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일상 속 스며드는 생성 AI…"①인터넷 ②모바일 잇는 세 번째 디지털 혁명 이끌 것"

입력
2023.02.04 04:30
수정
2023.02.06 16:0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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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의사면허 시험 통과한 챗GPT
인터넷·모바일처럼 초거대 AI 혁명 가져올 것
AI 시대 주도권 확보 경쟁 나선 국내 기업들

카카오브레인의 생성 AI 칼로가 '인공지능이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란 키워드를 접한 뒤 그려 낸 가상의 이미지. 카카오브레인 제공

카카오브레인의 생성 AI 칼로가 '인공지능이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란 키워드를 접한 뒤 그려 낸 가상의 이미지. 카카오브레인 제공


'알잘딱깔센 한 디자인'. '이 착장 완전 H워얼V'.

한 인터넷 쇼핑몰 홍보 문구


여성복 매장을 운영하는 50대 김모씨는 최근 온라인 쇼핑몰을 열면서 고민에 빠졌다. 다른 쇼핑몰을 봤더니 'H워얼V'(사랑해를 뒤집은 표현),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줄임말) 등 알기 어려운 말이 너무 많았다. 주로 온라인에서 옷을 사는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 마음을 얻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김씨는 인공지능(AI)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자신이 원하는 뉘앙스만 입력해도 AI가 알아서 척척 Z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을 홍보 문구를 정해주고, 눈에 잘 띄는 섬네일도 그려줬다.

AI가 일상생활 속에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여러 차례 불러도 엉뚱한 대답만 했던 AI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이제 인간만 할 수 있던 영역을 넘보고 있다. ①2000년대 인터넷 혁명, ②2010년대 모바일 혁명에 이어 ③2020년대는 AI가 세상을 뒤바꾸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대중의 관심은 지난해 말 미 AI 연구기관 오픈AI의 챗GPT의 등장과 함께 폭발했다. 오픈AI는 2020년 선보인 초거대 AI GPT3를 개선해 챗GPT를 내놓았다. 초거대 GPT3가 AI 연구진에게 공개된 언어 프로그램 모델이라면, 챗GPT는 일반인들도 쓸 수 있게 서비스로 만든 '생성 AI' 제품이다. 챗GPT가 논문까지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출시 닷새 만에 이용자 100만 명을 모았고, 2개월이 지난 현재 월 이용자 1억 명을 달성했다.

챗GPT는 미 로스쿨 시험과 의사면허 시험까지 합격했다. 국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챗GPT에 2023년도 대통령 신년사를 써 보도록 지시했더니 '몇 자만 고치면 될 정도'로 그럴듯한 내용을 썼다고 극찬하며 주목받았다. 내친김에 오픈AI는 챗GPT의 유료 버전을 공개하면서 자신감을 이어가고 있다.



챗GPT 열풍에 천하의 구글·네이버도 긴장

시각물_AI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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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는 이르면 올해 안에 GPT4도 선보일 예정이다. 구체적 사양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짜 인간급'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자 검색 시장 점유율 90%를 장악한 구글은 '코드 레드(code red, 비상 사태)'를 발령하며 3년 전 회사를 떠났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까지 불러들였다.

국내 검색 시장 1위 네이버도 올 상반기 중 챗GPT를 겨냥한 '서치GPT'를 출시한다는 계획을 3일 깜짝 발표했다. 최수연 대표는 이날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생성 AI 트렌드에 대한 대응을 준비 중"이라며 "상반기에 네이버만의 서치GPT를 선보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기존 생성 AI의 단점으로 꼽히는 신뢰성 부족, 영어의 한국어 번역 정확성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왜 갑자기 생성 AI가 주목받게 됐을까. 2017년 구글이 AI 연구 분야에서 '트랜스포머 모델'이란 개념을 꺼내며 흐름이 바뀌었다. 이는 수학적 기법을 응용해 서로 떨어져 있는 데이터 요소들의 의미를 관계에 따라 추적해 문장 전체의 맥락과 의미를 학습하는 연구 방식이다. 예전 AI 기법으로는 멀리 있는 데이터의 뜻을 알지 못했다. AI에 '오늘 저녁 회의 자료 체크해야 한다고 알려줘'라고 말한 뒤 '그리고 그거 이메일로 보내줘'라고 지시하면 AI는 '그거'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이유다. 트랜스포머 모델을 연구한 오픈AI 개발자들은 AI 모델의 파라미터(매개변수) 규모가 클수록 성능이 좋아진다는 특성을 찾았다. 파라미터란 AI가 학습한 데이터가 저장되는 곳으로, 사람 뇌에서 정보를 공부하고 기억하는 시냅스와 비슷한 역할이다.

2020년 6월 첫선을 보인 GPT3는 1,750억 개의 파라미터를 구축했다. GPT2가 나온 지 약 1년 만에 100배 규모로 커졌고 '초거대 AI'라 불렸다. GPT3가 글짓기뿐만 아니라 미술, 코딩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너도나도 초거대 AI 개발에 나섰다.



"챗GPT, 신 아냐…생성 AI 시장 이제 열린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고 챗GPT가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답을 내놓는 건 아니다. 챗GPT가 2021년까지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점도 한계다. AI 모델이 잘못된 정보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인터넷에 접속해 데이터를 검색할 수 없게 했다.

한국일보가 만난 국내 생성 AI 기업들은 챗GPT가 앞서고 있지만 아직 기회는 많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기존의 AI와 관련 없는 분야까지 적용이 가능해지면서 관련 시장 규모도 예측할 수 없을 수준으로 커질 수 있다는 예상이다. 2000년대 인터넷 도입 이후 구글과 페이스북이 나왔고, 2010년대 모바일이 보급되면서 카카오톡 같은 앱이 등장했던 것처럼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특화된 생성 AI 서비스가 쏟아지면서 각축전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생성 AI를 개발하는 유망 스타트업에는 자금이 몰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벤처캐피털(VC)이 지난해 생성 AI 관련 기업에 투자한 자금은 13억7,000만 달러(약 1조7,000억 원)로 나타났다. 앞서 5년 동안의 투자금을 합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센스있는 한국어 SNS 문구는 챗GPT보다 낫죠"

뤼튼에 제품명과 제품정보를 입력하면 적당한 홍보 문구를 만들어준다. 뤼튼테크놀로지스 제공

뤼튼에 제품명과 제품정보를 입력하면 적당한 홍보 문구를 만들어준다. 뤼튼테크놀로지스 제공


챗GPT처럼 글을 대신 써주는 '텍스트 생성 AI' 분야에선 AI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뤼튼)가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초거대 AI를 이용해 적절한 광고 문구나 간단한 회사 소개문 초안을 작성해주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출시 석 달 만에 이용자 8만 명을 확보했고, 10억 개 이상의 단어를 만들었다.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이세영 대표는 "챗GPT는 한국어 성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뤼튼이 답변이나 일반 글 생성의 경우 챗GPT에 뒤질 수 있지만 광고 문구나 유튜브 제목에선 더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뤼튼은 블로그 포스팅, SNS 광고 문구, 유튜브 다국어 제목 및 설명, 채용 공고글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글을 대신 써 준다. 기자가 '코드프리'라는 제품명과 '코딩을 모르는 문과생도 개발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정보를 입력하며 홍보 문구를 만들어달라 요청했더니, 뤼튼은 '개발이 너무 어렵다고? 괜찮아, 너만 어려워하는 거 아니니까~ 코드프리와 함께라면 너도 할 수 있어!' 등을 소개했다.

뤼튼 역시 챗GPT와 마찬가지로 지난달 유료 요금제를 선보였다. 이 대표는 "일본과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에 진출하기 위해 서비스를 개발 중"이라며 "미국을 제외한 시장에선 경쟁력 있는 서비스가 없는 만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내 목소리와 똑같은 AI 보이스 뚝딱

KT의 마이 AI 보이스 서비스는 30문장만 읽으면 내 목소리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목소리를 만들어준다. KT 제공

KT의 마이 AI 보이스 서비스는 30문장만 읽으면 내 목소리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목소리를 만들어준다. KT 제공


음성 생성 시장도 있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공개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응원곡 '더 뜨겁게, 한국'에는 고인이 된 유상철 전 선수의 내레이션이 포함돼 화제가 됐다. 이는 KT와 AI 음성 합성 스타트업 휴멜로가 협업해 만든 'AI 보이스' 덕분이었다.

지난달 12일 서울 마포구 밀리의 서재 사옥에서 만난 이홍철 KT AI·빅데이터 기획담당 상무는 "고인이 과거에 찍었던 다큐멘터리 속 3분짜리 음성을 뽑아서 AI에 공부시켰다"며 "하루 만에 고인의 실제 목소리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KT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마이 AI 보이스'는 30개 예시 문장만 녹음하면 내 목소리와 닮은 AI 보이스를 만들어 준다. AI가 소량의 데이터만 공부해도 스스로 일반화해 새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퓨샷 러닝(few-shot learning) 기술 때문에 가능했다. 이자룡 휴멜로 대표는 "기존에는 한두 시간 녹음해야 했다면 지금은 거의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KT는 이를 오디오북 제작에 적용하고 있다. 김태형 본부장은 "성우나 유명인을 섭외해 책 한 권을 녹음하는 데 길게는 한 달이 걸렸는데 AI 보이스로는 몇 분 만에 가능해졌고 비용도 10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밀리의 서재는 부모의 목소리를 본떠 제작한 AI 보이스가 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 콘텐츠도 기획하고 있다.

AI 보이스는 언어의 벽도 뛰어넘는다. 외국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도 AI 보이스를 제작해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다. 이 대표는 "한국어로 2분만 녹음하면 사용자 목소리 그대로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를 유창하게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텍스트만 입력하면 AI가 상상해 그림 그려줘

칼로에 '왕관을 쓴 허스키' 등의 문구를 입력하자 이 같은 그림을 그려줬다. 카카오브레인 제공

칼로에 '왕관을 쓴 허스키' 등의 문구를 입력하자 이 같은 그림을 그려줬다. 카카오브레인 제공


AI는 미술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 미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게임 제작자 제이슨 앨런이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린 그림이 1위를 차지하면서 논란이 됐다.

카카오의 AI 자회사 카카오브레인도 간단한 명령어만 입력하면 AI가 그림을 그려주는 '칼로'를 지난해 말 공개하면서 이미지 생성 AI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달 16일 경기 성남시 판교에서 만난 이민영 사업개발팀 매니저는 "칼로는 총 1억8,000만 장의 데이터를 공부해 글로벌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칼로는 이용자가 입력한 제시어의 내용을 이해한 후 다채로운 화풍과 스타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미지를 뽑아낸다. 완성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거나, 특정 부분을 새 이미지로 바꾸는 기능도 있다. 기자가 칼로에 '강아지가 왕관을 쓰는 모습'이나 'AI가 마치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는 모습' 등의 키워드를 넣었더니 화가의 작품 같은 결과물을 보여줬다.

이 매니저는 "소상공인으로부터 브랜드 로고, 포스터 디자인을 만들어 상업적으로 써도 되느냐는 문의가 많다"며 "생성된 이미지의 저작권은 이용자에게 있다 보니 누구나 칼로를 사업적으로 활용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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