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돌 빼 윗돌 괴나...난방비 추가 지원에 들어갈 3000억 내년 가스요금에 반영한다

입력
2023.02.01 17:00
수정
2023.02.01 17:0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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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금 9조 원 가스공사가 가스요금 할인하고 운영비로 처리

이창양(오른쪽 두 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도시가스 요금 할인을 적용받는 사회복지시설인 서울 성북구 정릉노인요양원을 찾아 최연혜(오른쪽) 가스공사 사장과 함께 보일러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양(오른쪽 두 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도시가스 요금 할인을 적용받는 사회복지시설인 서울 성북구 정릉노인요양원을 찾아 최연혜(오른쪽) 가스공사 사장과 함께 보일러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을 위해 1일 내놓은 추가 지원책 실행에 쓴 돈을 내년도 가스요금에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예산 확보나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서둘러 지원책을 마련하다 보니 취약계층 난방비를 결국 다른 국민들이 십시일반 요금을 더 내는 방식으로 해결한 셈이어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차상위계층까지 난방비 59만2,000원을 지원하는 '동절기 가스요금 추가 지원 대책'을 발표하며 "추가 지원은 동절기 넉 달(12월~다음 해 3월) 동안 가스요금 할인을 통해 이뤄진다"고 밝혔다. 정부의 난방비 지원은 ①가스를 비롯해 전기, 등유, 액화석유가스(LPG) 등을 살 수 있는 에너지 바우처와 ②가스요금 할인 등으로 이뤄지는데 이번 지원책에는 가스요금 할인만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난방비 폭탄'으로 여론이 들끓자 동절기 에너지바우처 지원 금액을 15만2,000원에서 30만4,000원으로 올리는 1차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사회적 배려대상자에 대한 가스요금 할인액도 9,000∼3만6,000원에서 두 배 오른 1만8,000∼7만2,000원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른 추가 재원 1,000억 원은 기획재정부 예비비로 충당하기로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

그러나 1일 내놓은 추가 2차 대책의 재원은 정부가 아니라 한국가스공사가 떠안는다. 정부 관계자는 "취약계층 요금 할인은 최대 96만 가구, 3,000억 원 혜택이 갈 것"이라면서 "이 비용을 가스공사가 운영비로 처리하고 내년 가스요금 결정 때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많아 이미 2분기 가스요금 인상이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2021년 하반기부터 올라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2021년 1분기 대비 최대 열 배 이상 뛰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주택용 가스 도매가를 38%가량 올리는 데 그쳤고, 가스공사의 미수금(가스를 낮은 값에 팔아 생긴 영업손실)은 지난해 말 기준 9조 원에 달했다. 산업부는 '가스공사 경영정상화 방안'으로 가스요금을 메가줄(MJ·가스 사용 열량 단위) 당 8.4원에서 최대 10.4원 올리는 방안을 국회에 제시한 상태다. 이 계획이 원안대로 국회 논의 과정을 거치면 현재 가스요금보다 40% 이상 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비 3,000억 원이 가스공사 '운영 비용'으로 처리되면 가스요금 인상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정부 추가 지원책에 여론은 엇갈린다. 인천시에서 동생과 함께 사는 차상위계층 황모(75)씨는 "이제라도 지원 대상에 포함돼서 다행"이라면서도 "겨울이 지나 사용량은 줄겠지만 요금이 오르면 부담은 그대로 아니겠나. 겨울철 반짝 대책 말고 근본 해결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난방비 지원 재원을 가스공사가 충당한다는 소식을 들은 직장인 이모(33)씨는 "어려운 분들은 도와드려야 하지만 복지 예산이 아니라 일반 납부자들에게 그 요금이 반영되는 건 이해가 안 된다"며 "지금도 가스값이 비싼데 더 비싸진다는 예고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부 유모(63)씨도 "국민들이 내는 가스요금으로 취약계층 추가 지원해 준다고 생색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난방비 추가 지원 대책이 가스요금 인상을 부채질하는 거 아니냐는 지적에 정부 관계자는 "어려운 분들을 전 국민이 십시일반 도우니 재정의 개념이랑 비슷"하다며 "그렇게 본다면 정부 예산 투입보다 가스 사용자들의 요금으로 해결하니까 더 목적에 부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지원책으로 가스공사가 추가로 부과할 요금이 1%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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