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전 직전 극적 우승 유효주 “즐겁고 행복한 골프가 목표”

입력
2023.02.02 06: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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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2개 대회서 우승 못하면 지옥의 시드전
소수 출전 대회 무산 후 새 대회 출전 기회 생겨
공동선두에서 18번홀 '인생샷'으로 버디 첫 우승
6년 동안 103개 대회 우승 없어 골프 그만두려고 해
"1승보다 즐겁고 행복한 골프가 더 큰 목표"

KLPGA 정규투어 104번째 대회만에 생애 첫승을 거둔 유효주가 1월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서재훈 기자

KLPGA 정규투어 104번째 대회만에 생애 첫승을 거둔 유효주가 1월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서재훈 기자


이보다 더 극적일 수 없었다. 유효주(26)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생애 첫 승은 ‘로또’ 같았다. 남은 2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면 ‘지옥문’이라 불리는 시드전에 나가야 했다. 그나마 1개 대회는 출전 자격마저 없었는데 갑자기 대회가 무산되고 새로운 대회가 개최되면서 출전 기회가 생겼다. 17번홀까지 3명이 선두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18번홀 ‘인생 샷’으로 홀로 버디를 잡아냈다. 그렇게 생애 첫 우승은 104번째 대회만에 찾아왔다.

유효주는 거의 매년 시드전을 치르던 ‘단골손님’이었다. 시드전은 상금 랭킹 60위 밖으로 밀려난 선수들이 다음 시즌 투어 카드를 확보하기 위해 벌이는 살 떨리는 생존경쟁 대회다. 그는 신인 때인 2017년을 빼고는 매년 시드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2017년, 2018년 정규투어에서 활약한 뒤 2019년부터 2년간 2부 투어로 내려가야 했고 2021년에야 복귀할 수 있었다. 지난해 역시 10월 셋째 주에 열린 위믹스 챔피언십 직전까지 상금순위 87위로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나선 위믹스 챔피언십에서 유효주는 극적으로 기회를 살렸다.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3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섰는데 16번 홀 버디로 공동 선두에 오른 데 이어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세 번째 샷을 홀 1m 안쪽에 붙이고 가볍게 버디를 낚았다. 비가 내리고 기온이 떨어진 가운데 유효주가 친 인생 최고의 샷이었다. 우승상금 1억8,000만 원을 더해 상금랭킹이 30위(2억6,044만 원)로 껑충 뛰어올랐고 2024년까지 투어 카드를 확보했다.

KLPGA 정규투어 104번째 대회만에 생애 첫승을 거둔 유효주가 1월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클럽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KLPGA 정규투어 104번째 대회만에 생애 첫승을 거둔 유효주가 1월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클럽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이 대회 전까지 유효주는 마음을 비우고 시드전을 준비했다. 그는 “시드전에 대비한 연습 라운드를 하려고 전남 무안CC 예약까지 해놨었다”며 “오로지 시드전만 생각하면서 마음 편히 1라운드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유효주는 첫날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유효주는 “1라운드 끝나고 나서 우승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도 커졌다”며 “그런데 그게 부담이 되니까 스트레스 때문에 한잠도 못 자고 울기만 했다. 2라운드 때 퉁퉁 부은 눈으로 경기를 했다”고 떠올렸다.

그의 지난해 기록을 보면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유효주는 우승 경쟁은 고사하고 단 한 번도 톱 10에 들지 못했다. 위믹스 챔피언십 전까지 출전한 25개 대회 중 절반에 가까운 12개 대회에서 컷 통과에 실패했다.

워낙 예상치 못했던 우승이었다. 그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엄청 많이 울 줄 알았는데 울지도 못했다. 모두들 왜 안 울었냐고 하는데 실감이 나지 않아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고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유효주는 중학교 1학년때 처음 골프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골프 선수의 길로 들어선 건 남들보다 한참 늦은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어려서부터 다양한 운동을 접한 유효주는 “피겨스케이팅과 테니스, 농구 등을 배웠지만 가장 적성에 맞고 좋아했던 종목이 골프였다”며 “골프를 몰랐더라도 내가 워낙 운동을 좋아했으니 다른 종목 또는 운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KLPGA 데뷔 6년차인 그의 골프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해는 몸도 말을 듣지 않았다. 어깨 부상으로 원하는 스윙이 나오지 않자 ‘골프를 그만둘까’라는 고민을 수없이 했다. 유효주는 “골프를 그만두면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니 슬픔이 밀려왔다면서 "즐겁게 운동을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일이 찾아올 것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고 털어놨다.

유효주가 2022년 10월 23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CC에서 열린 KLPGA 투어 위믹스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8번홀에서 버디를 성공한 후 환하게 웃고 있다. KLPGA 제공

유효주가 2022년 10월 23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CC에서 열린 KLPGA 투어 위믹스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8번홀에서 버디를 성공한 후 환하게 웃고 있다. KLPGA 제공


그는 골프 선수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프로야구광’이다. SSG 랜더스의 전신인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팬이라고 밝힌 유효주는 “제 유일한 취미는 야구다. 거의 모든 경기를 챙겨서 본다. 시즌 중에도 경기 후에 숙소에서 야구 중계는 꼭 본다”고 말했다. 그가 SSG의 광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7월에는 SSG 홈경기에서 시구도 했다.

유효주는 새 시즌을 앞두고 두 번째 우승을 향해 다시 한번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태세다. 2월까지 체력 훈련에 집중한 뒤 3월에는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프로그램으로 새 시즌을 준비할 계획이다. 그는 “체력을 더 늘리고, 제 장점인 아이언 샷도 좀 더 가다듬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유효주의 올 시즌 목표는 당연히 ‘1승 추가’지만 그보다 더 큰 목표는 ‘행복한 골프’다. 그는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투어를 뛰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골프 목표”라며 환하게 웃었다.

KLPGA 정규투어 104번째 대회만에 생애 첫승을 거둔 유효주가 1월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새 시즌 목표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KLPGA 정규투어 104번째 대회만에 생애 첫승을 거둔 유효주가 1월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새 시즌 목표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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