향이나 감으로 결정...대부분 손실
'제어 장치' 시급 지적 나오지만 왕실은 부인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맨 오른쪽)가 지난달 방한했을 당시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국내 기업 총수들을 만나 대화하고 있는 모습. 뉴스1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맨 오른쪽)가 지난달 방한했을 당시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국내 기업 총수들을 만나 대화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운용자산만 760조 원에 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Public Investment Fund)에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입김'이 지나치게 작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PIF도 다른 펀드와 마찬가지로 전문가들로 꾸려진 투자위원회 등이 최종 투자 결정을 하지만, 실권자인 무함마드 왕세자의 무모한 베팅을 막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팬데믹 초기 공격적인 주식 매입 결정으로 PIF에 돈을 벌어다 주기도 했지만, 나머지 투자 결정은 대부분 손실을 봐 '투자 감각이 뛰어나지 않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오일 머니'의 탈선을 우려하는 금융 전문가들 사이의 투쟁 결과가 사우디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운용 자산만 6,000억 달러(약 764조 원)에 달하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를 앞세워 전 세계 걸쳐 있는 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 루시드모터스 같은 전기차 업체부터 △게임사 △축구 구단 △금융사 등 분야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글로벌 영향력을 과시했다.

PIF 정관에 따르면 모든 투자 결정과 거래는 여느 기업 및 투자회사와 마찬가지로 사외이사가 포함된 투자위원회 등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왕세자가 평소 전기차 등 자동차 산업에 대한 관심을 보였던 데다, '게임광'으로도 알려져 있어 왕세자 본인의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투자가 주를 이뤄 왔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문제는 왕세자가 최근 몇 년 사이 손실 위험이 큰 투자를 강행하거나, 실제로 손해를 본 경우도 많았다는 점이다. 2021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고문이 세운 투자회사에 20억 달러(약 2조5,0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PIF의 투자를 감독하는 전문가 그룹은 "위험성이 높다"며 반대했지만, PIF 이사회가 이를 무시하고 투자를 강행했다.

과거 PIF가 투자한 증강현실(AR) 기업인 매직 리프와 쇼핑몰 눈 닷컴, 2017년 5월 무려 450억 달러(약 57조 원)를 투자한 일본 소프트뱅크와의 '비전펀드'가 줄줄이 적자 행진을 이어가는 등 PIF에 손해를 끼친 실패한 투자도 적지 않았다. 다만 무함마드 왕세자는 2020년 초 코로나19 타격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무너졌을 당시 이사회 반대에도 급락한 주식을 대거 사들여, 수십조 원에 달하는 수익을 펀드에 안겨주기도 했다.

글로벌 펀드 업계는 PIF가 취향과 감에 의존하는 왕세자의 투자 결정을 제어할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미 워싱턴DC에 있는 아랍 걸프국가연구소의 로버트 모길니키는 "투자 포트폴리오가 확대될수록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며 "PIF 지배구조가 개선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하향식 간섭을 방지할 제도적 보호장치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왕세자가 자문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때론 그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결국 투자의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 이를 제어하는 게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우디 왕실과 PIF는 이런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우디 왕실은 이 문제와 관련한 논평을 거부했으며 PIF 역시 "의사회 의사 결정이나 행동이 왕세자에 의해 부당하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WSJ에 전했다.

조아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