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위에 인권위

입력
2023.01.0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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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역할 자임한 환경부, '기후위기' 숙제부터 충실히 해야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업무보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업무보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달 3일 환경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보도자료 제목을 보자. ‘녹색산업, 2023년 20조 원, 임기 동안 100조 원 수출’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주문한데 대한 답이겠다. 탄소감축 이행계획(3월 발표 예정) 내용은 담겨 있지도 않다. 환경부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 역할을 한다면, 환경부 역할은 공석인가.

의외의 정부기관이 환경부 역할을 꿰찬 건 바로 다음 날(4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가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의견표명’이라는 13쪽짜리 결정문을 냈다. 수신처는 ‘대한민국정부(대통령)’로 돼 있다.

□ 환경부가 소거한 ‘기후위기에 대한 걱정’이 결정문에 가득 찼다. 인권위는 정부의 탄소감축 목표가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탄소중립법 시행령상의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에 대해,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의 비례성과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의 감축 책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정부의 추가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이 요구된다”고 했다. 온실가스 대량 배출 기업의 감축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 기후변화 관련 기업공시의 강화도 요구했다.

□ 인권위가 나선 건, 기후위기가 인권을 위협해서다. “기후위기는 생명권, 식량권, 건강권, 주거권 등 인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인권위의 진단이다. 그리고 주문했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유형화하고 기후변화가 취약계층의 고용, 노동조건, 주거, 건강, 위생 등에 미치는 위협 요소를 분석하여 취약계층 보호 및 적응역량 강화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 안타깝게도 인권위의 결정문은 ‘의견’일 뿐,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건 환경부 같은 정부부처다. 환경부는 정부 내에서 ‘비주류’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제 목소리’를 낮추고 지우는 건, 국가 전체로 봤을 때 큰 리스크이다.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명분은 환경부가 강단 있는 목소리를 낼 든든한 ‘뒷배’ 아닌가. 능력이 넘친다면, ‘산업부’가 할 일을 도와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신의 숙제부터 충실히 하고 난 다음이다.

이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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